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고 기쁘고 매우 자랑스럽다.”
“엄청난 노력과 수고가 들었지만 해낼 수 있었다는 게 몹시 기쁘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 즐거웠고 많이 배웠다.”
미국 매릴랜드 주에 사는 조앤 슈왈스키(Joan Suwalsky, 70)와 버지니아 주의 데비 켄트(Debbi Kent, 62)가 한국 전통 수공예를 소개하는 영문 책을 함께 냈다. <100 Thimbles in a Box-The Spirit and Beauty of Korean Handicrafts>. 우리말로 풀면 ‘함에 담긴 골무 100개-한국 수공예의 얼과 아름다움’이다.
“미국 등 서양에도 골무가 있지만, 목적은 같아도 쇠 등으로 만들어진 서양 골무는 한국 골무처럼 예쁘지 않다.” “골무뿐만 아니라 조각보 등 일상생활 속의 한국 수공예품은 굉장히 실용적이면서도 아름답다. 게다가 거기에 들어 있는 호랑이, 까치, 연꽃, 사군자, 십장생, 오방신장 등 장수와 행복 등의 주술적 의미를 담은 상징물들에 대해 알게 되면 될수록 더 깊이 빠지게 된다. 미국에도 장식물들이 많지만 수천·수백 년의 역사와 전통이 배어 있는 상징물들을 활용하는 한국 공예품들은 다르다.”
책은 큰 판형(280×220㎜)에 도자기·옹기, 섬유, 한지, 목공예, 금속공예, 상감, 회화 등 7개 분야의 44가지 공예품을 집대성했다. 500여 장의 고화질 사진들과 꼼꼼하고 정성스런 해설이 담겨 있다. 책을 펴낸 서울셀렉션의 김유진 팀장은 “한 두 가지 분야의 한국 전통공예를 전문적으로 다룬 책은 있었지만 이렇게 다양한 공예 분야를 한 권에 아우른 영문 소개서가 출간된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28일 경복궁 옆 서울셀렉션을 찾은 이들은 어떻게 한국 전통 수공예 책까지 내게 됐느냐는 질문에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인사동 등을 다니면서 살펴 본 한국 전통 수공예품들이 너무 예쁘고 맘에 들었다. 일본과 중국 공예품들은 종종 봐 왔으나 그것들과 다른 새로운 것이었다.” 조앤은 “한·중·일 3국이 지리적으로 가깝고 역사적으로도 밀접하게 얽혀 있지만 한국의 전통 공예는 그 문화적 색채가 전혀 달랐다. 알면 알수록 그랬다. 놀라운 일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직관적이고 자연친화적이며 소박하고 유머러스한 점”을 한국 전통 수공예의 특징으로 꼽았다.
데비 역시 크고 화려하고 강렬한 중국 공예와 절제된 비장미의 일본 공예와 달리 “그 중간의 적절함과 우아함, 쉽게 즐길 수 있는 크기와 유머”를 지닌 한국 공예를 사랑한다고 했다. 특히 무섭고 위험한 호랑이를 어리숙하고 친숙하게 표현한 민화나 석조물 등의 유머감각에 놀라움을 표시하면서 “그것이 20년 넘게 한국을 오가며 느낀 한국문화의 전체적인 특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조앤은 “호랑이, 해태, 도깨비 등 야수나 괴물을 웃고 있는 형상으로 묘사한 곳은 한국밖에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두 사람은 한국 전통 수공예의 그런 멋과 아름다움을 미국의 이웃들에게 전하면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들은 이를 위해 관련 책들도 찾아 보았으나 “글과 사진 모두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고 했다. 이번에 책을 내자고 마음먹은 이유 중의 하나다. 일본과 중국 전통 공예에 비해 한국 전통 공예들이 세상에 덜 알려지고 상대적으로 푸대접을 받고 있는 것도 책을 쓰고 싶게 만들었다고 했다.
두 사람이 한국 전통 공예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모두 한국 아이를 입양하면서부터. 조앤은 1980년대에 남녀 아이 두 명을, 데비는 1990년대에 여자아이 두 명을 그들이 생후 3~6개월 때 각각 입양했다. 두 사람이 만난 것도 입양 관련 모임에서였다. 그렇게 해서 10여 년 전부터 함께 한국을 찾았고, 한국 전통 공예의 아름다움에 빠졌다.
“조그마한 꽃봉오리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모습으로 예쁘게 피어나는 것을 보는 건 경이요 기쁨이었다. 그들이 자라면서 보여준 색다른 모습들, 예컨대 고집스러움, 어른들에 대한 공경, 가족에 대한 강한 애착 등에서 언뜻언뜻 한국의 모습, 한국적 디엔에이(DNA)를 발견했다. 신기하고도 기뻤다.”
발달심리학자로 미 국립기관에서 입양아 지원과 연구활동을 해 온 조앤과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 온 데비는 아이들이 사춘기에 들어설 무렵부터 한국 전통, 그들의 뿌리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미국이 아무리 다문화사회라지만 한국인 핏줄을 지닌 아이는 문화적으로는 미국인이지만 자라면서 외관부터 주변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로 인한 충격을 줄여주기 위해 한국을 알려주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해줘야 한다.”
입양한 아이들에 대한 그들의 사랑과 관심이 한국에 대한 관심으로, 다시 한국 전통 공예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진 셈이다. 데비는 “그 전에는 한국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도 몰랐다”고 했다.
20~30대가 된 아이들은 지금 야생동물보호기금, 도시빈민지원기금에서 일하거나 요리사, 대학생 등으로 각자 제몫을 하며 잘 살고 있단다. 자신의 뿌리와 출신지 문화적 유산에 매우 긍지를 갖고 있고, 그렇게 해준 어머니들에 고마와하고 있단다.
조앤과 데비는 미국 내 한국문화캠프와 문화학교 등에서 부모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국 수공예에 관한 워크숍과 강좌도 개발하고 진행해 왔다. 자신의 아이들뿐만 아니라 다른 한국 입양아동과 그 가족들에게도 아이가 태어난 문화를 소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들은 말했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