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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생각

나치 집권 과정을 지켜본 지식인의 회고

등록 :2014-10-12 22:06

‘하켄크로이츠’ 깃발이 나부끼는 나치 집회장의 히틀러. <한겨레> 자료사진
‘하켄크로이츠’ 깃발이 나부끼는 나치 집회장의 히틀러. <한겨레> 자료사진
개인사적 체험을 줄기로 서술
반대파들의 오판과 변절 그려
어느 독일인 이야기
제바스티안 하프너 지음, 이유림 옮김
돌베개·1만6000원

1933년에 집권한 히틀러의 독일 정권 장악 과정과 그 뒤의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제3제국’ 건설 기간에 독일인들은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1933년 3월5일 선거 때만 해도 독일인 가운데 절반이 넘는 숫자가 히틀러에 반대표를 던졌다. 2차대전 전 마지막 치러진 그 선거에서 나치는 득표율 44%(그 전 선거 지지율은 37%)로 사실상 패배했다. 56%가 나치에 반대했다. 그러나 나치가 휘두른 테러의 공포와 불안 속에 대중들은 너무나도 쉽게 굴복하고 열렬한 나치 지지자로 돌변해갔다.

독일 작가 제바스티안 하프너(1907~1999)의 <어느 독일인 이야기>는 그야말로 “강도와 살인자가 국가권력의 옷을 빌려 입고 경찰로 등장”한 나치 집권까지의 독일 역사를 살핀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부터 1933년 ‘나치 혁명’ 초기단계까지다. 그 방식이 독특하다. 프로이센 고급관료를 아버지로 둔 가정의 ‘부르주아 소년’이었던 7살 때부터 31살 때까지, 지은이 자신의 개인사적 체험을 기본줄기로 삼아, “제3제국을 만들었고 오늘날에도 보이지 않게 그 배경을 이루고 있는 독일인의 심리적 발전·반응·변화”를 추적한다.

‘오늘날’이란 지은이가 이 책을 집필한 1939년이다. 그는 바로 그 전해인 1938년 독일을 빠져나가 영국으로 망명했다. 따라서 당시의 ‘현장체험’을 토대로 한 이 책의 독일 사회 분위기 묘사는 어떤 책보다 생생하고 풍부하며 정확할 수 있다. 그럼에도 묘사는 시종 냉철하고 차분한 자세를 잃지 않는다.

“무시무시한 일이 천천히 다가오는데도 방심하고, 그들의 적(히틀러)이 나날이 깨뜨리는 규칙에 가망없이 매달리다가” 반나치 저항세력은 차라리 히틀러에게 ‘책임(권력)’을 넘겨줌으로써 그를 극악한 폭력추구자에서 ‘해롭지 않은’ 존재로 바꾼다는 안이하고 무책임한 전략을 채택했다. 게다가 히틀러가 총리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지은이와 그의 아버지처럼, 독일인 다수는 히틀러가 집권하더라도 오래 못갈 것이라는 점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히틀러를 대변자로 내세운 대체로 반동적인 정부는 히틀러라는 첨가물만 빼면 브뤼닝 이후 이어진 지난 두 정부와 그리 다르지 않다. 아무리 나치를 끌어들여도 그들은 의회의 과반수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물론 의회를 언제든지 해산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의 과반수도 정부에 분명하게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특히 노동자들은 신중한 사민주의자들이 마지막으로 수치를 당한 이후 아마 공산주의적으로 변할 것이다.” 그들은 그리하여 나치당 각료가 그 외에 2명뿐인 히틀러 정권이 아무리 급격하게 반혁명을 추진하고 반유대주의를 부르짖고 군비확장을 추진해도 최후의 보루인 국민 절대다수가 나치에 반대하고 있는 이상 파국적 상황은 오지 않으리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독일민족주의를 앞세운 나치는 집권 뒤 정당을 해산하고 유명 학자와 문인들을 ‘민족 반역자’의 이름으로 추방했으며 배우와 방송인들을 제거하고 책과 신문·잡지들을 폐간하는 등 쉴새없이 몰아쳤고, 살인·방화를 불사하는 노골적인 폭력을 동원하고 ‘빨갱이’와 유대인을 악마화하는 선전선동을 통해 반대자들을 무자비하게 말살했다. 제3제국 건설의 추진력은 나치의 폭력만이 아니었다. 56%의 지지를 받은 반대 정당과 조직, 그들 지도자들의 비겁과 변절이 나치를 도왔다. 저항세력 지도부의 비겁과 도덕적 파탄, 무기력, 변절은 좌우를 가리지 않았다. 나치에 반대했던 사람들조차도 자신들의 안위를 보장해줄 저항거점이 사라진 상황에서 대세화한 나치 쪽으로 무더기로 투항했다. 공포와 신경쇠약 징후 속에서 노동자들마저 수십만명이 사민당이나 공산당을 버리고 나치 돌격대가 됐다.

“나치의 적들이 예상한 것은 하나도 들어맞지 않았다. 그들은 나치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제 나치가 이겼다. 나치의 적들은 틀렸다. 그러므로 나치가 옳다.” 좌파에게 모든 것은 자본주의 탓이 아니라 유대인 탓이 됐다. 수백만 독일인들의 신경기능이 한꺼번에 무너지면서 무소불위의 제3제국은 세계의 악몽이 됐다.

<어느 독일인 이야기>는 지금의 일본을 떠올리게 한다. 아베의 개헌 작업은 최종적으로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는 만큼 국민 절반 이상이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불가능하다고들 한다. 아베가 총선에서 압승했지만 저조한 투표율로 실질적 지지는 유권자 30~40%에 지나지 않는다고도 한다. 하지만 독일 제3제국 성립과정을 보면 그렇게 낙관할 수만은 없다. “유대인 뒈져라!”라는 그때의 외침이 오늘 일본에서 마구 터져나오는 “조센진 죽여라!”라는 야만과 얼마나 다를까. 우익들의 야당의원 낙선운동과 일본 외교정책 비판자에 대한 살해위협이 공공연히 자행되는 일본. 하지만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하고 현역 국회의원을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하고 소속정당 해산심판 청구소송까지 벌이는 위헌적 사태에도 제대로 저항조차 할 수 없는 이땅의 상황 또한 얼마나 다를까.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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