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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생각

뉴노멀은 우리 손으로 만드는 것

등록 :2021-06-11 04:59수정 :2021-06-11 10:28

[책&생각] 정인경의 과학 읽기

다른 의료는 가능하다: 한국 의료의 커먼즈 찾기
백영경·백재중·최원영·윤정원·이지은·김창엽 지음/창비(2021)

한 사람의 죽음은 사회적 사건이다. 이 책에서 그려지는 대형병원 중환자실의 풍경은 신산하기 이를 데 없다. 한 할머니가 평생 함께 살아온 할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하는데 의료진들은 정신없이 자기 일에 바쁠 뿐이다. 누구 하나 환자의 죽음을 애도할 여유가 없는 환경에 할머니 혼자 방치되어 있다. 퇴근길에 이를 목격한 간호사가 보다 못해서 커튼을 쳐드리고 의자를 가져다준 일을 전하며 이렇게 말한다. “죽음이라는, 한 인간의 삶이 끝나버리는 그 엄청난 순간조차도 그렇게 다뤄지는 환경이라는 것.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것처럼 죽음이 이렇게 다뤄지는 곳이라면 환자가 다른 여러 면에서도 존중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요.”

<다른 의료는 가능하다>는 여성 건강과 의료를 연구하는 문화인류학자 백영경의 대담집이다. 앞서 소개한 간호사를 비롯해서 한국에서 보건의료 운동을 펼치는 전문의와 연구자들이 모여서 만든 책이다. 팬데믹은 본래, 겪으면서 배울 수밖에 없는데 공공의료와 같이 정치·경제·사회와 과학기술이 얽힌 복잡한 문제는 ‘사람의 말’을 통해 이해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나는 코로나19와 관련된 과학책을 모으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이 책을 만났다. 팬데믹 이후를 전망하는 수많은 원론적 이야기들 사이에서 분명한 차이점을 드러내고 있었다.

미래의 의료에 대해서는 교과서적인 답안이 있다. 이제 의료는 질병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병원 중심에서 지역사회 중심으로 바뀔 것이다. 모두가 지역사회 가까운 곳에 병원과 돌봄센터가 있고 주치의가 왕진 와서 따뜻하게 돌봐주는 세상을 꿈꾼다. 그런데 이 변화의 길목에는 미심쩍은 ‘왜’라는 물음표가 있다. 답은 나와 있는데 왜 안 하는 것일까? 누구나 공공의료의 혜택을 누리길 원하는데 한국 사회에서는 왜 어려운가?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시장 메커니즘에서 의료는 상품화되고 점점 자본축적의 도구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민영화의 흐름에서 환자 중심, 사람 중심의 의료가 설 자리는 없다. 돈 걱정하지 않고 사람 대접받아가면서 병을 고치기가 무척 힘든 현실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의료시스템을 고발하며, 사람 중심의 의료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우리가 바라는 병원의 모습은 무엇일까? 대형병원 중환자실에서 죽고 싶지 않다면 어떻게 늙어가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 다양한 소수자들이 차별 없이 존중받는 의료가 왜 필요한가? 현란하게 광고하는 디지털 의료나 비대면 원격진료는 무엇이 문제인가? 시장의 논리와 전문가주의에서 벗어난 새로운 의료는 가능할까? ‘고령화’라는 사회적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까? 과연 우리가 90퍼센트나 차지하는 시장 권력을 통제하고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제시하는 길은 하나. “시민들이 의료를 전문가들의 영역이나 정부의 소관이 아니라 자신의 영역이라 생각하고 참여를 하는 것이다.” 질병과 노화, 죽음을 자기 삶의 문제로 가져와서 시민이 주도하는 의료체계를 세우지 않는다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의료자원은 한정적이기에 의료가 공공재가 되기 위해선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은 과학기술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팬데믹을 경험하며 공공의료에 관심을 가지고 뉴노멀의 세상을 상상하는데 뉴노멀은 그냥,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고민하고 노력한 만큼, 시민운동과 민주주의적 참여로 이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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