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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생각

고문은 끝났지만…온몸에 박힌 기억이 죽는 날까지 그를 고문하리라

등록 :2012-11-30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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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속죄의 저편>
장 아메리 지음, 안미현 옮김/길·1만6000원
<죄와 속죄의 저편> 장 아메리 지음, 안미현 옮김/길·1만6000원
아우슈비츠 등에 강제수용
끔찍한 고문 당한 지은이

고문의 야만을 성폭행에 비유
“고문당한 자는 두 번 다시
이 세상과 친숙해질 수 없다
굴욕은 사라지지 않는다”
<죄와 속죄의 저편>
장 아메리 지음, 안미현 옮김/길·1만6000원

우리가 무엇을 알고 있다고 해서 과연 제대로 아는 것일까?

이런 책을 쓸 수밖에 없었던 현실은 말할 필요도 없이 잔혹하고 비참하다. 하지만 그 ‘현실’이 아직 계속되는데도 이 책이 읽히지 않고 거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건 더욱 무참하다. 따라서 이 책을 한국 독자들이 읽어볼 수 있게 된 건 기쁜 일이다.

<죄와 속죄의 저편>은 아우슈비츠 생존자의 증언을 담고 있다. 지은이의 본명은 한스 마이어고, 장 아메리란 이름은 전쟁 뒤 사용하기 시작한 필명이다. 지은이는 1912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유대인’이다. 그러나 유념해야 할 것은 우리가 쉽게 얘기하는 이 ‘유대인’이 본디 무엇을 뜻하는가 하는 문제다. 동화(同化) 유대인으로 태어나 이미 유대교 전통과도 완전히 단절돼 있던 그는 나치스에 의해 폭력적으로 분류당함으로써 유대인이 됐다.

“유대인이라는 것이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사건, 근원적인 사건으로 일어났고, 신 없이, 역사 없이, 메시아 사상 없이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됐다.”

‘유대인’이란 존재가 먼저 있던 게 아니라 “반유대주의가 유대인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책 마지막 장 ‘유대인 되기의 강제성과 불가능성에 대해’는 이에 관한 고찰이다. 지금도 일반인 대다수가 지닌 유대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인종’ ‘민족’ ‘국민’ ‘고향’ ‘조국’이라는 통념의 ‘강제와 불가능성’에 대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도 읽어봐야 할 고찰이다.

지은이 아메리는 빈대학에서 문학과 철학 학위를 받은 일급 지식인인데, 1938년 나치의 오스트리아 합병 때 벨기에로 탈출했다. 1940년 독일군의 벨기에 점령 뒤 레지스탕스 활동에 참여했고 1943년 7월 게슈타포에 붙잡혔다. 1944년 1월 아우슈비츠로 이송돼 강제노동을 했다. 소련군의 아우슈비츠 해방을 눈앞에 두고, 후퇴하는 독일군이 강요한 ‘죽음의 행진’에 대다수 수인들과 함께 끌려갔다. 부헨발트 수용소를 거쳐 1945년 4월 마침내 베르겐벨젠 수용소에서 연합군에 의해 해방됐다. 전쟁중 벨기에에서 연행된 유대인 2만5000여명 중 겨우 615명만 살아남았다. 하지만 해방된 뒤 그는 알게 됐다. “오직 한 사람, 그 사람 때문에 2년간의 강제수용소 생활을 이겨냈는데, 바로 그 사람은 이미 죽고 없었다”는 사실을. ‘그 사람’은 나치 지배하의 오스트리아에서 함께 탈출한 아내였다.

“고문당한 자는 두 번 다시 이 세상과 친숙해질 수 없다. 굴욕은 사라지지 않는다. 첫 일격으로 이미 상처받고 고문당하면서 무너져 간 세계에 대한 신뢰를 두 번 다시 되살릴 수 없다.” 그림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한 독일 초현실주의 화가 펠릭스 누스바움(1904~44)의 작품 ‘수형자’. 길 출판사 제공
“고문당한 자는 두 번 다시 이 세상과 친숙해질 수 없다. 굴욕은 사라지지 않는다. 첫 일격으로 이미 상처받고 고문당하면서 무너져 간 세계에 대한 신뢰를 두 번 다시 되살릴 수 없다.” 그림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한 독일 초현실주의 화가 펠릭스 누스바움(1904~44)의 작품 ‘수형자’. 길 출판사 제공
아우슈비츠 생존자 수기로 널리 알려진 책들로는 빅토르 프랑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와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가 있다.

