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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생각

“친일파 청산문제, 아직도 현재진행형”

등록 :2010-06-18 18:50

성균관대 연구실의 서중석 교수. “현 정권의 퇴행적인 역사관 때문에 여전히 할 일이 많지만, 그래서 일이 많은 건 별로 좋지 않다”며, “일본 중국 과거사엔 민감한 한국사람들이 정작 자신들의 과거사는 덮어두려 한다”는 말도 했다.  사진 이종근 기자 <A href="mailto:root2@hani.co.kr">root2@hani.co.kr</A>
성균관대 연구실의 서중석 교수. “현 정권의 퇴행적인 역사관 때문에 여전히 할 일이 많지만, 그래서 일이 많은 건 별로 좋지 않다”며, “일본 중국 과거사엔 민감한 한국사람들이 정작 자신들의 과거사는 덮어두려 한다”는 말도 했다.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친일파들 미군정 지지로 변신
‘보수애국’ 가면 쓴 ‘친일매국’
민주화 가로막고 역사 되돌려
〈지배자의 국가, 민중의 나라〉
서중석 지음/돌베개·1만8000원

“그들이 일본인을 위해서 훌륭히 업무를 수행했다면, 우리를 위해서도 그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마크 게인 <해방과 미군정 1946. 10~11>, 까치)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직을 맡고 있는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의 <지배자의 국가, 민중의 나라>가 인용한 이 발언의 주인공은 해방 직후 서울의 미군정 경찰책임자 윌리엄 매글린 대령이다. 그가 말한 ‘그들’은 일제 식민지배 시기 ‘대일본제국과 천황’을 위해 복무한 뒤 새 점령군 미군이 들어오자 재빨리 다시 미군정으로 복무 대상을 바꾼 한국인 경찰관들이다. 당시 매글린은 미군정하의 경위 이상 경찰 간부 1157명 가운데 949명, 그러니까 전체의 82%가 일제 경찰관 출신이라고 보고했다. 어디 경찰만 그랬으랴.

서중석 교수는 미국이 한국 해방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친일파란 ‘악의 씨’를 보호하고 육성함으로써 형언할 수 없는 해독을 끼쳤다”며 “1945년 9월 (인천에) 상륙한 미 점령군에게 한국인들은 적으로, 재한 일본인들은 친구로 비쳤다”고 썼다. 피식민지인들에 대한 제국주의 침략자들끼리의 ‘동지적 관계’는 베트남이나 필리핀 등지에서도 확인된 관행이었다.

“해방이 되자 전전긍긍하며 피신했던 친일파들은 통일정부가 수립되면 자신이 처단될 터여서 통일정부 수립을 방해했고, 분단체제를 공고히 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서 교수는 이승만의 남한 단독정부 수립운동(단정운동)은 통일정부를 세우기 위해 노력하다가 불가피한 국내외 정세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려서 그리 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승만은 통일정부가 들어설 경우 자신이 정부수반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친일파들은 통일정부가 들어서면 자신들이 처단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누가 자신들의 적이고 누가 친구인지 냉철하게 파악하고 있던 새 점령군의 현실적 필요와 자신 및 일족들의 생사와 장래 운명이 누구 손에 달렸는지를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던 친일파들의 절박한 필요 간의 ‘기막힌’ 조합. 일제강점기부터 1987년 6월항쟁 이후까지 역사의 주요 고비마다 하나씩, 모두 8개의 주제를 설정하고 그 의미를 묻고 성과와 한계를 되새기며 성찰하는 <지배자의 국가, 민중의 나라>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의 출발점은 바로 거기다.


〈지배자의 국가, 민중의 나라〉
〈지배자의 국가, 민중의 나라〉
약삭빠르게 외세와 결탁해 영화를 누린 그 소수 지배자들의 국가, 그들의 안락과 번성을 피땀으로 떠받친 고달픈 다수 민중의 나라는 하나이되 결코 같은 나라가 아니었다. 서 교수에 따르면, 독립운동가들이 국내 지하에서, 국외 이역만리에서 풍찬노숙하며 목숨을 걸고 수십년간 항일투쟁을 전개한 것은 “이민족의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와 인권을 쟁취하기 위해서였고, 개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좋은 세상에 살기 위해서”였다. 서 교수는 해방 이후의 도저했던 민주화운동이 추구한 바가 그와 다르지 않았다고 했다.

