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보수 근본주의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한국 창조과학론자들은 성서 내용을 문자 그대로 믿는다. 그들은 지금 세상이 6000~1만년 전 창조주에 의해 지금 모습대로 창조되었다는 ‘창세기’ 신화를 떠받들면서 진화론을 부정하고 있다. 그림은 영국 화가 겸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의 <태초>(The Ancient of Days).
미국 보수 근본주의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한국 창조과학론자들은 성서 내용을 문자 그대로 믿는다. 그들은 지금 세상이 6000~1만년 전 창조주에 의해 지금 모습대로 창조되었다는 ‘창세기’ 신화를 떠받들면서 진화론을 부정하고 있다. 그림은 영국 화가 겸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의 <태초>(The Ancient of Days).

예수와 다윈의 동행
신재식 지음/사이언스북스 펴냄

2009년 6월에 출간돼 주목을 받았던 3인의 공저 <종교전쟁- 종교에 미래는 있는가?>에서 과학철학자인 장대익 서울대 교수는 “종교의 유통기한은 이제 끝나지 않았느냐?”는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했다. 당시 신재식 호남신학대 교수는 성서 무오류를 고집하는 창조과학·지적설계론의 ‘성서 문자주의’를 비판하면서, 다윈 이후의 진화론을 비롯한 현대과학의 놀라운 성과를 토대로 한 과학 만능의 무신론적·유물론적 문자주의도 배격했다. 대신 그가 내세운 것은 ‘진화론적 유신론’이었다. 모든 것은 태초에 신이 정해 놓은 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기독교적 신의 존립 근거를 흔들어놓은 다윈의 진화론과 유신론의 결합이 과연 가능할까?

신 교수는 생명세계에 대한 여러 차원의 독법이 가능하다는 ‘설명의 다원주의’(explanatory pluralism)라는 개념을 통해 과학과 종교는 상보적인 공존·동행이 가능하다고 설파했다. ‘그리스도교와 진화론의 공존을 모색한다’는 부제를 단 신 교수의 <예수와 다윈의 동행>은 거기서 좀더 깊이 들어간다. 신 교수는 갈릴레오 갈릴레이 이후 뉴턴과 다윈을 거쳐 사회생물학의 에드워드 윌슨과 도발적인 무신론적 진화론자 리처드 도킨스에 이르기까지 과학혁명 300년을 돌아보면서 종교와 과학의 갈등 및 동행의 ‘역사’, 그리고 창조-진화 논쟁의 ‘내용’과 그 한계를 살피고 진화론적 유신론의 대안적 가능성을 천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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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전쟁>에서 대담자들은 한 가지 사안에 대해서만큼은 이견이 없었다. 그것은 보수 복음주의=근본주의 교파들이 고집하는 창조과학·지적설계론에 대한 단호한 비판이었다. 신 교수는 이번 책에서도 “한국 교회의 자연과학에 대한 기피와 교계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자기들만의 대화는, 결국 지식사회뿐만 아니라 일반사회로부터 외면받는 상황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해 창조론자들 압력에 굴복한 고교 과학교과서 출판사들 몇 곳이 진화의 증거로 제시된 시조새와 말에 관한 화석상의 사실들을 삭제하거나 수정하기로 했다고 발표하자 과학학술지 <네이처>는 ‘한국, 창조론의 요구에 항복’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신 교수는 창조론 고집이 “오해와 불신과 적대감을 낳고, 나아가 한국 교회 전체의 신뢰성에 의문을 갖게 할 것”이라면서 한국 교회 안에 만연한 이런 “비지성주의와 반과학주의”가 젊은 사람들의 교회 이탈과 한국 교회 정체의 주요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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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종교와 과학은 기호가 다른 2개의 생명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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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적 유신론은 진화론이 우주와 생명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강력한 틀이 된 시대에 이를 성찰하려는 신학적인 대응이다. 현대과학은 종교의 적이 아니라 동행해야 할 벗이다.

<예수와 다윈의 동행>에서 신재식 교수는 히말라야의 고봉 안나푸르나 산군에 2주간 다녀온 트레킹 여행에 대해 얘기한다. 그 트레킹에 신 교수는 두 장의 지도를 들고 갔다. 하나는 축적 1만6000 대 1의 실측지도. 또 하나는 안나푸르나 지역보호단체에서 준 문화지도다.

실측지도는 등고선과 거리, 강 같은 지형물이 정확하게 표시돼 있다. 정상에 오르려는 전문 등반팀들엔 사실성에 충실한 이런 지도가 필요하다. 문화지도는 등고선 표시도 없고 길도 트레킹 코스만 있다. 대신 마을과 볼만한 경치, 유적지, 우체국, 인터넷, 환전소, 보호구역 사무소 위치가 표시돼 있다. 신 교수 같은 트레킹족에겐 이 지도가 유용하다. 둘 다 같은 지역을 보여주는 지도지만 그 표현 내용과 방식이 다르다. 각기 다른 목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것이 더 낫다고 할 수 없다.

