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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생각

가네코 후미코

등록 :2005-02-18 17:02수정 :2005-02-18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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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끌어안은 무정부주의자
스물세해 불꽃같은 삶 창고에 쌓여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라는 책을 처음 본 것은 1999년 3월 초였다. 〈옥중 19년〉을 출간하면서 지은이 서승 선생이 한국에 잠시 입국했을 때였다. ‘조선을 사랑한 일본인’ 시리즈를 제안하면서 이 책을 주셨던 것이다. 이 책은 내 책상 책꽂이에 아무 고민 없이 꽂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후배가 사무실에 놀러 왔다가 책을 보고는 번역을 해야 한다며 나를 졸라대기 시작했다. 〈문화방송〉에서 그 얼마 전 3·1절 특집으로 방송된 ‘역사 속의 인물-잊혀진 혁명가’에서 소개된 것을 봤는데, 반드시 나와야 할 책이라는 것이다. 내가 책을 낼 생각이 없다면 다른 출판사에라도 말해보겠다며 책을 가져갔다가 몇 달 뒤 풀이 죽어서는 별다른 말 없이 책을 돌려주었다.

그 후 나는 출판사를 차려 출간할 책을 기획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다. 사무실에 들른 한국사 전공의 일본인과 얘기 중이었는데 갑자기 “무슨 책 낼까 고민하지 말고 이 책이나 내세요” 하며 자기 등 뒤의 책꽂이 한쪽 귀퉁이에 꽂혀 있던 책을 한 권 잡아 빼서 건넸다. 〈가네코 후미코〉였다.

번역을 의뢰받은 번역자도 작업을 하며, 조선을 ‘확대된 자아’로 받아들여 천황제를 강요하는 혹독한 상황에서 조선인 청년 박열과 같이 저항하고 결국 자기 사상을 관철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가네코 후미코의 삶과 사상에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나는 눈발이 흩날리는 궂은 날씨에 문경에 내려가 박열 선산의 가네코 후미코 묘소를 찾기도 하고, ‘박열-가네코 후미코 사건’을 기사화한 당시 국내 신문들을 마이크로필름으로 뒤지며 자료들을 모았다. 무적자(無籍者)로 여성으로 이중의 억압 속에서 사회의 밑바닥에서 고투하며 자기 사상을 형성해간 가네코 후미코의 삶에 나는 교정지를 읽다가 설움과 분노에 빠지곤 했다.

책은 언론에 비중있게 소개됐다. 하지만 보도와 책 판매가 늘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이다. 출판사가 2년차 되던 해였는데, 번역료와 제작비에 대한 부담으로 휘청했다. 판매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경영 측면에서 나는 기존 독자층을 염두에 두는 보수적인 사고를 더 고려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잠깐 고민했다. 몇몇 사람들이 보여준 뜨거운 반응에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찾지 않았다는 사실이 안타까움으로 다가왔다. 돌아가신 이오덕 선생께서는 전화하셔서 그동안 왜 가네코 후미코에 대한 책이 안 나오는지 의아했다며 책 잘 냈다고 칭찬하셨고, 노촌 이구영 선생은 내 손을 덥석 잡으시며 “잘 했다, 잘 했다” 하셨다. 소설 쓰는 선배는 가네코와 박열이 도쿄에서 ‘불령사’ 등을 만들어 투쟁하는 모습이 1970~80년대 대학 다닐 때 운동권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다며 소설로 써보겠다고 했다가 일본 취재에 대한 경비 부담으로 보류중이고, 영화로 찍겠다며 지은이의 일본 연락처를 물어오는 영화감독도 있었다.

우연히 보게 된 〈문명의 감각〉이라는 문학평론집의 맨 앞 페이지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방문을 열면 어둠 속에서 가네코 후미코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은박으로 처리된 그녀의 이름이 어둠 속에서 빛난다 나는 푸른빛이 감도는 가네코 후미코의 평전을 어루만진다 (……) 스물세 살에 목숨을 버린 가네코 후미코가 독방에 앉아서 수기를 쓰다 말고 나를 바라본다 바다를 건너왔다 바다를 건너간 나의 아름다운 가네코 후미코는 이 밤에도 내게 무정부주의를 타전하다.”


그리고 이 책은 ‘지금 여기’ 우리 삶에 ‘타전’을 보내기 위해 창고에 재고로 잔뜩 쌓여 또 다른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윤양미/산처럼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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