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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페미니즘 가이드] 전투력 키울 ‘무기’가 필요할 때

등록 2016-09-29 19:54수정 2017-03-07 15:13

<상>

막연한 ‘여성주의’ 어찌 읽을까
여성학연구자들의 추천 도서
10~20대 ‘지식 무기’ 돼줄 책들
페미니즘은 무엇인가? ‘젠더 불평등을 강조하는 갈등이론’(앤서니 기든스·필립 서튼, <현대 사회학>)인가? 삶의 태도이자 사상, 교육, 이론, 운동인가? 허탈하지만,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들다고 하는 것이 가장 정답에 가까울 수 있다. 심지어 정치학자 제인 프리드먼은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정의할 수 없다는 가정’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밝힐 정도. 하지만 이런 페미니즘‘들’이 지닌 복잡성과 다양성이 페미니즘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의 ‘의욕’을 꺾은 측면도 없진 않다. 이에 페미니즘 추천도서를 소개하는 ‘페미니즘 가이드’를 상, 하에 걸쳐 소개한다. 순서대로 읽는다면 더욱 좋겠다.

10대용 책을 추천한 여성학연구자 김고연주씨는 한국 사회를 진단하는 동시에 대응법을 알려주는 안내서, 입문서, 실전서를 골랐다. 그는 “지금 인터넷 중심의 여성혐오는 당장뿐 아니라 미래 전망마저 어둡게 하는 요인이며 10대들도 자신의 오늘과 내일을 위해 페미니즘을 필요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학연구자 권김현영씨는 20대가 읽을 만한 책들을 추천하며 “세상과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마음의 크기를 키울 수 있는 책, 혁명이 시작되는 순간 되돌아갈 곳이 없을 때 읽고 싶은 책, 싸움을 시작할 즈음 맞닥뜨리게 되는 어지러운 감각에 응원을 보내는 책들을 소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10대 추천

지난 5월17일 발생한 여성 살인사건을 다룬 <강남역 10번 출구, 1004개의 포스트잇>은 강남역 10번 출구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붙인 ‘추모 포스트잇’ 1004개를 일일이 옮긴 역사적 기록이다. 직접 강남역에 갔던 10대들이나, 현장에 가지 못했지만 깊은 슬픔과 분노를 느꼈던 10대들은 슬픔과 분노의 감정을 ‘언어화’한 이 기록을 보면서 자신의 감정을 좀 더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실천을 모색하는 용기는 덤이다.

‘메갈리안’들에 의해 다시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이갈리아의 딸들>은 1977년 노르웨이에서 나온 소설로, 이제는 페미니즘 고전의 반열에 올라섰다고 생각되는 책이다. 낯설고 충격적이지만 동시에 아주 익숙한 내용을 담았는데, 무엇보다 재미있다. 성평등 국가 1, 2위를 다투는 노르웨이기 때문에 40년 전에 출간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왜 한국을 ‘여성혐오’ 사회라고 하는지 궁금하거나 ‘미러링’ 전략의 기원이 궁금한 10대들에게 도움이 될 듯하다.

씁쓸하지만, 한국의 10대 여성들도 이미 경험했을 것이고 앞으로도 여러 번 경험하게 될 이야기들을 다룬 책들도 있다. 프랑스의 남성 만화가 토마 마티외가 친구들과 네티즌들에게 들은 성차별, 성폭력 경험담을 그린 그림책 <악어 프로젝트>는 프랑스 여성들이 길거리, 대중시설, 직장, 집에서 모르는 사람, 친구, 동료, 상사, 선생, 이웃, 애인에게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성폭력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성폭력은 실상을 아는 것이 힘. 성폭력 사례와 대응방안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으니 친구들과 함께 연습해 보길 권한다. 스웨덴의 고교생 성평등 교육 교재라는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는 여성과 남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쉽고 재미있게 알려준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커밍아웃’하는 것이 엄청난 비난과 편견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라는 나이지리아의 현실은 한국 사회와 놀랍도록 유사하다. 그럼에도 저자는 ‘모두가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페미니즘이 여성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자유와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기 때문이다.

‘고구마를 먹다가 사이다를 마신 것 같은 책’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입이 트이는 페미니즘>은 일상에서 상식에 기반해 이의를 제기하고 토론하는데도 왜 항상 ‘내’가 잘못한 것 같고, 못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지, 그럼에도 왜 ‘나’는 억울하고 분해서 ‘이불킥’을 날리곤 했는지를 잘 설명해준다. 상대의 유형별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조목조목 알려주는 실용서이기도 하다. 심각한 내용을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해주는 20대 언니(누나)의 경험과 조언. 정말 입이 트일 것이다.

