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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생각

요람에서 무덤까지 빚 권하는 사회

등록 :2012-09-14 20:19

약탈적 금융 사회-누가 우리를 빚지게 하는가
제윤경·이헌욱 지음/부키·1만3800원
아침나절 휴대폰 진동이 울린다. 반가운 소식이라도 왔을까 싶어 내심 기대하지만 “1000만원 대출이 승인되었습니다”라는 해괴한 문자다. 생면부지의 사람을 믿고 1000만원을 빌려준다니 오히려 반가운 문자라고 해야 할까. 대한민국의 아침을 여는 문자들은 대개 빚 권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어디 휴대폰 문자뿐인가. 곳곳에서 빚을 권한다. 심지어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대책은 고작 ‘대출 받아 아파트 사라’는 것이었다. 말이 대출이지, 결국 빚이다.

<약탈적 금융 사회>는 가계부채 1000조원, 하우스푸어 150만명 시대, 말 그대로 대한민국의 밑바닥 현실을 조명한다. 빚은 이제 우리 일상을 지배한다. 개인 정보를 장악했고, 시간과 라이프 스타일 등 모든 선택권을 가져가 버렸다. “친절하다 못해 귀찮을 정도로 빚으로 둘러싸인 삶을 예찬하던 금융회사들”이 이제는 돈을 회수하겠노라 얼굴빛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지은이들은 이를 일러 “빚의 교묘한 독재”라고 말한다.

대한민국은 지금 “채무 노예 사회”다. 한때는 자유인이었던 사람들이 언젠가부터 빚을 끌어안게 되었고, 이내 노예로 전락했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겨우 회생한 금융기관들이 이제는 자신들을 살려준 국민을 대놓고 협박한다. “빚은 자기 책임”이라는 가혹한 이데올로기를 앞세우고 있지만 정작 오늘날 빚 권하는 사회의 책임이 스스로에게 있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약탈적 금융이 만든 ‘내 탓’ 의식을 먼저 벗어버려야 한다. 또한 “금융 소비자가 주인이 되는, 공적 통제를 받는 조직체”로 금융기관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채무 노예를 만드는 약탈자들과 공조자들의 책임도 묻지 않을 수 없다. 재테크 열풍을 일으키며 중산층을 무너뜨리고, 요람에서 무덤까지 채무 인생의 대물림을 만든 것이 그들이기 때문이다.

‘금융’은 약탈적 대출로 서민들의 집을 빼앗았고, ‘언론’은 빚도 자산이라는 프레임을 만들며 머니 게임을 부추겼다. ‘신용카드사’는 월급날의 보람을 완전히 앗아가 버렸다. 그런가 하면 ‘정부’는 부동산 대책에서 거푸 헛발질을 하며 하우스푸어를 양산했다. 한편 서민들의 신용회복을 돕겠다며 야심차게 시작된 ‘파산·회생·워크아웃’ 제도는 여전히 진입 장벽이 높고, 제도적 허점으로 서민들의 삶을 더 옥죌 뿐이다.

해결책이 없는 건 아니지만 “99%의 채무 해방을 위해” 나아갈 길은 멀고 험하다. 먼저 가혹한 채권 회수보다 인간적인 채무 조정 등 채무 조정 시스템을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개인의 힘으로는 세상을 바꾸기 어렵기에 “99%를 위한 채무자 연대”와 같은 사회운동도 필요하다. 지은이들은 “전문가의 도움과 다른 채무자와의 연대, 이것이 당장 빚에 짓눌려 겪는 고통을 해결할 가장 중요한 실천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금융 복지 안전망, 곧 사회적 안전망을 형성하는 일이다. 2012년 대한민국 서민들의 희망은 “인간적인 금융”, 곧 힘겹게 노동해서 번 돈을 약탈해 가는 금융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는 금융 시스템”이다.

<약탈적 금융 사회>는 대한민국의 아픈 현실과 직면하게 한다. 이런 아픈 현실과 직면하여, 이제 삶의 방향을 어디로 잡아야 할지도 알려준다. “자각하고, 분노하고, 연대하고, 그리고 당당히 외쳐야 한다”는 구호와 실천은 단지 약탈적 금융 사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 삶을 규정하는 모든 실체를 향해 던져야 할 말이다.

지은이들의 마지막 말이 내내 뇌리에 남는다. “한때 자유인이었던 그 시간을 되찾아 다시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야만적 세상과 타협해서는 안 된다. 야만의 세상을 다시 인간의 세상으로 바꿔야 한다.”

장동석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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