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픔은 다이어트일 수 있고, 기아(만성 영양실조)일 수도 있다. 단식투쟁은 몸의 연약함과 권력의 막강함을 대비한다. 사진은 1981년 영국의 한 교도소에서 단식투쟁 끝에 숨진 보비 샌즈의 삶을 그린 영화 <헝거>의 한 장면. 당시 27살이었던 보비 샌즈는 단식 66일 만에 숨졌다. 오드 제공
‘배고픔’에 대한 집중 탐구
의학적 인문학적 정치적 접근
인간과 인류의 맨얼굴 드러내
남이 아닌, 나와 우리의 이야기
의학적 인문학적 정치적 접근
인간과 인류의 맨얼굴 드러내
남이 아닌, 나와 우리의 이야기
샤먼 앱트 러셀 지음, 곽명단 옮김
돌베개·1만5000원 1990년대 후반, 어떤 이유로 일주일을 굶은 적이 있다. 2~3일이 지나 큰 고통은 사라졌고, 나중엔 몸도 가벼워지는 듯했다. 함께 굶는 사람들이 있어 마음이 편했을 수도 있다. 단식을 끝내고, 처음 된장국 한 모금을 아주 천천히 마셨다. 몇 분 동안 입안에서 굴렸다. 아…. 그 된장국 한 모금은 세상 그 어떤 음식보다 맛있었고, 지금까지도 분명 그렇다. <배고픔에 관하여>는 제목 그대로 배고픔이라는 현상을 꼭 집어 다룬다. 제3세계의 기아 문제를 다룬 저작은 더러 나왔지만, 이토록 광범위하면서도 집요하게 배고픔을 다룬 책은 별로 없었다. 배고픔이라는 현상의 의학적, 종교적, 사회적, 정치적 맥락을 하나하나 살피는데, 그래서 배고픔은 그때마다 굶주림, 금식, 다이어트, 단식, 기아 등으로 자신의 이름을 바꾼다. 이 과정에서 벽면 전체를 채울 한 폭의 큰 그림이 완성되는데, 그림의 주제는 결국 인간이 될 터이다. 지은이는 미국 웨스턴 뉴멕시코 대학의 인문학부 교수로서 글쓰기를 지도하며 자연 및 과학 저술가로 활약하고 있다. 지은이는 먼저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소설 <단식광대>(1922)를 소개하면서 책의 문을 연다. 19세기 유럽에서는 실제 며칠, 몇 주 동안 공개된 작은 우리 속에서 ‘단식 공연’을 벌이는 사람들이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소설은 비극으로 끝나지만, “음식은 우리를 유혹하고 반대로 단식도 우리를 유혹한다”는 점을 확인시켜준다. 건강이나 몸매를 위한 ‘자발적 단식’은 우리 주변에 흔하고, 바빠서 아침을 못 먹는 ‘비자발적 단식’은 이미 생활이다. 우리 모두가 어쩌면 단식광대일지도 모른다. 이어 배고픔이란 과연 무엇인지 직접 묻는데, 얼마나 굶는지에 따라 답은 달라진다(2~5장). 당신이 저녁을 먹고 다음날 아침을 거른다면 18시간을 굶는 것이다. 그 시간 동안 몸속 소화기관은 포도당과 지방산을 생산하는 굉장한 과학 드라마를 펼쳐낸다. 하루 반(36시간)을 굶었다면 이는 주로 빈곤의 문제이고, 7일 단식은 종교적 금식일 경우가 많다. 30일 단식은 건강단식 요법인 경우도 있다. 참고로, 미국의학협회는 건강을 위한 단식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양을 줄이되 필수 영양소를 두루 갖춘 음식을 먹은 쥐가 노화도 훨씬 더디고 수명도 길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 검증됐다. 준비운동이 끝났는가. 6장 단식투쟁을 시작으로 배고픔의 세계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건강단식이 자신의 몸과 대화하는 것이고 종교단식이 신과의 대화라면, 단식투쟁은 세상을 향한 외침이다.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이 정치투쟁의 한 방법으로 단식을 시작한 것을 비롯해, 위대한 영혼(마하트마) 간디가 48살 때 공적 단식투쟁을 시작한 사례 등이 이어진다. 1947년 인도의 독립 과정에서 벌어진 살인과 학살에 맞선 간디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은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20세기 후반, 단식투쟁은 더욱 흔해졌다. 1981년 10명의 아일랜드 투사가 잇달아 단식투쟁 과정에서 숨진 것은 한 편의 드라마이다. 마이클 패스벤더가 주연한 영화 <헝거>는 그 참혹한 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집단적 기아(또는 만성적 영양실조)의 세계는 또 얼마나 복잡한가. 20세기에 이르러서도 기아 사례는 계속 이어졌는데, 지은이는 두 가지 사례를 집중 조명하면서 그 의미를 파고든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 만든 게토에선 3년 동안 기근 정책을 펼쳤다. 독일인은 2613칼로리였지만, 유대인의 하루 배급량은 184칼로리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쓰러져갔다. 그럼에도 게토의 유대인 의사들은 굶주림이 인간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는 연구를 이어갔고 한 편의 보고서를 완성했다. 보고서의 학술적 가치뿐만 아니라 의사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의 품격과 과학자의 자세를 잃지 않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와 별도로 1944년 미국 미네소타대학에서 벌어진 ‘미네소타 기아 실험’은 배고픔에 대한 과학 실험의 고전적 사례이다. 1년에 걸쳐 실험 지원자들은 자신 체중의 24%를 줄이는 ‘준기아’ 상태를 체험했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했던 지원자들은 나중에 자신의 손가락을 자르는 등 정신질환 증세까지 보인다. 배고픔 문제의 종착역은 역시 정치이다. 인류학자 낸시 셰퍼휴스가 1993년 펴낸 <울음 없는 죽음: 브라질의 일상생활 속 폭력>(Death Without Weeping)은 이를 잘 보여준다. 만성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브라질 북부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들을 살폈는데, 자식들의 죽음에 엄마들은 너무나도 무덤덤했다. 셰퍼휴스는 만성적 굶주림으로 “심장이 둔해진다. 뼈가 약해진다. 그리고 아이들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고 적었다. 인간성까지 좀먹는 굶주림은 사회적 질병이라는 얘기다. 다이어트 문제와 연결해 거식증 문제를 살피고 난 뒤, 지은이는 결국 ‘굶주리는 아이들’ 문제에 이른다. 1984년 영국 <비비시>(BBC)가 에티오피아 기근을 다룬 다큐멘터리는 엄마 곁에서 죽어가는 세 살배기를 전세계에 보여줬고, 4억명 이상이 이를 지켜봤다. 이는 식량 원조의 역사에 전환점이 됐고, 1993년 수단에서 ‘독수리와 소녀’ 사진을 찍어 퓰리처상을 받은 사진기자 케빈 카터 이야기로 이어졌다. 카터는 1년 뒤 “그 아이를 안아주지 못한 것이 정말로 부끄럽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이들의 죽음 행렬이 절망만 낳은 건 아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아이들을 되살릴 과학적 방법이 다듬어졌고, 실제 되살린 아이들도 늘었다. 지은이는 그 순간을 이렇게 읊었다. “깜짝 놀랄 변화를 보게 될 것이다. 새벽빛을 보게 될 것이다. 비참을 걷어내는, 경이로운 무엇인가를.”
1845~1850년 발생한 아일랜드 대기근을 표현한 삽화. 당시 100만명이 굶어 죽었고, 200만명이 이민을 떠났다. 돌베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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