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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화일반

종이팩 생수, 고체 샴푸…환경 예능의 진심, 기업을 움직였다

등록 :2021-12-18 10:59수정 :2022-01-10 14:03

KBS2 <오늘부터 무해하게> 시청률 이상의 가치
촬영도 탄소 줄이기…“방송 보고 변했단 반응 뿌듯”
환경에 진심인 그들이 뭉쳐 일상을 바꾸는 첫 문을 열었다. 구민정 피디(왼쪽)와 공효진 배우. 구민정 피디 제공
환경에 진심인 그들이 뭉쳐 일상을 바꾸는 첫 문을 열었다. 구민정 피디(왼쪽)와 공효진 배우. 구민정 피디 제공

페트병을 종이 팩으로 바꾸고, 플라스틱 없는 샴푸바(고체 샴푸)를 출시하고, 친환경 물티슈에 김 포장용 플라스틱 용기를 없애고…. 이들이 일상에서 탄소를 줄일 수 있는 아이디어를 기업에 제안해 협업한 결과물이다. 청년 창업가들? 벤처기업인들? 지난 16일 끝난 10부작 예능프로그램 <오늘부터 무해하게>(한국방송2) 출연진이 단 7일 만에 거둔 결실이다.

<오늘부터 무해하게>는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며 죽도에서 일주일을 지내는 환경 예능프로그램이다. 아마 ‘뭐지?’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이 많겠다. 시청률이 1%(닐슨코리아 집계) 남짓이다. 배우 공효진이 이천희-전혜진 부부와 함께 고정 출연하는데도 떠들썩하지 않았다. 방송 시간(밤 10시40분)도 아쉽지만, 환경을 소재로 한 예능 자체가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싶어 하는 시청자들을 만족하게 만들긴 쉽지 않다.

최근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KBS)에서 만난 구민정 피디는 “처음에는 선배들도 이런 소재는 시청률이 안 나온다고 말렸다”며 웃었다. “그래서 이런저런 재미있는 게스트를 많이 초대할까 했지만, 억지웃음은 빼더라도 환경에 진심을 담자는 생각이 공효진씨와도 잘 맞았다”고 한다. 그 진심이 저 많은 열매를 맺었다. 공효진은 제안을 받고 구민정 피디가 환경에 진심인지, 아니면 환경을 소재로 웃음을 주려는 건지를 한달 동안 파악했다고도 한다.

공효진은 10여년 전부터 환경에 관심을 갖고 책을 쓰고 새활용 회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한국방송 제공
공효진은 10여년 전부터 환경에 관심을 갖고 책을 쓰고 새활용 회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한국방송 제공

지난 7월 우리나라 탄소 배출량은 역대 최대였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탄소가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 지금, <오늘부터 무해하게>는 일상에서 탄소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그래픽을 활용하는 등 쉽게 알려준 게 적절했다. 기후변화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는 것, 지금부터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점도 좋았다. 실제로 정부가 탄소중립 목표 최종안(2050년 국내 탄소 순배출량 0 )을 발표하자, 아주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 목표를 이루려면 서서히 전기차를 이용해야 하는 등 우리 일상에는 금방 변화가 찾아온다.

구민정 피디는 “기후변화에 대한 선입견은 어렵다는 것이다. 환경은 어렵다, 지루하다는 생각부터 바꿔주는 게 환경을 잘 지킬 수 있는 첫걸음 같다. 환경을 지키는 건 멋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심어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프로그램을 보고 학생들이 스스로 급식 안 남기기 캠페인을 하며 에스엔에스(SNS)에 사진을 올리고, 페트병 생수만 드시던 어르신이 저희 프로그램을 보고 정수기 물을 드시는 등 일상에서 변화가 일어났다는 걸 확인할 때 가장 뿌듯하다”고 말했다.

시사프로그램의 전문적이고 어려운 토론보다 예능의 힘이 느껴진다. 4부작 맛보기(파일럿)로 만들려던 프로젝트가 10부작이 된 데는 환경에 진심인 공효진의 역할이 컸다. 공효진은 11년 전 이미 지구가 깨끗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책(<공효진의 공책>)을 냈고, 새활용(업사이클링) 회사도 3~4년간 운영했다. “공효진씨한테 제안서를 보내고 한달 만에 만나 3시간 대화를 나눈 뒤 생각했죠. 그에게 환경문제는 인생에서 중요한 의제구나.” 구 피디가 처음 생각했던 2박3일 자전거 투어도 공효진과 수없이 열변을 토하면서 의논한 끝에, ‘죽도에서 일주일 탄소 줄이기 생활’로 바뀌었다. “중요한 건 한꺼번에 다 바꾸려는 것보다, 일상에서 불필요한 것의 순위를 정해 차근차근 바꿔 나가는 것인 것 같아요.”

공효진과 이천희-전혜진 부부. 한국방송 제공
공효진과 이천희-전혜진 부부. 한국방송 제공

촬영도 탄소를 줄일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들어나갔다. 섬 공기 좀 마시나 했던 제작진은 그 어떤 프로보다 힘들었다고 한다. “환경을 살리자는 프로인데 우리부터 지켜야 하지 않나요?” 구민정 피디는 평소 80~90명이던 스태프를 60명 정도로 줄였다. 생수병 대신에 정수기를 빌려서 갔고, 각자 텀블러를 가져갔다. 일회용 그릇 대신 식판을 썼다. “9월인데 날이 덥더라고요. 보통은 아이스박스에 페트병 생수를 얼려 그걸로 더위를 가시게 하는데…. 다 같이 일주일만 참자고 했죠.(웃음)” 막상 돌아오니 그 시간에 대한 의미가 크게 다가왔다. “<오늘부터 무해하게> 촬영 방식을 다른 팀에도 적용했으면 싶더라고요. 방송국 안에도 종이 팩 생수를 마시자는 의견도 나왔고.”

구민정 피디도 공효진과 <오늘부터 무해하게>를 준비하면서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반년 동안 환경 다큐와 책도 보며 열심히 공부했죠.” 편집실에서 항상 컴퓨터를 끄고 나가게 됐고, 텀블러를 사용하는 게 익숙해지는 등 프로그램은 그도 바꿔놨다.

곰곰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이다. 단순히 성과를 내서라기보다는 시청률 1%대인 예능이 빚은 결과물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그만큼 기후가 중요한 문제인데, 누구도 섣불리 시작하기를 주저했던 것이다. 구민정 피디와 공효진의 환경에 대한 진심이 만나 웃음기는 덜하지만, 그보다 값진 변화를 이뤄냈다. 한창 방송 중일 때 만난 구민정 피디는 “큰 재미를 선사하는 프로는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 방송을 보는 이들의 일상은 조금이나마 달라질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정답이었다. <오늘부터 무해하게>는 시즌2를 논의 중이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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