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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화일반

“넌 행복해도 돼, 소리쳐도 돼, 대신 말해주는 존재가 배우”

등록 :2021-09-04 17:54수정 :2021-09-04 21:11

[한겨레S] 배우는 사람
배우 백현주

사회학과 진학 뒤 연극-사회운동 함께하는 ‘연극운동’의 길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 ‘반쪽 날개로…’ 지금까지 울컥한 경험
사진가 윤송이
사진가 윤송이

인상적인 연기를 보면, 그 배우의 삶이 궁금해지는 순간이 생긴다. 어쩐지 그 삶과 연기는 같이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소한 대사 한마디조차 다르게 들리는 배우, 저 사람의 삶은 어땠기에 그토록 가벼운 말에 묵직한 추를 매달고야 마는 것일까. 내게 배우 백현주는 그런 이다. 눈빛 하나로 주변 인물들을 얼어붙게 만들었던 국정기록 비서관 ‘민희경’(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 얄미우면서도 어딘가 정감 가는 채소 가게 사장(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웃음 뒤에 깊은 상처를 품고 사는 간호사 ‘오미경’(드라마 <너는 나의 봄>)까지. 백현주를 통과하고 난 인물들은 짧은 순간에도 이야기 속에 형형히 살아 있다. 스무살부터 30여년간 연기에만 골몰해온 그는 모두의 박수를 받던 날에도 갈증에 허덕였고, 극중 인물이 되는 것 말고는 다른 세상이 보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제는 배우라는 좁고 깊은 세상이 더 크고 넓은 세상과 연결되어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고 했다. 나아가 새로운 시도에 활짝 몸을 열기도 한다. 남성 배우로만 이뤄진 2인극 <비평가>의 성별을 바꾸며 한계를 허물어보기도 하고, 국내 최초 퀴어 가족 시트콤 웹드라마 <으랏파파>(작가 이반지하, 연출 김일란) 속 중년의 레즈비언 ‘고현미’로 분하며 도전과 실험 속에 자신을 내맡기는 중이다. 여름이 지던 날, 서울 청담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그를 만났다. 

배우 백현주
스물세살부터 극단 한강에서 연극 무대에 올랐다.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 <동백꽃 필 무렵> <검사내전> 등에 출연하며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고 최근 드라마 <안녕? 나야!> <대박 부동산> <너는 나의 봄>, 웹드라마 <으랏파파> 등을 통해 다양한 스펙트럼의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연극하고 싶었지만 사회학과 진학

―드라마 <안녕? 나야!>에서 온화함 속 야망을 드러내는 반전 캐릭터 ‘한지숙’으로, 곧이어 <너는 나의 봄>에서는 따뜻한 품성을 지닌 간호사 ‘오미경’으로 살았습니다. 요즘 대중이 사랑하는 중견 배우의 특징이 있다면 같은 사람이라고 추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캐릭터 변환을 분명히 한다는 점일 텐데요. 아침까지는 희대의 악인으로 분했다가 저녁에는 유머와 위트를 겸비한 선인이 되기도 하는 배우들, 백현주 배우 역시 그중 한 사람이고요.

“반드시 중견 배우만이 역할 전환이 빠르다는 건 아닐 테고요. 연극 무대에서 경험한 것들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 같아요. 옴니버스 형식의 연극에서 1인8역을 한 적 있어요. 역할 하나를 마치고 무대 뒤로 뛰어 들어가 의상을 벗는 순간에 역할도 벗어내는 거죠. 동시에 새 역할의 호흡과 톤을 가다듬고요. 한데 이런 전환은 일상에서 어린아이들이 참 잘하는 것 같아요. 좀 전까지도 악을 쓰고 울다가 사탕 하나에 웃어버리잖아요. 호흡이 바뀜과 동시에 감정도 변해버리는. 저희들에게는 선생님이죠.(웃음)”

―고등학교 때 성당에서 성탄절 연극을 하며 처음 연기를 접했지요? 당시 무엇을 느꼈기에 계속 연기를 놓지 않게 된 걸까요?

