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의 주인공인 김근태 선생은 문학적 감수성이 뛰어난 이였습니다. 그분이 살아 계셨다면 뭐라 하셨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두려운 마음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예술가보다 순정한 삶을 살다 간 고인의 영혼을 제대로 그리고자 저 나름대로는 혼신의 노력을 다 기울였습니다.”

영화 <남영동 1985>가 화제 속에 상영되고 있는 가운데, 영화 주인공인 고 김근태 민청련(민주화운동청년연합) 의장의 삶을 그린 소설이 출간되었다. <내일을 여는 집> <랍스터를 먹는 시간>의 작가 방현석씨가 쓴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이야기공작소 펴냄)가 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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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을 부를 때>는 김근태 의장의 어린 시절부터 학자의 꿈을 접고 학생운동에 투신한 대학 시절, 1970년대 전체에 걸친 장기 수배 중에도 멈추지 않았던 노동운동과 사회운동, 그리고 마침내 남영동 대공분실에 붙들려 가 끔찍한 고문을 당한 1985년까지를 시간 순으로 서술한다. 작가는 단행본 <남영동>을 비롯해 김 의장이 직접 쓴 글과 강연, 부인 인재근 의원과 누이 등 가족·친지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김 의장의 삶을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재현하고, 필요한 부분에는 작가적 상상력을 덧입히는 방식을 통해 이 소설이 논픽션과 픽션의 장점을 두루 아우르는 작품이 되도록 했다.

“우리 현대사를 통틀어 보아도 김구 선생 이후 김근태 의장만큼의 품격과 긍지를 지닌 지도자도 드물었습니다. 그것은 김 의장 개인의 몫일 뿐만 아니라 숱한 고난과 시련 끝에 우리 사회 전체가 이룬 정신의 높이였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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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서울 시내 한 식당에서 기자간담회를 마련한 작가 방현석씨는 “특히 다음달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젊은 유권자들이 이 소설을 읽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여기까지 왔는지, 어떤 이들의 피와 눈물과 희생 위에 지금의 민주주의가 세워진 것인지를 이 책을 통해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간담회에 함께 참석한 김 의장의 부인 인재근 의원은 “처음 김근태씨에 대한 소설을 쓴다고 했을 때 혹시라도 너무 과장해 그릴까봐 걱정했는데, 막상 원고를 읽어 보니 소탈하고 인간적인 면모가 있는 그대로 그려져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소설이라기보다는 주인공 김근태씨가 직접 쓴 자서전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된 걸 보면서 아주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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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방씨는 “김 의장은 생전에 우리 문학의 나태와 무능, 진부함과 무책임을 참을 수 없노라고 질책하는 글을 공개적으로 쓴 바 있다”며 “작가로서 나는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허구를 통해 사실 뒤의 진실을 드러내고 사실을 통해 허구의 힘을 극대화하려 한 이 소설의 형식과 방법에 동료 작가들이 주목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질곡의 현대사를 통과해 오면서 이타적인 일에 헌신하다가 희생되고 고통받았지만 그 누구도 기억해 주지 않는 다른 많은 이들의 삶 역시 앞으로 다른 형식의 글을 통해 되살려 내고 싶다”고 덧붙였다. 작가의 이 말은 남영동의 ‘지옥’을 벗어나 서울구치소로 옮겨 온 주인공 김근태의 내면을 묘사한 소설 마지막 장면의 메아리처럼 들린다.

“나는 입을 달싹거려 한 사람씩 불렀다. 내가 지켜 낸 이름과 지켜 내지 못한 이름, 나를 모욕하고 유린했던 이름, 끝없이 그리운 이름, 이름들.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려는 안간힘으로, 그들이 불러준 내 이름을 잊지 않으려는 몸부림으로, 그해 겨울 나는 죽지 않았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