해방과 좌절, 전쟁, 그리고 4·19혁명과 부마항쟁, 광주항쟁, 6월항쟁을 거쳐 마침내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달성하고 “이제 나라가 제대로 되는가 싶었던” 순간, 드디어 민중의 나라가 도래하는구나 하고 가슴 부푼 순간, ‘이승만 건국’을 찬양하면서, 광복절 대신 건국절을 제정해 기념하고, 건국공로자를 서훈하자는, “경악할 만한 주장”을 내세우는 세력이 권력을 장악했다. “단정운동을 찬양하고 단정운동에 참여한 친일파를 건국공로자로 모시자는 주장이었다. 이는 친일파의 위력을 실감케 했는데, 해방 이후 처음 나온, 역사관이 뒤집혀도 완전히 뒤집힌 해괴한 논리였다.” 그 결과 <친일인명사전> 출판기념식조차 예정된 장소에서 치를 수 없었던 퇴행과 반전(반동)이 일어났다. 역사학자 서 교수가 이명박 정권 출범 뒤 <지배자의 국가, 민중의 나라> 출간을 서두른 이유가 거기에 있다.


만주국 육군군관학교와 일본 육사를 나온 ‘일본제국 최후의 군인’ 박정희의 유신체제 핵심기관인 유정회 초대 회장 백두진은 일제 국책은행인 조선은행 간부였고 2대 회장 태완선 역시 국책은행인 식산은행에서 일했다. 3대 회장 최영희는 일본 육군 공병장교였고, 국무총리와 국회의장을 6년 이상씩 지낸 정일권은 봉천군관학교와 일본 육사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10년 이상 대법원장을 지낸 민복기는 친일파 거두 민병석의 아들로 조선총독부 판사였고, 유신 말기의 대법원장 이영섭은 경성지법 판사였다. 그런 유신체제 몰락의 정치·경제적 배경과 역사적 맥락을 짚은 제6장 ‘부마항쟁과 박정희 유신국가의 말로’는 오늘날의 ‘박정희 신드롬’이 얼마나 허구에 찬 거짓 신화일 수 있는지 보여준다. 하지만 거짓 신화의 원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은 제4장 ‘이승만의 단정운동·반공국가와 여순사건’이다. 일제강점기 중추원 참의가 운영하던 국일관의 지배인 출신 이기붕이 진두지휘한 자유당의 이승만 체제 핵심 친일세력은 자신들의 친일매국을 극우반공주의사상 조작을 통해 보수애국으로 세탁했고 미국은 그들과 손잡았다. 극우반공주의와 결합한 군국주의 파시즘 또는 한국형 파시즘과 그 인적·물적 토대가 그렇게 구축됐다.

이승만 정권의 친일세력은 여순사건을 극우정객이 공산세력과 공모해서 일으켰다며 ‘혁명의용군 사건’이라는 걸 조작 발표하고 백범 김구까지 얽어 넣어 “소위 우익진영이라는 단체에서는 종종 남북통일이라는 미명하에서 소련의 계획을 절대 지지한다”고 강변했다. ‘우익’을 ‘좌익’으로 바꾸고 ‘소련’을 ‘북한’으로 바꿔 보라. 오늘날 천안함 사태 이후 더욱 기승을 부리는, 반대의견을 지닌 세력을 모조리 ‘친북좌익’이나 ‘빨갱이’로 모는 이른바 ‘친북좌빨’ 여론조작의 원조가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친일파 청산은 여전히 현재형 문제요, 절박한 민주주의와 인권과 평화와 통일의 문제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 지은이와 함께 / 서중석 교수

“이건 그냥 보수가 아니다”

수십년 잠복했던 과거 회귀
민주화 세대도 용납 않을 것

“일각에서는 극우세력의 방해 책동으로 경찰이 반민특위를 습격했던 1949년 6월 같은 사태가 오지 않겠느냐고 우려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매우 다르다. … 6월항쟁 이후 한국은 여러 면에서 달라졌다. 반동이 오더라도 6월항쟁 이전으로 역사를 돌려놓을 수는 없게 되어 있다.”

