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역사-아시아에 드리운 일본의 어두운 그림자(An Inconvenient History: Japan’s Dark Shadow on Asia)>. 박철순(사진)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 소프트웨어시험인증연구소장이 ‘찰스 박’이란 필명으로 지난해 8월 영문으로 낸 책이다. 아마존 킨들에서 전자책과 종이책이 함께 나왔다. “집필에 10년 가까이 걸렸어요. 아마존에 종이책 출간을 신청했더니 심사하고는 내자고 하더군요.”

지난 5일 경기 성남시 서현역 근처 사무실에서 만난 저자는 책을 쓴 동기를 이렇게 밝혔다. “일본의 변화를 끌어내려면 국제사회가 일본의 진짜 모습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영어로 썼어요. 애즈라 보겔 전 하버드대 교수가 쓴 <넘버원 일본>처럼 그간 외국에서 나온 일본 주제 책을 보면 대부분 일본을 미화했거든요.”

그는 행정고시에 합격해 1995년부터 21년 동안 정보통신 정책을 다루는 공직자로 일하다 5년 전에 퇴직했다. 그가 이끌고 있는 연구소는 소프트웨어 시험평가와 인증을 주로 하는데 최근에는 인공지능 평가도 추가됐단다. 230여명인 직원의 70%가 석·박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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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소장이 지난해 펴낸 일본 비판서 표지.
박 소장이 지난해 펴낸 일본 비판서 표지.

책은 근대 일본의 침략으로 아시아 국가들이 본 피해와 일본이 영토 확장에 나선 배경 그리고 전후 일본의 전쟁 책임을 제대로 묻지 못한 점 등을 짚고 일본과 국제사회가 공존공영할 수 있는 대안도 제시했다. 또 천황제나 사무라이 문화 등 일본과 일본인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역사적 배경도 담았다. “아시아 국가들이 일제의 침략으로 본 피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어요. 영문으로 이런 책을 본 기억이 없어요. 일본인들의 문화와 심리도 문화인류학적 방법으로 분석했죠.”

그는 한국어로도 내려고 번역하고 있지만, 국내 출간은 자신의 의도와 크게 부합하지 않는단다. “외국에서 많이 읽혀야 하니까요. 서양 등 외국인들이 책 내용에 공감해서, 일본의 변화 압력으로 작용하는 게 중요해요. 태평양전쟁 패전 이후 독일의 변화도 이스라엘이나 미국의 유대인 사회와 프랑스·영국 등 주변 국가의 압력이 작용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일본은 달랐죠. 전쟁 뒤 우리나 베트남은 분단 상태였고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라 압력을 넣을 수 없었어요. 그 사이에 일본은 미국에 붙어 자기 이익을 챙겨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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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책 제목에 붙인 ‘불편한’이라는 표현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서양 사람들은 그동안 자기들과 같은 선진국이라고 일본을 좋은 이미지로 봤어요. 하지만 제 책을 보면 일본이 과거에 잔악한 행위를 하고도 반성하지 않거나, 아시아 지배를 영광의 역사로 왜곡하는 걸 보면서 불편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일본인들 역시 드러나지 않았던 자신들의 추한 역사를 보고 또 한국인들은 과거의 상처를 되새겨야 하니 불편하겠죠.”

책 표지에는 1937년 12월 일본군이 중국 난징성에 진입하는 기념식 사진을 썼다. “일본군은 난징에서 6주 동안 30만명을 죽였어요. 표지 사진은 제가 6년 전에 난징대학살 기념관에서 찍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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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8월 아마존 킨들 종이·전자 동시
‘불편한 역사~일본의 어두운 그림자’
“일본인 심리도 분석…10년 걸려 집필”

동양사 전공 행시 거쳐 20여년 공직에
“강제징용 겪은 부친 세대 기억하고자”
‘한·일 갈등 완화’ 민간단체 설립 추진

그는 지난해부터 ‘한·일 갈등 완화와 아시아 평화’를 위한 민간단체 설립도 추진하고 있다. 2019년 10월에는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 등과 함께 설립 준비 기자회견까지 했다. “대법 판결로 징용피해 소송에서 이긴 이춘식 어르신이 재판 이후 일본이 수출 규제를 하자 괴로워한다는 소식을 듣고 단체 설립을 하기로 마음 먹었죠. 한·일 정부의 양보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라 일반인이라도 나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돕자는 생각이었죠. 일본을 포함해 동아시아 시민들이 연대해 아시아 평화를 위한 활동을 하자는 뜻도 있었고요.” 그는 단체 설립에 120여명이 참여 뜻을 밝혔고 설립 기금은 자신이 내놓은 1억원 등 1억2천만원이 모였다고 했다.

재작년 ‘아시아 평화 미래 재단’ 설립을 위한 기자회견에서 박 소장이 단체 설립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박철순 소장 제공
재작년 ‘아시아 평화 미래 재단’ 설립을 위한 기자회견에서 박 소장이 단체 설립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박철순 소장 제공

그가 동아시아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에는 부친의 징용 체험이 있다. “아버지가 태평양전쟁 때인 1942년 남양군도로 강제동원당해 일제 패망 뒤 귀국했어요. 24살 때 어린 아들 하나 둔 채 끌려가셨죠. 징용 때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셨어요.” 이런 가족사는 그가 대학 전공을 정할 때 사학과로 이끌었다. 그는 1984년 서울대 동양사학과에 들어가 졸업장을 딴 뒤 다시 모교의 외교학과로 학사 편입했다. “동아시아 국제관계사에 대한 관심 때문이죠. 한국이 ‘4대 강국’의 틈바구니에서 생존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때부터 통일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우리가 분단된 게 근본적으로 일본 때문이잖아요. 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아니라 전쟁 피해국인 우리가 희생양이 돼 분단됐죠. 이 분야로 계속 공부하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포기하고 행정고시를 봤어요. 어쩔 수 없이 공무원 생활은 했지만 공직에서도 꾸준히 연구를 해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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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관료 시절도 공부를 꾸준히 해 모두 8개의 학위(학사와 석사 각 셋, 박사 둘)를 땄다. 행정학과 기술경영(이상 박사), 미디어영상, 유럽연합 정책, 국제관계, 역사학 등 분야도 다양하다.

책이 나온 지 4개월이 넘었다. 반응은? “아마존 사이트에서 수백권이 팔렸어요. 지난해 11월부터 홍보에 나서 미국과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싱가포르 주요 언론사에 책을 보냈는데 아직 보도는 안 나왔어요. 앞으로 유튜브를 통해 본격적으로 홍보하려고요. 다음달까지 유튜브에 책 소개 동영상 5~6개를 올릴 계획입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이런 말을 했다. “나이가 들면서 자꾸 아버지 기억이 나요. 아버지가 겪은 고초 덕에 지금 제가 있잖아요. 아버지 같은 분들을 기억해야겠다는 의무감을 느낍니다. 살아 생전에 의미 있는 일을 해야죠.”

글·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