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이전 세대인 이영희·강만길·박현채·고은·신경림·김지하·황석영 이분들이 모두 활력에 넘칠 때 우리 담론계가 풍성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백낙청(사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17일 〈백낙청 회화록〉 출판(〈한겨레〉 17일치 25면 참고)을 기념한 기자간담회에서 논객으로 보낸 지난 40년 세월의 우리 토론문화를 회고했다.

그가 보기에 가장 암울했던 시기는 1980~84년 전두환 집권 초반기다. “이 시기에는 자유롭게 좌담할 공간이 없었습니다.(창비는 80년 폐간됐다.) 80년대 신군부는 70년대 박정희 정권이 다른 분야는 탄압하면서 출판계는 너무 방치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실제 70년대는 많은 대학생들이 졸업한 뒤 출판사를 차렸죠. (박 정권도) 창비 개별호에 대해서는 탄압했으나 신군부처럼 폐간을 시키지는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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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토론이 가장 까다로웠던 상대로 민족경제론의 거목인 고 박현채 선생을 들었다. 자신과 다른 주장을 잘 안 받아들이고 관점이 다르다고 생각하면 가차없이 공격했다는 것이다. 이매뉴얼 월러스틴 등 그와 대담한 외국 석학들과는, “한국 문제를 너무 몰라서 진검승부할 기회가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스스로를 “글쓰는 판의 쌈꾼”이라고 규정한 백 교수가 제시하는 토론 잘하는 비결은 간단하다. “남의 말을 듣는 능력이죠. 남의 말을 알아듣고 답변하면 의견이 달라도 토론이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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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90년대로 넘어오면서 “(담론계가 이전에 비해) 재미 없을 때도 있다”고 했다. “창비가 늙어서 그런지 젊은 세대의 공력이 안 돼서 그런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전문 분야의 자기 식견을 가진 젊은 세대들이 현실적이고 근거가 있는 거대담론을 펼칠 능력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그는 또 티브이 토론 프로그램이 천편일률적으로 두 편으로 나눠 진행되는 형식에 대해서도 불만스러워했다. “다양한 사람을 섞어서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합의점을 도출하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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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공동선언실천 남쪽위원회 상임대표도 맡고 있는 그는 앞으로 7~8년 이내에 2개의 국가가 존재하면서 연합하는 형태인 1단계 통일이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봤다. 물론 “더 빠를 수도 있다”고도 했다.

그는 또 “지식인은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 이야기를 해야 한다”며 “앞으로 활동가적 회화를 줄이고 탐구하는 회화를 해나갔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사진 창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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