서중석(62) 교수는 2005년에 쓴 ‘친일파가 만들려 한 국가’(<지배자의 국가, 민중의 나라> 제7장 수록)에서 그렇게 썼다. 지난 17일 성균관대 다산경제관에 있는 연구실에서 만난 서 교수는 5년이 지난 지금도 기본적으로 낙관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지만 “정권교체 뒤의 역사 퇴행, 반동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심했다”며 몹시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뉴라이트가 건국절 주장까지 들고 나올 줄 몰랐고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 개악도 예상하지 못했다. 수구반동 이데올로기의 부활이라는 인상마저 주고 있다. 남북관계는 6·15선언으로 힘들여 쌓아놓은 성과를 불과 1, 2년 만에 그 이전으로 획 되돌려 남북대결의 원점으로 돌아간 듯하다.”

서 교수는 6월항쟁 이후의 변화는 좌냐 우냐, 진보냐 보수냐의 차원이 아니라 그 전의 뒤틀린 세상을 양심과 상식에 부합하는 세상으로 바꾼 것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면서, “그러니까 보수정권이 들어서더라도 나름의 자기방식대로 그런 변화에 맞춰 잘해나가리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유신과 5공 시절 때처럼 남북관계를 적대적으로 되돌리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폄훼하는 걸 보고, 이건 십수년간 잠복해 있던 과거가 다시 나타나는 게 아니냐는 걱정을 했다. 이건 그냥 보수가 아니다.”

그는 이명박 정권의 이런 행태를 “자신감과 도덕성의 결여 탓”으로 돌렸다. 그래서 다시는 민주화세력이 집권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자신들이 계속 권력을 쥐고 기득권을 누리기 위해 극우반공·수구냉전 이데올로기를 부추기고 있다며 “시대에 아주 뒤떨어진 생각”이라고 했다.

“20~30대 젊은층이 그걸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는다는 건 이번 지방선거 결과로 분명히 드러나지 않았나. 다시 말하지만 이건 진보냐 보수냐의 싸움이 아니다. 젊은이들은 인터넷 규제나 촛불시위 탄압, 연행·구속이 이어지고 전쟁을 부추기는 듯한 움직임에 두려움과 반발을 느끼고 서로 연락해 집단대응을 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역사를 거꾸로 되돌릴 순 없다는 인식이 한국인들 사이에 광범하게 공유되고 있다고 본다. 유신시대나 신군부 집권 시절과는 시대가 다르다. 잘못된 길을 가면 반발하고 반격에 나선다. 한 번 누린 권리를 빼앗길 순 없다.”

“6월항쟁 이후 세상은 달라졌다. 남북 적대나 전쟁 같은 과거 회귀는 이젠 먹히지 않는다. 일시적으로 1, 2년 정도는 미봉책으로 얼버무릴 수 있을진 몰라도 그런 꿰매기는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 실패한다는 걸 이번 지방선거는 보여주었다.”

서 교수는 천안함 침몰 사태와 관련해서도 정부 당국의 발표 내용에 “처음부터 믿음이 가지 않았다”고 했다. “천안함 사태에 대한 정부의 초기 대응과 나중이 달랐다. 처음 북 관련설을 부인하는 듯한 정부 쪽 반응에 아, 이젠 좀 달라졌나 했는데 선거전에 돌입하면서 완전히 이승만, 박정희 식으로 돌아갔다. 시대착오요 결과적으로 역효과만 났다.” 그러면서 그는 여러 매체에서 제기하는 ‘의혹’들에 대해 “정부가 제대로 답을 내놓지 못하면 큰일 나겠던데”라고 덧붙였다. 한승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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