“당시 연극 담당 교사가 의욕적이었어요. 돌아보면 재미있는 게, 교사라고는 하지만 아마도 이제 막 연극을 시작한, 대학교 2학년 정도의 연극반 학생이었던 것 같아요. 성당이면 성극을 해야 할 텐데 윤대성 선생님의 <방황하는 별들>을 무대에 세웠어요. 워낙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역할의 비중도 고루 나뉘어 있는 편이라 당시에 제가 연기를 어떻게 했다는 기억은 안 나요. 다만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커튼콜의 기억이 사진처럼 선명히 남아 있어요. 무대 위 환하게 조명이 켜지고 다들 손을 잡고 인사하는데 두 발로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을 만큼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어요. 왜 영화에서 화이트아웃 된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사람들의 박수 소리는 점점 작아지면서 내 심장 소리만 들리는 상황 있잖아요.”

―전율을 느낀 것이지요?

“아마 그랬던 거 같아요. 근데 그때는 그게 뭔지 모르니까 한번은 더 해봐야 이 느낌이 무엇인지 내가 알겠다 싶더라고요.”

―한데 연극영화과가 아닌 서강대 사회학과에 입학을 했습니다.

“제가 첫째예요. ‘네가 잘해야 동생이 배운다’ ‘네가 동생을 잘 돌봐야 한다’ 같은 당부를 늘 들으며 자랐어요. 웬만하면 부모를 신경 쓰이게 하면 안 되고, 내가 먼저 사고를 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놀더라도 선을 지키면서 놀았던 것 같아요. 나중에야 오랜 시간 동안 조금씩, 무섭도록 나를 지배하고 했던 것이 부모였음을 깨닫게 됐어요.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고요. 그래서 연기를 하고 싶었지만 뭔가를 더 요구하거나 알아보지 않고 조용히 혼자 마음을 접었어요. 사회학과는 부모님의 이런저런 요구에 대한 타협안이었죠. 마르크스나 베버 같은 사람들이 ‘전공 교과서’에 있다는 생각은 안 하셨던 거예요.”

―부모님 몰래 연극을 하고, 학생운동도 하다 뒤늦게 가출도 하고요. 대학에서 만나고 접한 것들이 사회와 시대를 바라보는 시각을 변화시켰던 걸까요?

“전공의 영향을 안 받을 수는 없었을 거예요. 사회학이 비교적 새로운 학문이잖아요. 당대의 젊은 지식인들이 새로운 방법으로 사회 구조와 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 시작한 학문이니까. 그 자체가 재미있는 상상이기도 한 거예요. 어떤 세계를 꿈꾸는 것이니까요. 연극은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일이었지만 자기애로 시작된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일이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선배가 연극과 사회운동을 같이 할 수 있다고, 그게 연극 운동이라는 걸 알려줬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누군가를 이롭게 할 수 있다는 명분을 얻은 거죠. 그렇게 거리로 뛰어나왔어요. 들썩거리고 뜨겁게 살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당시 뜨거움을 지속시키던 연료는 무엇이었을까요?

“연기를 하면서 나에게 이런 감정과 목소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게 컸죠. 익숙하지 않았기에 꺼내놓기까지 어려웠지만 내가 소리 내서 울어도 되고, 화내도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처음으로 채워진 욕구였어요. 어른들이 이야기하고 평가하는 내가 아닌, 내 안에 굉장히 다양한 내가 존재할 수 있고, 그 안의 소리를 밖으로 꺼낼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연기를 하며 스스로를 알아가기 시작한 거죠. 그간 억눌려 있던 나를 찾겠다는 욕망이 생겼고 동시에 내가 그랬듯 다른 누군가 역시 자유롭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더 뜨거워진 것이죠.”

사진가 윤송이
사진가 윤송이

일본군 ‘위안부’ 다룬 연극, 그 뒤

―백현주 배우를 언급할 때 중요하게 꼽히는 작품 중 하나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를 다룬 광복 50주년 기념 연극 <반쪽 날개로 날아온 새>입니다. 어떤 이유에서 이 작품이 오래도록 언급되는 것일까요?

“사력을 다해 작품을 이해하고 그 인물이 되고 싶었던 작품이에요. 자료 조사만 6개월을 넘게 하고 집회에 나가고, 할머님들을 만나 말씀을 들었어요. 나중에는 역사적 사실을 술술 외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오직 작품만을 생각했고, 여타 다른 세상은 제게 보이지 않았어요. 곁에서 그 세계를 지켜주는 동료들도 있었고요. 사전 준비부터 엄격했는데 신체 훈련만 하루에 4시간씩 하고, 대사가 없는 무언 즉흥극을 한달 넘게 연습했어요. 그러다 처음으로 소리를 내뱉는, 목소리로 대사를 옮기던 날, 누군가의 첫마디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배우들이 울음을 터뜨렸어요. 정말 아무렇지 않은 단어인데.”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한다.)

