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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생각

[인간관계의 물리학] 과학에도 ‘때’가 있다

등록 :2018-04-26 21:01수정 :2018-06-29 11:23

김범준의 인간관계의 물리학
⑥ 때맞음

내가 몸담고 있는 통계물리학 분야에서도 ‘때맞음’ 연구가 활발하다. 이쪽 연구가 대개 그렇듯, 상호작용하는 많은 구성요소로 이루어진 커다란 시스템의 ‘때맞음’ 현상이 주된 관심이다. 구성요소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 않으면 ‘때맞음’이 안 되지만. 점점 상호작용의 세기를 크게 해 어떤 문턱 값을 넘어서면, 갑자기 많은 요소들의 ‘때맞음’이 큰 규모로 일어난다.

모든 게 다 때가 있다. 때가 되었다고 일이 되는 것은 또 아니다. 다 ‘운때’가 맞아야 한다. 열심히 노력했는데 목표를 이루지 못한 친구를 위로할 때 우리가 하는 얘기다. ‘운때’의 ‘운’은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 운이 좋았는지 나빴는지는 막상 일이 벌어지고 난 다음에야 말할 수 있어서, 과학자 사회에서 운은 일종의 금기어다. 재밌는 실험 결과의 이유로 ‘운이 좋아서’라고 적은 논문은 단 하나도 없다. 과학은 오늘의 정보로 내일을 얘기하려 하는데, 운은 거꾸로다. 오늘 운이 좋았는지는, 하루가 지나야 알 수 있다. 마찬가지다. 돼지꿈 꾸었다고 로또 당첨을 바라는 것은 분명 비과학적이다. 하지만, 로또 당첨자를 모아 물어보면 운이 좋아 당첨되었다고 대답할 사람이 많다. 즉, 당첨되었으니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거지, 운이 좋아서 당첨된 것은 아니다. 이처럼 운은 과학자의 눈에 달갑지 않은 단어다. 그런데 말이다, ‘운때 맞음’에서 ‘운’을 뺀 ‘때맞음’은 분명한 과학이다.

그림 1. 노트북의 터치패드를 눌러 ‘삑’소리를 낸 순간을 여러 개의 짧은 세로 막대로 표시한 그림. 11명 참가자가 점점 ‘삑’소리를 내는 순간을 조율해 때맞음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볼 수 있다. 김범준 제공
그림 1. 노트북의 터치패드를 눌러 ‘삑’소리를 낸 순간을 여러 개의 짧은 세로 막대로 표시한 그림. 11명 참가자가 점점 ‘삑’소리를 내는 순간을 조율해 때맞음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볼 수 있다. 김범준 제공

남녀가 만났다. 남자는 첫눈에 반했다. 그런데, 여자는 아무 관심 없다. 함께 사랑에 빠지려면 때가 맞아야 한다. 다른 동물도 비슷하다. 미국에 사는 매미 중에는 ‘17년 매미’가 있다. 오랜 기간 땅 속에 살다 17년마다 지상에 나와 짝짓기를 한다. 매미 한 마리가 땅 속 외로움에 지쳐 1년을 더 못 참고 16년 만에 나오면 짧은 나날을 지내다 홀로 외롭게 생을 마칠 수밖에 없다. 17년이라는 주기로 다른 매미와 때를 맞춘 개체만 자손을 남긴다. 17은 또 소수이기도 하다. 나누어 떨어지는 약수가 1과 자기 자신 밖에 없다. 이 매미의 번식 주기 17년은, 천적과의 ‘때맞음’을 피하려는 생존전략의 진화의 결과다. 천적이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동시에 여럿이 함께 땅 위로 나오면, 성공적인 짝짓기로 자손을 남길 확률이 커진다.

