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의 권선희 시인. 1998년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 ‘구룡포로 간다’, ‘꽃마차는 울며 간다’ 등을 펴냈다. 창비 제공
시집 ‘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의 권선희 시인. 1998년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 ‘구룡포로 간다’, ‘꽃마차는 울며 간다’ 등을 펴냈다. 창비 제공

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
권선희 지음 l 창비 l 1만원

미나리아재비
박경희 지음 l 창비 l 1만원

시집 ‘미나리아재비’의 박경희 시인. 2001년 등단해 시집 ‘벚꽃 문신’, ‘그늘을 걷어내던 사람’ 등을 펴냈다. ⓒ주기중, 창비 제공
시집 ‘미나리아재비’의 박경희 시인. 2001년 등단해 시집 ‘벚꽃 문신’, ‘그늘을 걷어내던 사람’ 등을 펴냈다. ⓒ주기중, 창비 제공

시집 한 권은 경상도 구룡포 동해를, 한 권은 충청도 보령 서해를 받아 적는다. 해서 구수하단 게 아니다. 거기 말이 아니면 말해지지 못하는 삶들이 비로소 말해지므로 구슬프다. 시인 송경동이 신경림, 백석도 보인다고 추천사 쓴 포항 시인 권선희의 ‘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과 지난해 산문집 ‘충청도 마음사전’으로 토속의 울림을 줬던 박경희 시인의 ‘미나리아재비’다. 우연히도 창비시선 505·506번인데, 시들은 다 달라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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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도 귀하던 시절, 서울 병원 간 할멈 소식이 없자 노인은 애가 탄다. 편지를 쓰자니 글을 모른다. “저짝에서 소쩍새가 소쩌럭 소쩌 소쩌 여러날 우는디 환장허겄데, 혼자 사는 노인네들은 어찌 사나 몰러,…/ …뭐라 쓰야 헐지 몰라서 고민허다가 에라 모르겄다, 허고는 소 다섯마리 그려 보냈당께, 근디 할멈이 용케 알아보고 열흘 만에 왔더만, 나가 글씨보단 그림에 소질이 있는 걸 그때 알았당께”(‘오소’ 중)

예순살 남자는 선을 본다. 과수원 일 때문에라도. 아내와 사별한 진 겨우 1년. 상대가 그랬단다. “조건이라는 게 현찰 일억을 통장에 꽂고 월급 택으로 몇십만원씩 다달이 넣는 거라대요. 호적에도 못 오를 몸 밤낮 없을 밭일에 늙어갈 새 영감 치다꺼리까지 하다 덜컥 죽고 나면 버려질 생은 누가 책임지냐고요….// 혼자 살다 비비 말라 죽어도 이런 거래는 아니지 싶어 결국 파투 낸 친구가 강소주 같은 노을을 짊어지고 마누라 무덤에 엎어져 꺼이꺼이 이랬다 캅디다.// ‘여보게, 자네가 일억도 넘는 고귀한 사람인 줄 내는 왜 여적 몰랐을꼬 참말로 미안했네.’”(‘어떤 환갑’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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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어의 시엔 없는 사람과 풍파의 냄새들. 코로나도 도시만 다녀간 줄로들 안다. 더 가난해지고, 무너지고, 정신 놓고, 병들고, 죽는다. 50년 전 물길 잃고 북에 갔다 정작 귀환한 뒤 간첩으로 몰려 고문당한 이래 “오징어 절대 안 먹니더. (…) 바람에 냄새만 와도 씨뻘건 부아가 이니더”라는 노인은, 쌀값 떨어져 군청 앞 쌀가마니 부려놓은 채 “빈 하늘에 하소연하다가 쓰러져” 죽은 노인이다.

다만 노도처럼, 밀려도 또 부닥쳐오는 삶은 끈덕지다. 시인들은 비린내도 포말도 받아 적는다. 거기 말이 거기 사람도 살리니까. “바닷물은 차고 볕은 한없이 따가운 칠월 초순 첫 멍게 작업이었다/ 휘이휘이 숨 트며 방파제 돌아 나오던 춘자 형님이 그만 정신을 놓았다/ 후불 형님과 돌돌이 형님이 둥둥 뜬 몸 끌고 와/ 물옷 물고 찢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살아래이/ 살 거래이/ 가믄 안 된데이/ 살아야 한데이/ 춘자야 인나거라, 인나라, 인나라// 숨을 놓는 동료에게 주문을 걸던 고래들이 생각났다/ 주둥이로 힘껏 물 위로 차올려 몇번이고 분기공 띄우려 애쓰던 참돌고래들/ 가라앉은 삶을 떠받치며 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물의 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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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희는 충청도 어느 마을로 “좋은 것 먹고 좀더 살자고/ 미역귀는 암놈으로 골라 보냅니다”(‘택배’) 썼고, 박경희는 죽다 살아난 구룡포 해녀로 ‘바다, 잠시 숨을 멈추다’ 썼다. 또한 우연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