―음, 25년이 지난 일인데도 생생히 남아 있는 듯합니다.

(감정을 추스른 뒤) “군수 공장. ‘군수 공장에 갔었어요’라는 대사를 다 마치기도 전에 울게 되더라고요. 아, 아직도 이게 남아 있네요. 희한하네요. (눈물을 닦으며) 작품 안에 푹 절여져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그 인물이 되고 싶어서 아무리 집중을 해도 채워지지 않는 게 있었어요. 체력을 다 쏟아내고 몸을 혹사시켜서라도 어떻게든 해보려 했고, 조금만 더 파보면 알 것도 같고 가까워질 것도 같았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어요. 배우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같은 자리에 서보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는데 그걸 극복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무모하게 헤맨 거죠. 결국 같을 수 없다는 걸 인정하게 됐어요.”

―그런 경험을 거치고 나면 ‘인물을 이해한다’는 배우의 기본적인 일에 대한 생각도 변화할 것 같습니다.

“인물과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내가 살아온 만큼만 보이는 것 같아요.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도 언제나 제 그릇 값밖에는 안 되는 거죠. 되레 배우는 그 인물이라기보다 그 인물을 대변하는 존재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어떤 큰 행복이 찾아올 때나, 아주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정작 본인은 그게 얼마나 행복인지, 억울한지를 몰라서 표현을 못 하기도 하잖아요. 아무것도 못 하고 있을 때 그의 가장 가까운 사람은 그걸 대신 해줄 수가 있거든요. ‘네가 이렇게 행복하면 더 누려도 돼’, ‘지금 억울하다고 소리 지르고 화내도 되고 드러누워도 돼’라고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이 배우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역할을 통해 다양한 인물을 만나고, 그 인물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과정에서 세상과 인간에 대한 이해가 풍부해짐을 느끼기도 하나요?

“확실히 바뀐 건 하나 있어요. 예전에는 캐릭터 분석에 있어 논리적으로 역할의 유형을 나누고, 인물에 대한 개념을 세우고 결론 내리는 것을 굉장히 중요한 일로 여겼어요. 그런데 점점 결론을 내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비굴해질 때도 있고, 그 과정에서 남의 어려움을 모른 체할 때도 있고, 주저앉아 울 때도 있잖아요. 동시에 몹시 웃기고, 재미있을 때도 있고요. 30대까지만 해도 인물과 삶의 맥락이 굵고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한데 이제는 어느 한가지 색만이 그 사람이 아니라는 것, 일목요연하게 정리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걸 살아가며 느껴요. 나아가 규정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고요. 나 스스로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정의하고 몰아붙이는 것에 대해서도 조심하게 돼요. 이는 타인에게도 마찬가지고요.”

사진가 윤송이
사진가 윤송이

퀴어가족 시트콤 웹드라마, 원작 남성배우 2인극 성별 바꿔 출연
“왜 꼭 이래야만 하나…다르면 왜 안 되는지” 도전하고 실험해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질문했죠

―다양성과 다름에 대한 관심은 중년의 레즈비언 ‘고현미’(웹드라마 <으랏파파>)로 이어졌던 것이지요? “(여성에게) 만나는 여자가 누구냐”고 묻고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남자를 만나”느냐고 혀를 차는, ‘퀴어가 기본값인 세상’이 처음 배우에게 어떻게 다가왔을지 궁금합니다.

“누군가 다른 종류의 작품을, 새로운 이야기를 세상에 좀 내놓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이 작품을 만났어요.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가 있지만 왜 거기에서마저도 남자들만이 등장할까라는 질문을 갖고 있었고요. 지금껏 해보지 않았던 장르인 시트콤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고요.”

―인물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어려웠어요. 감독님이 캐릭터 이해에 도움이 될 분을 만나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서 응했는데 만나기 전날부터 망설여지더라고요. 내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한다고 누군가의 지극히 사적인 경험에 대해 무례하게 물어야 하나 싶었어요. 고민하다 결국 그분에게 내가 믿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하겠다 싶어 혼자 질문들을 정리해보기도 하고 동시에 내 쪽에서 먼저 나를 다 내보여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만나서 저 사는 이야기를 먼저 했죠. 이야기를 나눠보니 사람이 살고, 사랑하는 일이 별반 다르지 않더라고요. 성소수자로 살건, 저처럼 미혼으로 삶을 살건 우리가 다르지 않지만 동시에 무엇이 다를까를 보려고 했어요. 거기에 인물의 핵심이 있다고 생각했고요.”