20대 추천

“언니가 부러운 나머지, 농 속에 갇힌 나의 앞길을 생각하는 나머지, 자꾸 울고 싶습니다. 남들은 배움을 찾아 창해를 헤치고 산을 넘어 세상과 싸워나가는데, 저는 잔솔밭 밑에서 오고가는 기차만 바라보고 있습니다.”(이경자, <신가정>, 1936) 1904년에야 장옷을 벗고 길 위에 선 여성들은 처음으로 앞서가는 여성의 모습을 보며 다른 꿈을 꾸기 시작한다. <신여성, 길 위에 서다>는 나혜석, 김일엽, 허영숙, 허정숙 등 당대의 신여성들이 만난 다른 세계에 대한 소감으로 읽어도 좋다. 한국 근현대사 여성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시작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추천한다.

사강이 “나에게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며 성적으로 자유롭고 지적으로 뛰어난 젊은 여성의 모습을 전세계인의 뇌리 속에 새겼다면, <비행공포>에서 지은이 에리카 종은 “나는 남자의 페니스가 다 거기서 거기라는 사실을 깨달을 정도로 여러 남자와 잤다”고 말하는 여주인공을 등장시키고 “투표권은 여성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에겐 무기가 필요하다”는 문장을 인용한다. 해방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건 세계를 파괴하고 다시 건설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비굴해지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거야”라고 되뇌어보자.

<케테 콜비츠>는 “묘사된 대상에 자신을 동일시하는 동감”을 그려내기 위해, “작업 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반성적 거리를 유지”한다. 그래서 그녀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는 고통으로 가득차 있지만 결코 무력하지 않다. 그녀의 인생관은 “인생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살아가면서 꺾이지 않으며, 강인하게 자신의 일을 꾸려가는 것”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케테 콜비츠, 페트라 켈리, 엠마 골드만처럼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고 생각한 페미니스트 행동주의자들이 보여준 용기의 원천은 “삶을 있는 그대로 보는 힘”에 있었다.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는 거리낌 없이 관찰한 것을 묘사하고, 비판에 민감하지만 논쟁에 기꺼이 뛰어들곤 했던 마거릿 미드와 부드럽고 상냥한 태도로 모두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면서도 어떤 동료 남성지식인보다도 ‘이론적’인 글쓰기에 능했던 루스 베네딕트라는 두 인물의 지적 궤적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벅차다. 이토록 다른 두 사람이 평생에 걸쳐 상대에게 집중해가며 서로를 성장시키고 때로는 발목을 잡았던 시간들이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지는데, 가장 이상적이고도 현실적인 연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직도 수많은 유사과학 자기계발서들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선사시대 사냥과 채집의 성별분업 결과로 설명한다. 자신을 사냥꾼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을 대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원시시대부터 지금까지 진화하지 않았다는 걸 인정하는 거냐고 가볍게 받아 넘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선사시대와 신석기 시대의 사냥과 채집이 가진 신화를 밝혀내는 과정에서 풍부한 지식과 새로운 해석을 제공해주는 역사학자 거다 러너의 분석(<가부장제의 창조>) 등을 설명해주는 것이다. 실비아 페데리치의 <캘리번과 마녀>, 세라 블래퍼 하디의 <어머니의 탄생>과 함께 읽으면 더 좋다. 엄청난 지식폭탄을 손에 들고 어떤 논쟁에서도 중심을 잡게 해줄만한 무기들이다.

김고연주/여성학연구자, <조금 다른 아이들, 조금 다른 이야기> <길을 묻는 아이들> <우리 엄마는 왜?> 등의 저자.

권김현영/여성학연구자, <성폭력에 맞서다> <성의 권리 성의 정치> <남성성과 젠더> 등의 공저자.

<10대 추천 도서>

강남역 10번 출구, 1004개의 포스트잇- 어떤 애도와 싸움의 기록
경향신문 사회부 사건팀 지음/나무연필(2016)

이갈리아의 딸들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지음, 이현정 옮김/황금가지(1996)

악어 프로젝트-남자들만 모르는 성폭력과 새로운 페미니즘
토마 마티외 글·그림, 맹슬기 옮김/푸른지식(2016)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김명남 옮김/창비(2016)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이민경 지음/봄알람(2016)

<20대 추천 도서>

신여성, 길 위에 서다-잃어버린 풍경 3, 1920~1940
나혜석 외 지음, 서경석·우미영 엮음/호미 (2007)

비행공포
에리카 종 지음, 이진 옮김/비채(2013)

케테 콜비츠
카테리네 크라머 지음, 이순례·최영진 옮김/실천문학사(2004)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
로이스 W. 배너 지음, 정병선 옮김/현암사(2016)

가부장제의 창조
거다 러너 지음, 강세영 옮김/당대(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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