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어떻게 전염되는가-사회전염 현상을 파헤치는 과학적 르포르타주
리 대니얼 크라비츠 지음, 조영학 옮김/동아시아·1만6000원
200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의 도시 팰로앨토에서 한 고등학생이 달리는 기차로 뛰어들어 목숨을 끊었다. 손꼽히는 명문인 헨리 건 고등학교 학생이었다. 3주 뒤에는 졸업을 앞둔 학생이 기차로 뛰어들었다. 6개월 동안 모두 같은 고교에 다니던 학생 5명이, 마치 전염이라도 된 듯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정은 화목했고, 경제적으로 부유했으며 친구, 재능, 인기도 많고 무엇보다 행복해 보이는” 학생들이었다. 대개는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팰로앨토 주민이자 프리랜서 과학 작가인 리 대니얼 크라비츠는 이 ‘이상한 전염병’(책의 원제)의 원인을 캐고, 그 대책을 모색하는 과정을 <감정은 어떻게 전염되는가>에 담았다. 심리학자 등을 직접 찾아가 만나고 논문들을 읽으면서 과학적으로 추적한다. 그는 고교생 연쇄 자살을 ‘사회전염 사건’으로 보는데, “생각과 감정과 행동이 전염되면서 타인이 우리 삶에 영향을 주는 사건”을 의미한다.
내 생각·감정·행동은 타인에게서 전염돼 형성되기도 하고, 내가 타인에게 그것들을 전염시키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이 한 것처럼 착각한다. “우리 행위 중에서 어디까지가 자발적이고, 어디까지가 무의식적으로 타인을 모방했는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니컬러스 크리스타키스 예일대 인간본성연구소 소장)
저자는 팰로앨토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다른 곳들에서 일어났던 이상한 전염 사례들을 살펴본다. 2004년 미국 인디애나주 피셔스의 주민들은 작은 공회당에 모여 “알카에다가 마을을 테러 공격하면 어떻게 하지?”라고 두려움을 토로했다. 국가가 대도시의 안보만 신경 쓰는 탓에 극단주의자들이 허술한 목표물을 찾을지 모른다는 얘기였다. 주민들이 불안에 떨자 중앙정보국(CIA)은 경찰과 함께 테러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자위 부대를 만들어줬다. 이 마을에 대한 테러 위협은 한 번도 없었다. “두려움은 강력한 사회전염이며 면역력은 누구에게도 존재하지 않는다.” 두려움은 빠르게 전염되며 히스테리의 촉매로 작용한다.
히스테리의 원인을 추적하는 행위 자체가 히스테리를 강화하기도 한다. 1960년대 초반 탄자니아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는 여학생들이 별 이유 없이 웃음을 터뜨리더니 멈추지를 못했다. 학교가 폐쇄됐다. “관료들이 전면에 나서 보여주기식 대처를 할수록 걱정 많은 주민들은 정말로 큰일이 일어났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스트레스가 신체 증상으로 나타났을 뿐이었는데 호들갑을 떨어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그래서 사회전염을 막는 일은 하나의 ‘딜레마’가 되기도 한다. “전염을 막으려면 행동해야 하지만 행동하려면 전염부터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의 ‘자수성가 신화’의 핵심은 “죽도록 일하라”는 것이다. “미친 듯이 일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것 같습니다. 사실 아이들은 그것밖에 몰라요.”(로리 하비브·헨리 건 고교 교사) 직업윤리나 탐욕도 전염된다.
긍정적인 사회전염도 있다. 1975~6년 멕시코에서 <나와 함께>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는데, 연속극의 배경이 교실이었다. 이때 100만명 가까운 문맹자들이 성인 글쓰기 수업에 등록했다. 그 전과 비교해 아홉 배나 많았다. 구글 직원인 와엘 고님은 2010년 고향의 한 젊은이를 이집트 경찰이 체포해 처형하자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어 경찰의 만행을 고발했다. “페이스북에서 시작된 용기라는 이름의 사회전염은 그렇게 멀리, 널리 퍼져나갔다.” 그는 이집트 시민혁명의 한 주역이다.
이런 긍정적인 사회전염을 활용해야 한다고 저자는 짚는다. 병원 직원들의 우애가 좋을수록 환자들의 응급실 이동이 적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정서전염에서 절대 휘둘릴 것 같지 않은 사람들도 부정적인 트윗보다 긍정적인 트윗에 두 배 정도 영향을 받는다.”
팰로앨토에서는 연쇄 자살 사건 뒤 많은 이들이 노력을 기울여 예방책들을 내놨다. 몇 년 동안 잠잠하다 또 2015년 몇 달 동안 헨리 건 고교생 4명이 목숨을 끊었다. 학생들의 우울증, 불안감, 스트레스의 출처는 학교였다. “전염병은 멈추지 않는다. 안타깝지만 6년간의 조사 끝에 내린 결론이 그렇다.” 그런데도 지은이는 하나의 실마리를 찾았다고 한다. “집단의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나서 책임감을 전염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