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출판사 수가 5만개를 돌파했다. 문화체육관광부 누리집 출판·인쇄사 검색시스템의 3월 초 출판사 숫자가 5만212개였다. 등록·신고 출판사가 1만개를 돌파한 것은 20년 전인 1994년이다. 이후 2003년에 2만개, 2008년에 3만개, 2012년에 4만개를 기록했다. 출판사가 1만개씩 늘어나는 기간은 9년, 5년, 4년, 2년으로 가속도가 붙었다. 국민 1000명당 출판사가 하나인 셈인데, 아마도 한국은 인구 비례로 세계 최다 출판사 보유국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울창한 출판문화의 지표가 아니라 영세성의 세포분열에 가깝다. 지난해 대한출판문화협회를 거쳐 국립중앙도서관에 신간을 납본한 출판사는 2895개(신고 출판사의 6%)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연간 5종 이하의 책을 발행한 곳이 절반 이상이고, 연간 20종 이하 발행사가 81.5%였다. 즉 대다수 출판사들이 개점휴업 상태이며 출판 활동이 활발한 곳은 소수에 불과하다.
출판시장 규모가 축소되는 추세에서 이처럼 신고 출판사의 허수가 급증하는 현상은 우려스럽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4년 가계동향조사 결과에서 가구당 월평균 도서구입비는 1만8154원이었다. 이 수치를 뜯어보면 교과서와 학습참고서 구입비는 1만517원(58%), ‘기타서적’에 해당하는 단행본 구입비는 7637원(42%)이다. 지난해 도서 평균 가격(대한출판문화협회 집계) 1만5631원을 대입하면, 3인 가구 기준으로 일반도서(단행본)를 1년에 1인당 2권밖에 구입하지 않은 셈이다. 가구당 월평균 일반도서 구입비는 5년 전인 2009년(1만261원) 대비 25.6% 감소한 것이어서 출판시장 경색이 이만저만 아니다.
출판산업 활성화가 절체절명의 화두로 부각된 상황이지만 해법 마련은 쉽지 않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출판시장과 독서 생태계의 총체적인 마케팅 능력을 높이는 일이다. 사회적으로 책, 독서, 출판사, 서점의 존재감을 키우고, 그 자장 안에 독자들을 모으는 매력적인 매개 장치의 마련과 입체적인 제도 개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잠재 독자들은 삶이 각박해서 책을 안 읽고 안 산다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희망을 품기 위해 책을 더 읽고 더 구입할 수 있도록 끌어들이는 독자 친화적인 환경 조성이 절실하다. 해야 할 일의 목록만으로도 책 한 권이 모자랄 지경이다. 문제는 그런 일들이 구두선에 그친 채 거의 실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컨트롤타워도 없고 속수무책이다.
이런 현실을 모를 리 없는 정부는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 100일을 맞은 3월 초 “새 도서정가제가 연착륙하는 성과를 나타냈다”고 자평하는 보도자료를 내놨다. 오로지 가격 인하 효과만을 강조했다. 그러나 현행 정가제에서 10% 할인과 5% 마일리지 적립은 기본이고, 거의 무제한의 경품 제공이 가능하며, 제휴카드에 의한 40% 할인은 덤이다. 5000종이 넘는 재정가 책정 도서의 평균 가격 인하율은 55%나 되었다. 책의 시장질서를 전혀 추스르지 못하는 이 제도를 도서정가제라 부르는 것도 언어도단이지만, 출판시장의 질곡을 방치하는 정책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진정성을 찾기란 어렵다. 책 생태계의 심장인 출판시장 살리기에 정부와 산업계가 비상한 각오로 나설 때다.
백원근 재단법인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