우리 모두의 고향 지구는 하루에 한 번 24시간을 주기로 자전한다. 해가 져 밤이 깊어지면 졸음이 와 잠들고, 굳이 알람을 맞춰 놓지 않아도 아침이면 자연스레 눈이 떠진다. 우리 인간의 생체 리듬은 지구의 자전과 ‘때맞음’되어 24시간이 주기다. 궁금한 것 많은 과학자들이 실험을 했다. 낮인지 밤인지 전혀 알 수 없게 외부의 빛이 차단된 방에서 한두 주 살게 하면 이 사람의 생체리듬은 어떻게 될까. 이때도 인간의 생체 주기가 여전히 24시간 정도라는 결과를 얻었다. 오랜 기간 지구에서 살아온, 사람을 포함한 많은 동물 종은 이처럼 지구의 자전주기에 ‘때맞음’ 되어 있다. 밤에 피는 꽃, 정오에 피는 꽃, 다양한 꽃을 화단에 심고는 어떤 꽃이 피어 있는지를 봐 지금이 몇 시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재밌는 아이디어를 낸 사람도 있다. 바로 생물 분류학에 큰 기여를 한 스웨덴 식물학자 린네다. 지구 자전과 때맞음 된 ‘약 하루 정도의 주기(circadian rhythm)’의 분자적 메커니즘을 밝힌 연구가 2017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기도 했다.

‘때맞음’엔 상호작용이 필요하다

내가 몸담고 있는 통계물리학 분야에서도 ‘때맞음’ 연구가 활발하다. 이쪽 연구가 대개 그렇듯, 상호작용하는 많은 구성요소로 이루어진 커다란 시스템의 ‘때맞음’ 현상이 주된 관심이다. 생물학에서 초파리나 예쁜 꼬마 선충을 모델(model) 생명체로 널리 이용하듯이, 이론 물리학에서도 모델을 이용한다. 물론, 이 모델은 살아서 움직이지 못한다. 수식으로만 존재한다. ‘때맞음’의 모델은 제안자의 이름을 따 ‘구라모토 모형’(Kuramoto model)이라 부른다. ‘때맞음’ 연구의 초파리라고나 할까. 구성요소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 않으면 ‘때맞음’이 안 되지만, 점점 상호작용의 세기를 크게 해 어떤 문턱 값을 넘어서면 갑자기 많은 요소들의 ‘때맞음’이 큰 규모로 일어난다는 것을 이 모형으로 알 수 있다. 즉, ‘때맞음’이 일어나려면 구성 요소들 사이의 일정한 크기 이상의 상호작용이 꼭 필요하다.

우리 일상에서도 ‘때맞음’을 쉽게 볼 수 있다. 여럿이 함께 운동장을 돌며 구보를 한다고 상상해보자.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없으니, 혼자 달릴 때는 각자 속도가 다 다르다. 여럿이 구보를 해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달리는지 전혀 눈치를 보지 않으면, 사람들이 집단을 이뤄 같은 속도로 함께 달릴 리는 없다. 하지만, 사람들이 서로 옆 사람, 앞 사람, 눈치를 보며 함께 달리려 노력하면, 결국 모두가 하나가 되어 같은 속도로 나란히 운동장을 돌게 된다. 구라모토 모형의 결과와 같다. 상호작용하니 ‘때맞음’이 일어난다. 어렵게 사람을 모아 힘들게 달리기를 부탁하지 않아도, 쉽게 ‘때맞음’을 볼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 여럿이 모인 청중에게 박수를 치면서 귀에 들리는 다른 사람의 박수에 맞춰 자신의 박수를 조율해 달라고 부탁하면 된다. 청중이 아주 많지 않다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사람들이 짝, 짝, 짝, 박자를 맞춰 함께 ‘때맞음’된 박수 소리를 만든다.

박수 실험을 재미삼아 여러 번 해보다, 아예 각자의 박수를 모두 데이터로 모아서 어떻게 박수의 ‘때맞음’이 만들어지는지 살펴보았다. 지난 1월의 글에서도 소개한 “ESC 어른이 실험실 탐험”행사를 내가 주최했을 때다. 우리 연구실의 양성규 연구원과 조우성 박사가 간단한 웹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노트북의 터치패드를 누를 때마다 스피커로 ‘삑’ 소리가 나고, 또 눌린 시간 모두를 데이터로 저장했다. 박수 소리를 ‘삑’ 소리로 바꿨을 뿐, 박수의 때맞음과 같은 실험이다. 각자는 여럿이 내는 ‘삑’소리에 맞춰 자신이 내는 ‘삑’소리의 간격을 조정한다. <그림 1>이 바로 당시의 실험 데이터를 그린 그림이다. 실험에 참여한 11명 각자의 데이터는 옆으로 긴 사각형 박스에 하나씩 들어있는데, 터치패드를 누른 순간을 박스 안에 여러 짧은 막대로 표시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삑’ 소리를 내는 것이 점점 ‘때맞음’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음에는 또, 각자가 박수를 치는 주기를 구하고, 어떻게 이 주기가 시간이 지나면서 ‘때맞음’ 되는 지, 막대그래프로 그려봤다(<그림 2>). 옆으로 넓고 야트막했던 막대그래프가 시간이 지나면서 뾰족한 모습으로 바뀌는 것이 보인다. 나중의 뾰족한 봉우리의 위치가 바로 사람들이 ‘때맞음’한 주기에 해당한다.

