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
권선희 지음 l 창비 l 1만원
미나리아재비
박경희 지음 l 창비 l 1만원
시집 한 권은 경상도 구룡포 동해를, 한 권은 충청도 보령 서해를 받아 적는다. 해서 구수하단 게 아니다. 거기 말이 아니면 말해지지 못하는 삶들이 비로소 말해지므로 구슬프다. 시인 송경동이 신경림, 백석도 보인다고 추천사 쓴 포항 시인 권선희의 ‘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과 지난해 산문집 ‘충청도 마음사전’으로 토속의 울림을 줬던 박경희 시인의 ‘미나리아재비’다. 우연히도 창비시선 505·506번인데, 시들은 다 달라도 만난다.
전화도 귀하던 시절, 서울 병원 간 할멈 소식이 없자 노인은 애가 탄다. 편지를 쓰자니 글을 모른다. “저짝에서 소쩍새가 소쩌럭 소쩌 소쩌 여러날 우는디 환장허겄데, 혼자 사는 노인네들은 어찌 사나 몰러,…/ …뭐라 쓰야 헐지 몰라서 고민허다가 에라 모르겄다, 허고는 소 다섯마리 그려 보냈당께, 근디 할멈이 용케 알아보고 열흘 만에 왔더만, 나가 글씨보단 그림에 소질이 있는 걸 그때 알았당께”(‘오소’ 중)
예순살 남자는 선을 본다. 과수원 일 때문에라도. 아내와 사별한 진 겨우 1년. 상대가 그랬단다. “조건이라는 게 현찰 일억을 통장에 꽂고 월급 택으로 몇십만원씩 다달이 넣는 거라대요. 호적에도 못 오를 몸 밤낮 없을 밭일에 늙어갈 새 영감 치다꺼리까지 하다 덜컥 죽고 나면 버려질 생은 누가 책임지냐고요….// 혼자 살다 비비 말라 죽어도 이런 거래는 아니지 싶어 결국 파투 낸 친구가 강소주 같은 노을을 짊어지고 마누라 무덤에 엎어져 꺼이꺼이 이랬다 캅디다.// ‘여보게, 자네가 일억도 넘는 고귀한 사람인 줄 내는 왜 여적 몰랐을꼬 참말로 미안했네.’”(‘어떤 환갑’ 중)
표준어의 시엔 없는 사람과 풍파의 냄새들. 코로나도 도시만 다녀간 줄로들 안다. 더 가난해지고, 무너지고, 정신 놓고, 병들고, 죽는다. 50년 전 물길 잃고 북에 갔다 정작 귀환한 뒤 간첩으로 몰려 고문당한 이래 “오징어 절대 안 먹니더. (…) 바람에 냄새만 와도 씨뻘건 부아가 이니더”라는 노인은, 쌀값 떨어져 군청 앞 쌀가마니 부려놓은 채 “빈 하늘에 하소연하다가 쓰러져” 죽은 노인이다.
다만 노도처럼, 밀려도 또 부닥쳐오는 삶은 끈덕지다. 시인들은 비린내도 포말도 받아 적는다. 거기 말이 거기 사람도 살리니까. “바닷물은 차고 볕은 한없이 따가운 칠월 초순 첫 멍게 작업이었다/ 휘이휘이 숨 트며 방파제 돌아 나오던 춘자 형님이 그만 정신을 놓았다/ 후불 형님과 돌돌이 형님이 둥둥 뜬 몸 끌고 와/ 물옷 물고 찢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살아래이/ 살 거래이/ 가믄 안 된데이/ 살아야 한데이/ 춘자야 인나거라, 인나라, 인나라// 숨을 놓는 동료에게 주문을 걸던 고래들이 생각났다/ 주둥이로 힘껏 물 위로 차올려 몇번이고 분기공 띄우려 애쓰던 참돌고래들/ 가라앉은 삶을 떠받치며 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물의 말’ 중)
권선희는 충청도 어느 마을로 “좋은 것 먹고 좀더 살자고/ 미역귀는 암놈으로 골라 보냅니다”(‘택배’) 썼고, 박경희는 죽다 살아난 구룡포 해녀로 ‘바다, 잠시 숨을 멈추다’ 썼다. 또한 우연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