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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생각

한국 동상들, 누가 무얼 위해 만들었나

등록 :2016-10-27 19:25수정 :2016-10-27 20:13

박정희 시대, 나라·정권 대한 충성 겨냥
지게 지고 책 읽는 일본 니노미야 동상 영향
“기억은 사람을 소유한다”
박정희 시대에 만들어진 유관순, 윤봉길, 김대건, 세종대왕 동상은 한쪽 팔을 들고 있는데, 이 자세는 로마황제 조각에서 보이는 지도자상의 전형이다. 2009년 건립된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작가 김영원)도 마찬가지다. 사진은 1972년 윤봉길 의사 동상제막식. <한겨레> 자료사진
박정희 시대에 만들어진 유관순, 윤봉길, 김대건, 세종대왕 동상은 한쪽 팔을 들고 있는데, 이 자세는 로마황제 조각에서 보이는 지도자상의 전형이다. 2009년 건립된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작가 김영원)도 마찬가지다. 사진은 1972년 윤봉길 의사 동상제막식. <한겨레> 자료사진

동상 -한국 근현대 인체조각의 존재방식
조은정 지음/다할미디어·1만8000원

“대한의 하늘 아래 어디선가 어제도 오늘도 조국근대화의 밑거름이 되며 묵묵히 쉬지않고 일하고 있는 수많은 숨은 일꾼들을 찾아내서 앞장 세울 것.”

1966년 구성된 애국선열조상위원회(총재 김종필)의 모토다. 위원회는 5·16재단이 주는 5·16민족상 첫해 수상자가 상금 50만원을 내놔 만들었으니 주체는 5·16재단이다. 위원회의 핵심인 전문위원 위원장은 김경승이, 위원으로는 김종영, 김세중, 송영수, 김정숙이 참여했다.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건립분과위원은 김인승이 위원장, 김수근, 차일석, 임영방 등이 위원이었다. 위원회 주도로 만든 동상은 이순신, 세종대왕, 사명당(1968년), 이이, 원효, 김유신, 을지문덕(1969년), 유관순, 사임당, 정몽주, 정약용, 이황(1970), 강감찬, 김대건, 윤봉길(1972) 등 15개다. 충무공(박정희), 세종대왕(김종필), 김유신(김성곤)을 뺀 나머지는 대기업의 헌납으로 만들었다.

서울 절두산 순교지 김대건 신부 동상.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서울 절두산 순교지 김대건 신부 동상.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사임당, 유관순, 이황, 정몽주, 정약용, 김대건은 애초 논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들이 끼어든 까닭은 정주영 현대건설 회장이 정몽주 동상의 헌납자, 조각가 김세중 등이 천주교와 관련된 점, 천주교서울대교구에서 대지를 제공한 점이 작용했다고 본다. 세종대왕, 김유신, 정몽주 동상의 작가는 김경승. 전문위원장 스스로 대상인물을 정하고 자기 자신한테 제작을 발주한 셈이다. 그의 형 김인승이 건립분과위원장이었으니 알 만하다. 15개 중 12개 동상의 제막식에 박정희·육영수 부부가 참여해 막을 걷고 꽃을 바쳤다. 김경승이 만든 세종대왕은 한손에 책을 들고 오른손을 들고 있는데, 이런 자세는 그가 앞서 만든 김구, 안창호 동상에서도 반복됐다. 오른손을 들어 눈길을 끄는 방식은 로마황제 조각에서 보이는 지도자상의 전형이다.

<동상>은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조형물인 동상을 소환해 “사람이 기억을 소유하는 게 아니라 기억이 사람을 소유한다”는 주장을 편다. 지은이는 동상이 언제, 어디에, 어떻게 누구에 의해 세워졌는가에 주목한다. ‘누구’를 파고들면 언제, 어디, 어떻게의 문제는 자연스럽게 풀린다. 박정희 시대에 세워진 동상들은 박정희와 그 휘하의 인물들이 국민의 머릿속에 새기고 싶은 이념, 즉 나라와 정권에 대한 충성 그 자체이다. ‘조국 근대화’의 깃발 아래 국민총동원 체제로 모이기를 바라는 욕망의 투사이기도 하다.

지은이가 인용한 이어령의 1960년대 기록이 인상적이다.

“차가 세종로를 지날 때 바깥을 보던 호암 선생(이병철 삼성회장)이 말했다. ‘상징적인 한국의 문화인물을 찾아봐 주시오. 일본 사람들이 근대화에 성공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니노미야 손토쿠 같은 사람의 조각을 만들어 온 국민의 거울로 삼게 한 덕이 아닙니까.’ 당시 세종로에는 군사정부가 급조한 석고상들이 비에 젖어 몰골 사납게 허물어져가고 있었다.”

1970년 유관순 동상 제막식. <한겨레> 자료사진
1970년 유관순 동상 제막식. <한겨레> 자료사진
니노미야 손토쿠(1787~1856)는 일본 근대화의 바탕이 된 농촌 개량운동에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오랫동안 초등학교 교과서에 그의 이야기가 실렸고, 지게 지고 책을 읽는 모양의 동상이 1m 크기로 1천여 개가 만들어져 일본 전역에 세워졌다. 이들의 대화는 강점기에 교육을 받은 한국 지도층에게 지게 지고 걸어가면서 책을 읽은 소년이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습으로 각인되었다는 방증이다. 니노미야는 이승복 동상으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한국에 동상이 보편화한 때는 1930년대. 지은이는 ‘동상의 시대’라고까지 명명하는데, 1930년대 신문과 기타 기록을 뒤져 세워진 게 확실한 동상 60개의 목록을 제시한다. 제작연도 불명의 20여 개를 합치면 80여 개에 이른다. 이들 동상은, 건립을 위한 모금활동이 총독부의 승인을 받아야 했던 만큼 일제의 지향점과 일치하는 인물이 대부분일 수밖에 없었다. 동상들은 1942~43년 총알과 대포 제작용으로 공출되는데, 본받으라며 만든 동상을 금속 덩어리 취급하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이들 인물이 전쟁에 출정한다는 의미를 부여했다.

“동상이 세워지고 사라져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덧없음이다. 그럼에도 어느 샌가 공공장소에 솟아나는 동상들은 시간이 지난 후에는 우리의 공간에 대한 추억을, 그리하여 각인된 역사의 기억을 소환할 것이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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