―그렇게 반향을 일으켰던 작품 중에는 연극 <비평가>도 있습니다. 극작가 스카르파와 평론가 볼로디아의 첨예한 대립을 그린 2인극 <비평가>에서 오만한 평론가 볼로디아를 연기했지요. 원작의 두 인물은 남성이지만 두 여성 배우가 연기하며 성별을 바꾸는 실험을 했어요.

“오디션을 보러 갈 때, 내가 연기하고 싶은 대사 중에는 여자 역이 별로 없었어요. 하고 싶지 않다, 왜 이런 발화들은 남자만 해야 할까 싶었죠. 연극 <비평가>에서 성별을 바꿔보는 시도는 시대적 요구와 변화의 시점이 잘 맞아떨어졌기에 가능했던 일 같아요. 연극을 준비하며 스트레스를 크게 받고, 마지막까지 회의도 많이 했는데 잘하고 싶어서 그랬겠죠. 공연마다 크게 숨을 몰아쉬고 무대에 올라야 했던, 파르르 떨리던 긴장이 지금도 떠올라요.”

―훌륭했다고 모두의 박수를 받던 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홀로 실패했다고 느낀 때도 있나요?

“그럼요. 지금도 많은 실수를 하지만 그 실수들을 조금씩 즐길 수도 있게 됐어요. 예전에는 준비한 만큼 연기가 나온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따지면 실수를 했다는 건 내 쪽에서 준비가 부족했다는 것이니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몰아세웠어요. 이제는 실수를 조금 귀여워해줄 수 있는 정도는 된 것 같아요. ‘오늘 실수해서 다행이다. 하루라도 빨리 실수하고 깨달아서 다행이다’ 생각하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준비해야지 싶고요. 나이가 들수록 누군가 내게 와서 조언을 해주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실수만 한 스승이 없는 거죠.”

―여유가 생겼다는 건 그만큼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는 것이겠지요. 그 여정을 통과하며 기성세대가 되었고요. 일전에 한 인터뷰에서 ‘젊은 세대가 하는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때가 왔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부모님 이야기를 잠깐 했지만 제가 뭘 대단히 거스르며 살았던 것 같진 않아요. 그 와중에 제가 해왔던 건 질문하는 거였어요. ‘왜 꼭 이렇게만 해야 하는지’, ‘왜 다르면 안 되는지’를 물었어요. 아마 지금 젊은 세대들 역시 각자의 질문을 하고 있을 거라 생각해요. 기성세대가 돼보니 지금의 저를 가장 두렵게 하는 질문은 ‘(세상이) 왜 이렇게 됐어요?’예요. 두렵지만 그들이 질문하고, 다른 것을 시도하고 바꿔보려고 할 때 그렇게 해도 된다고 말하고, 버텨주는 세대가 되고 싶어요. 최소한 쓸데없는 말로 막지는 말았으면 좋겠고요.”

―20대에는 없었지만 지금 갖게 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다른 방향들을 얻게 됐죠. 20대에는 높은 목표를 세우고 올라가면서 ‘이게 끝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빨리 끝내고 즐기고 싶었고요. 근데 어느 순간 목표의 도달과는 상관없이 이미 즐겁게 하고 있더라고요. 즐기는 과정에서 내가 해볼 만한 다른 일들이 점선처럼 이어졌고, 비슷한 방향감각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가면서 다른 길을 만들어볼 수도 있었어요. 세상과 연결되는 다른 방향들을 본 거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꿈이 생기기도 하고요.”

―이제 정리할까요. 백현주 배우에게 연기를 빼고 나면 무엇이 남나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연기를 하며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법을 배웠고, 그게 남았어요. 다그치기보다는 내가 나를 예뻐해줘야 한다는 것을요. 스스로를 위하는 방법도 다양하게 알아가고 있는 중이에요.”

<마리끌레르 코리아> 피처 디렉터

유선애. 1990년대에 태어난 멋진 여성들의 이야기를 묶은 인터뷰집 <우리가 사랑한 내일들>(2021)을 펴냈다. 매 순간 새롭게 배우고 깨치는 배우의 삶에 대한 궁금증이 많다. 맡은 배역을 깊이 탐구하고 탐험해온 중견 여성 배우들에게 ‘배우는 삶’에 대해 묻고, 듣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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