아메리·프랑클·레비 세 사람은 같은 강제수용소 체험을 했지만 문제의식은 큰 차이를 보인다. 프랑클은 ‘고통당하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며, 아우슈비츠가 등장한 이유를 묻기보다는 주어진 극한상황이 인간 정신을 어떻게 고양시키는가를 중시한다. 한편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란 무엇이며 왜 등장하게 됐는가 하는 근원적 의문에 대한 답을 찾는다. 프랑클과 레비 사이에 있는 것은 비유하자면, ‘임상적’ 차원과 ‘병리학적’ 차원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아메리의 책은 이 둘과 크게 다르다. 지은이는 “구역질 날 만큼 속속들이 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럼에도 여전히 낯설게 남아 있는 것 속으로 한걸음 한걸음 두 손, 두 발로 힘들게 더듬어 나가듯” 책을 썼다고 얘기한다.(1966년 초판 서문) 그 특징은 희생자인 지은이 자신의 내면세계를 가혹하리만치 철저하게 파고들어가 사색하는 점에 있다.

그에 따르면 아우슈비츠에서 ‘정신’은 무력했다. 거기에서는 “정신과 야만의 만남”이 “순수한 형태로” 나타난 결과, “정신은 우리를 저버렸다.” “정신은 자기자신을 포기하는 데엔 쓸모가 있었다.”

저항운동을 하다 체포당한 지은이는 벨기에 브렌동크 수용소에서 게슈타포로부터 잔혹한 고문을 당했다. 이 책의 ‘고문’ 장은 그때의 체험을 성찰한 것이다. “몇 개의 무거운 쇠격자 문을 넘어가면 마지막에 창도 없는 둥근 천장의 방이 있었다. 거기에는 괴상하게 생긴 철제 도구들이 수없이 널려 있었다. 외마디는 바깥에선 들리지 않았다.”

나는 10여년 전 브렌동크를 찾아가 그 내부를 본 적이 있다. 고문실은 아메리가 묘사한 대로 암울함 그 자체로 거기에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이 눈으로 확인했다고 해서 내가 무엇을 알았다고 할 수 있을까?

“최초의 일격으로 이미 뭔가를 잃어버린다. 뭔가라는 게 무엇인가. 일단 세계에 대한 신뢰라고 해 두자. 바로 그걸 잃게 된다.”

아메리는 고문을 성폭행에 비유한다. “타자에 의한 육체적 강간은 어떤 도움도 기대할 수 없을 때 실존의 절멸 속에 완료된다.” “고문당한 자는 두 번 다시 이 세상과 친숙해질 수 없다. 굴욕은 사라지지 않는다. 첫 일격으로 이미 상처받고 고문당하면서 무너져 간 세계에 대한 신뢰를 두 번 다시 되살릴 수 없다.”

여기서 얘기하는 고문 희생자의 심리를 “안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고문 희생자가 아메리와 같은 고찰을 남기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우선, 당사자로서 기억하고 말함으로써 추체험하는 게 너무나도 고통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성폭행’ 비유가 시사하듯 폭력에 완전히 굴복한 체험이 사그라지기 어려운 굴욕감으로 반복되는 탓이다. 그러나 아마도 가장 결정적인 것은 설령 이야기를 해봤자 일반인들은 알 수가 없고, 그 몰이해·무관심과 맞닥뜨릴 때 자신이 상처받을 수밖에 없다는 체념과 고립감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단절의 체험’이다. 아메리의 책을 관통하는 것은 이 절대적인 고독감이다. 그가 1978년에 자살했다 해서 이상할 건 없다.(레비는 그 9년 뒤 자살했다.) 이런 세상에서 태연하게 살아갈 수 있는 쪽이 이상한 게 아닐까.

그러나 고문은 나치만의 독점물은 아니다. 가까운 과거의 한국에서, 또 일본에서, 세계 곳곳에서 자행됐다. 아니 지금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설령 그것을 “안다”고 할 수 없을지라도 아메리의 고찰을 거듭 곱씹어봐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

‘사람은 얼마나 많은 고향을 필요로 하는가’와 ‘원한’ 장에 대해 언급할 지면은 없지만, 특히 후자는 ‘역사문제’나 ‘식민지지배 책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려 할 때 필독해야 할 고찰이라는 점만 지적해 둔다. 지은이는 결코 안이한 ‘용서’나 ‘치유’를 제시하지 않는다. 그만큼 이 책을 읽는 건 독자에겐 고통스런 작업이다. 하지만 그것은 현대-아우슈비츠 이후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인간’이고자 할 때 피할 수 없는 고통이다.(이 서평은 일본어판 <죄와 벌의 피안>(호세이대 출판국, 1984년)을 텍스트 삼아 썼다.)

서경식/도쿄경제대 교수, 번역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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