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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생각

형이상학의 핵심인물, 브뤼노 라투르

등록 :2019-08-02 06:01수정 :2019-08-02 21:08

네트워크의 군주-브뤼노 라투르와 객체지향 철학
그레이엄 하먼 지음, 김효진 옮김/갈무리·2만7000원

1972년 말에 한 청년 철학자가 프랑스 부르고뉴의 고속도로를 따라 시트로엥 밴을 운전하고 있었다. 25살의 그는 환원주의에 관한 생각에 지나치게 몰두하다 정신을 차리려고 차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이때의 깨달음을 그는 <프랑스의 파스퇴르화>란 자신의 저작 뒤편에 90쪽 가량 부록으로 수록한 <비환원>에 농축해 담았다. “아무것도, 저절로, 무언가 다른 것으로 환원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환원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브뤼노 라투르는 과학기술학, 사회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를 가로지르는 ‘하이브리드 지식인’으로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지성 중 한 명이다. 그레이엄 하먼의 <네트워크의 군주>는 라투르의 철학적 작업의 전체적인 모습을 그려내고 이를 자신의 ‘객체지향 철학’의 관점으로 평가하는 작업을 담은 책으로, “라투르를 형이상학의 핵심인물로 평가하는 최초의 책”이라고 말한다. 하먼 자신도 퀑탱 메이야수 등과 함께 ‘사변적 실재론’이라는 현대 철학의 새로운 운동을 선도하는 주목받는 철학자다.

<네트워크의 군주>는 그레이엄 하먼이 자신의 객체지향 철학과 브뤼노 라투르(사진)의 철학적 사상의 관계를 다루는 저서다. 한겨레 자료 사진
<네트워크의 군주>는 그레이엄 하먼이 자신의 객체지향 철학과 브뤼노 라투르(사진)의 철학적 사상의 관계를 다루는 저서다. 한겨레 자료 사진
2009년에 출간된 이 책은 두 가지 작업을 한 권에 담고 있다. 1부 ‘라투르의 형이상학’에서는 라투르의 초기 저작 네 권 <비환원> <과학의 실천>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판도라의 희망>을 행위자-네트워크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읽어내면서 라투르를 ‘객체들의 민주주의’와 ‘세속적 기회원인론’을 표방하는 형이상학 철학자로 제시한다. 2부 ‘객체와 관계’에서 하먼은 자신의 ‘객체지향 철학’을 배경으로 삼고서 라투르의 관계주의적 철학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한편, 라투르의 행위자-네트워크 모형을 경유하여 자신의 실재론적 형이상학을 소개한다. 이 책에선 시종 하먼의 재기 넘치는 비유들이 등장하는데, 예를 들면 서문의 이런 문장. “고전 형이상학이라는 켄타우루스가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이라는 치타와 짝을 맺으면, 그들의 자손은 어떤 흉악한 괴물이 아니라 반세기 이상 동안 우리를 태울 수 있는 순수혈통 종의 망아지가 될 것이다.”

앞에서 말한 <비환원>으로 다시 돌아가서, 인용한 문장은 라투르의 행위자-네트워크의 이론의 근간을 이루는 비환원의 원리를 담고 있다. 라투르는 모든 행위자 또는 객체는 자율적인 실재성을 갖추기 있기에, 세계는 존재론적으로 평등한 ‘객체들의 민주주의’를 이룬다고 봤다. “현존하는 것은 오로지 행위소들뿐인데, 이를테면 자동차, 지하철, 싸우는 부부, 천체, 과학자는 모두 동등한 형이상학적 지위를 갖는다.”

그렇다면 어떤 객체가 다른 객체로 환원되는 것은 가능할까. 하먼은 ‘자신을 채찍질하는 수녀들의 광란’을 성적 좌절로 환원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앞선 명제를 설명한다. 하먼의 답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여기에 답하기 위해선 수녀들의 체벌 형태를 관찰하고 정신과 전문의들이 수행한 면담 결과를 검토하는 등 이론적 노동을 거쳐야 하고, 현실이 연구자의 접근방식에 저항하면 이 방식을 기꺼이 수정해야 한다. 만약 연구자가 수녀들의 고행을 성공적으로 해명하는 독법을 제시하더라도, 이는 이들의 행위가 나타내는 다른 특색을 억압하고 단순화하는 대가를 치르는 것만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 ‘존재론적 전회’라는 철학적 운동이 큰 주목을 받는 와중에서, 이런 운동을 앞에서 이끄는 라투르의 사상의 의미와 위치를 궁금해 하는 독자들이라면 반가워할 만한 저서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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