신 교수는 종교와 과학도 이런 것이라고 얘기한다. 종교와 과학은 우리가 생명 세계를 여행하면서 각기 다른 관심에 따라 달리 만든 두 개의 지도와 같다는 것이다. “종교와 과학은 생명세계에 대한 탐구를 각기 나름의 기호와 형식을 빌려서 표현하는 활동입니다. … 흔히 종교와 과학을 구별할 때, 종교는 ‘의미’를 ‘주관적’으로 다루고, 과학은 ‘사실’을 ‘객관적’으로 다룬다고 하는 얘기들은 종교와 과학이 사용하는 기호의 특성을 가리키는 것에 불과합니다.”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종교와 과학은 인류가 오랜 진화의 역사 속에서 환경에 적응하면서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벌여온 여러 활동,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낸 여러 메커니즘 가운데 하나라고 했다. 신 교수에 따르면, 진화론적 유신론은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되던 150년 전부터 대세였다. 성공회 사제 찰스 킹즐리 이래 영국 신학계가 그랬고, 미국에서도 진화론은 일찍부터 주류에 수용돼 창조과학운동이 시작된 1920년대에 이미 진화론적 유신론은 대세였다. 지금 창조-진화 논쟁에 적극 가담하는 사람들은 신학자나 과학자, 주류 교단이나 교회가 아니라 주로 창조과학운동 단체 등에서 활동하는 보수적인 평신도들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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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교수는 창조-진화 논쟁에서 뚜렷이 구별되는 관점을 5가지로 정리한다. 젊은 지구 창조론, 오랜 지구 창조론, 지적 설계 창조론, 진화론적 유신론, 유물론적 진화론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앞의 세가지가 다 진화론을 부정한다.

젊은 지구 창조론은 성서를 글자 그대로 맹신하는 문자주의·축자영감설을 신봉한다. 우주가 6000~1만년 전에 창조돼 6일 동안 완성됐다며, ‘창세기’대로 신이 지금 같은 모습 그대로 직접 창조했다고 주장한다. 오랜 지구 창조론은 과학적으로 밝혀진 지구와 우주의 나이를 인정하고, 오랜 시간에 걸쳐 생명체들이 창조되었다고 보지만 신이 계획대로 지금 같은 모습으로 직접 만들었다고 보는 점에서는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런 창조론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주로 미국에서 백인 주류 기독교가 산업화·세속화 등의 영향으로 교회와 사회에서 주도권을 상실하면서 고개를 들었다. 그때 보수주의 기독교인 일부가 위기의 원인으로, 교회 안에서는 성서 비평학과 함께 대두한 자유주의 신학을, 교회 밖에서는 진화론을 지목했다. 거기서 진화론 척결운동이 시작됐고 1920년대에 근본주의 출현과 함께 더욱 거세졌으나 1925년 이른바 ‘원숭이 재판’에서 창조론자들이 패배함으로써 약화됐다가 1960년대에 다시 등장한다. 창조과학운동은 1970년대에 공립학교 과학시간에 진화론뿐만 아니라 창조론도 똑같이 가르치라고 요구하는 캠페인과 더불어 본격화했다. 1980년대에 ‘동등 교육법’까지 제정되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으나 학부모와 미국시민자유연맹 등이 종교와 국가를 분리하는 헌법에 위배된다며 위헌소송을 제기했고 연방법원과 대법원은 원고들 손을 들어주었다. 이런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새로 내놓은 것이 지적 설계론이다. 1990년대 초 공립학교 진입을 위해 외관상 종교 색채를 제거하고 ‘과학연구 프로그램’으로 분칠한 ‘좀더 세련된 창조론’이다. 하지만 위헌소송에서 이 역시 과학이 아니라 창조론의 다른 형태라는 판결을 받았다.

종교와 과학은 인류가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만든 여러 메커니즘 가운데 하나다 신학과 진화론은 양자택일의 관계가 아니다‘진화론적 유신론’은 진화를 기독교의 새로운 이해를 위한 가장 중요한 맥락으로 삼는다

신 교수에 따르면 창조-진화 논쟁은 세계 기독교 지형에서 주로 미국과 한국 보수 기독교 신앙인들 사이에서나 힘을 얻고 있다. 한국 창조론은 미국산 직수입품이다. 하지만 한국 창조론은 지적 설계론까지 간 미국과는 달리 아직도 젊은 지구 창조론 단계에 머물러 있다. 1970년대에 본격화한 미국 창조과학운동이 한국에 들어온 것은 1981년 한국창조과학회가 설립되면서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이공계 교수들이 서울대와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에 자리잡으면서 시작됐다. 그 1세대들이 여전히 이 운동 주류로 남아 있는 탓이다.

진화론적 신학을 모색하는 미국 가톨릭 신학자 존 호트는 종교와 과학을 우주를 읽는 중층적 독법, 서로 다른 수준의 책 읽기로 이해한다. 종교는 서사적인 양식을 통해 우주에서 질적인 의미를 읽어내고, 과학은 자연을 양적으로 읽어내는 각기 독자적인 책 읽기, 서로 다른 수준에서 다른 방식으로 읽어내는 독립된 담론이라는 것이다. 신 교수의 지도 비유와 상통한다.

호트는 우주를 읽어내는 독법이 하나뿐이라는 주장을 ‘문자주의 독법’이라고 하는데, 창조-진화 논쟁이 그 파생물이다. 성서적 문자주의는 다윈 이후 현대과학의 성과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생명세계와 자연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과학적 또는 유물론적 문자주의는 영성이나 윤리가 설 자리를 남겨두지 않는다.

생명세계는 여러 가지 독법이 가능하다는 것이 신 교수가 얘기하는 ‘설명의 다원주의’다.

그에게 종교와 과학, 또는 신학과 진화론은 양자택일의 관계가 아니다. 진화론적 유신론에 근거한 신학은 진화를 오히려 기독교의 신 이해를 위한 가장 중요한 맥락으로 삼아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것이 진화과학이 우주와 생명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강력한 틀이 된 시대에 이를 성찰하고 반영하려는 신학적인 대응이라는 것이다. “진화론을 비롯한 현대과학은 배제해야 할 적이 아니라 동행해야 할 벗입니다. 그리고 진화론적 유신론은 길벗에 대한 작은 인사인 것입니다.”

한승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