그림 2.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삑’ 소리를 내는 주기가 어떻게 변하는 지를 보여주는 막대그래프. 처음에는 주기가 다양해 넓고 야트막했던 막대그래프가 시간이 지나면서 때맞음이 일어나 점점 좁고 뾰족한 모습으로 변한다. 김범준 제공
그림 2.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삑’ 소리를 내는 주기가 어떻게 변하는 지를 보여주는 막대그래프. 처음에는 주기가 다양해 넓고 야트막했던 막대그래프가 시간이 지나면서 때맞음이 일어나 점점 좁고 뾰족한 모습으로 변한다. 김범준 제공

여러방향에서 때맞음 연구하기

초파리를 모델로 활용한 다양한 연구가 지금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같은 모형을 써도 얼마든지 다른 연구를 할 수 있다. 우리 연구실에서도 구라모토 모형을 일부 변형해서 전북대학교 홍현숙 교수와 함께 공동연구를 하고 있다. 앞에서 설명한, 운동장을 구보하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자. 또, 그 안에 나도 있다고 상상해 보자. 내 뒤에 오는 사람은 잘 안보여도 내 앞을 달리는 사람은 잘 보인다. 눈이 앞에 달렸으니 뒤는 잘 못 봐도 앞은 잘 본다는 단순한 이유다. 따라서, 다른 사람과 보조를 맞추려 노력하는 상황에서, 난 내 앞을 달리는 사람의 영향을 더 크게 받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구라모토 모형의 원래 형태는 이와 다르다. 앞에서 달리나 뒤에서 달리나 각자는 다른 모든 사람에게서 같은 형태의 영향을 받는다. 앞이냐 뒤냐에 따라 상호작용을 달리한, 조금 변형된 구라모토 모형을 가지고 현재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연구에서 보고자 하는 것은, 상호작용하지 않을 때 각자의 달리기 속도의 평균값과, 상호작용으로 때맞음 된 최종 속도의 평균값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다. 간단히 다시 질문을 적으면, “뒤보다 앞을 더 멀리 보면, 전체는 더 빨리 뛰게 될까”다. 사실, 꼭 달리기를 할 필요도 없다. 음악을 함께 연주하는 연주자도 비슷할 수 있다. 내 바이올린 소리가 다른 연주자의 박자보다 조금 늦춰지는 것을 눈치 챈 바이올린 주자가 박자를 빨리 하려는 경향은 거꾸로 자신의 박자가 빨라 늦추려 할 때와는 상호작용의 형태와 세기가 다를 수 있다. 지휘자 없이 연주자가 합주하는 상황에서, 여럿이 함께 연주하면 박자가 빨라지는지 궁금하다. 답을 주실 수 있는 분은 연락 주시길.

‘때맞음’은 과학이어도 ‘운때 맞음’은 과학이 아니라는 말로 글을 시작했다.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다른 생각도 든다. 어쩌면 ‘운때’의 ‘운’은 나를 둘러싼 모두가 함께 만들어내는, 마치 ‘때맞음’ 된 박수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최종적으로 하나가 된 박수에 각자는 자신의 박수를 맞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전체가 합의한 박자는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든 거다. 어쩌면, ‘운때 맞음’의 ‘운’은 나를 포함한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내는 어떤 것인지도 모르겠다. 만약 ‘운’이 이런 것이라면, ‘운때 맞음’도 과학이 될 수 있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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