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학, 우리 안의 오랜 근대
이경구 지음 l 푸른역사 l 2만7900원
실학을 집대성한 사람은 누구냐는 질문에, 백이면 백 ‘정약용’이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정작 정약용은 ‘실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적이 거의 없고 ‘나는 실학자다’라고 내세운 적도 없다고 한다면, 적잖이 당황할 게 분명하다. 마르고 닳도록 외웠던 실학이란 도대체 무엇이며, 국사 교과서에 이름을 올렸던 실학자들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이경구 한림대 한림과학원 교수의 ‘실학, 우리 안의 오랜 근대’는 오랜 세월 ‘실학’이라고 불렸던 학문의 정의와 흐름을 역사적 관점에서 정리한 책이다. 지은이는 “실학이라는 말 자체 그리고 실학이란 말을 발화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우리가 알고 있는 통념으로서의 ‘실학’은 실상 새로운 사회를 추구했던 학자들의 열망이 담긴 학문이라고 강조한다.
실학이라는 용어는, 지금과 같은 의미와 다른 의미가 뒤섞여 있었지만, 14세기 초부터 적잖이 통용되었다. 당대 통용된 실학이라는 용어는 “‘진실한 학문’ 정도의 보통명사”인데 “거짓 학문인 불교에 반대되는 유학 또는 성리학”이었다. 15세기 이후에는 “문장 공부에 반대되는 경학(經學)”이라는 의미로 널리 쓰였는데, 맥락에 따라서는 “출세를 지향하는 공부와 반대되는 순수한 공부”라는 뜻으로도 쓰였다. 16세기 이후로는 “군주의 성학(聖學), 공허한 담론에 반대하고 실천과 실용을 중시하는 경세학”이라는 의미가 더해졌다. 이처럼 실학은 시대의 변화에 조응하며 ‘시대 인식’을 달리하는 방편으로 사용되었다.
실학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세기 중국 문헌 ‘논형’을 통해서다. 엄밀한 의미에서는 ‘용어’는 아니지만, 지은이 왕충(王充)이 ‘실’(實)을 “허망을 물리치고 사실에 입각해 시비를 밝히는 것”으로 해석했다는 점에서 선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모순처럼 보이지만, 송나라에 이르러 성리학이 발흥하면서 실학도 힘을 얻었다.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는 어록집인 ‘주자어류’에서 실학의 부재가 경박한 세태를 만들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요즘 사람들은 실학이 없어서 이것이 좋다는 말을 들으면 이것에 기울고 저것이 좋다는 말을 들으면 저것에 기운다.”
한편 주희는 ‘대학’에서 불교가 “편벽되고 방탕하고 못되고 도피한 말”로 세상을 어지럽힌다고 비판했다. 당시 실학이 “유학의 종지를 계승한 성리학을 지칭”하게 되면서 그 반대편에 선 “노장과 불교의 허무, 적멸 같은 대립 개념” 또한 분명해졌다. 송나라 당시 성리학은 가장 혁신적인 학문이자 진실한 학문이었는데, 그것이 곧 ‘실학’이었다. 이용후생(利用厚生), 개물성무(開物成務), 실사구시(實事求是) 등 실학을 상징하는 표어들 역시 이러한 학문적 자장 안에서 도출되고 널리 사용되었다. 이 표어들은 진실할 뿐 아니라 실재를 떠받치는 학문인 실학을 떠받치는 일종의 기둥들이었던 셈이다.
한국에서 실학이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된 문헌은 고려 말 학자 이제현의 ‘익재집’(益齋集)이다. 이제현은 충선왕에게 “교육과 학문을 장려하면 선비들이 불교와 문장을 추종하지 않고 유학과 실학에 진력할 것”이라고 진언했다. 일각에서는 “튀는 행동으로 헛된 명예에 집착하지 않고 성실하게 덕행을 실천하는 행위”로 실학을 지칭하기도 했다. 15세기 중반에 이르러 실학이 경전 자체로 처음 언급되었고, 16세기 중종 이후 급증하기에 이르렀다. 이즈음 실학은 “교육과 관련해서도 일정한 관계어”들을 확보하기에 이른다. ‘중종실록’ 22년 9월 기록은 “실학을 정공(精攻)한 자는 교회(敎誨)를 주재하고 사장(師長)을 잘 하는 자는 제술을 맡아서 각기 그 능한 바를 가르치게 하였습니다”라고 적고 있다.
그렇다면 흔히 실학의 전성시대라 부르는 18세기는 어떠했을까. 지은이에 따르면 18세기 이전과 이후 실학의 정의는 다르지 않다. 즉 “상식적으로 진실한 학문이었고 성인의 학문, 수신하는 위기의 학문, 유학 또는 성리학”이 곧 실학이었다. 다만 달라진 것은 18세기 이후 “실천-실용과 관련한 의미가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선진 문물을 들여오자는 주장도 일견 타당하지만, 오히려 “명목에 사로잡힌 현실을 비판하며 실질의 효과를 강조하는 주장”이 곧 실학이었다는 것이다. 유학이 “허황된 성리 담론과 화려한 문장에만 치중”하면서 “경제와 실정에 유능한 일재를 양성하고 기술 등 구체적인 지식을 중시”하는 모습이 자취를 감췄다. 이러한 난국을 타개하고 유학의 본령을 회복하자고, 이익과 박지원, 박제가 등 이른바 실학자들이 주장했다는 것이다.
19세기 중반 이후 일본에서 실학이 서양의 과학을 지칭하면서 그 의미는 한층 좁아졌다. 고담준론하는 경전을 제쳐두고 “실상을 밝히고 실지에 기초한 과학, 실용학, 사회경제의 신학문”만을 실학이라 정의하게 된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유학·경학에서 실업학 또는 과학으로 전환되는 과정에는 “학교 설립과 신학문 장려”가 보조를 맞추었다. 지은이는 1970년대 박정희 정부의 대표적 구호인 “근대화, 민족중흥, 경제발전” 등에 실학이 어떤 방식으로 조응했는지 밝히면서, 우리 사회에서 실학이라는 용어가 갖는 함의를 설명한다.
지은이는 근대에 규정된 실학 개념 또는 실학 연구의 시효가 다했다고 진단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로 실학의 새로운 역할을 기대한다. “시대마다 진실을 향했던 발언들이 실학의 지속을 가능케 했듯,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진실을 향한 성의에 깃든 실학이라야 새 지평을 마주하리란 것이다.” ‘실학, 우리 안의 오랜 근대’는 특정 장소와 시기에 고착화된 실학에 대한 낡은 관념을 배제하고, 시대와 사회를 직관케 하는 ‘진실’과 ‘현실’에 복무한 일관된 사상으로서의 ‘실학’을 여실하게 조명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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