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의 분석론 전서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김재홍 옮김‧주석 l 서광사 l 2만9000원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는 스승 플라톤과 함께 서양 학문의 비조 자리에 서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 영역은 광활해서 생물학부터 신학까지 거의 모든 문제를 포괄했고, 이 드넓은 연구로 오늘날 통용되는 대다수 학문의 토대를 마련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연구 분야에는 ‘논리학’도 있는데, 논리학 저작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히는 책이 ‘분석론’이다. 이 책의 첫 번째 권 ‘분석론 전서’가 우리말로 처음 번역됐다.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 전문가 김재홍 정암학당 연구원이 40여년에 이르는 아리스토텔레스 연구 끝에 산출한 결실이다. 옮긴이는 조만간 ‘분석론 후서’ 번역본도 내놓을 예정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주저 ‘형이상학’에서 학문을 이론적 학문, 실천적 학문, 제작적 학문으로 분류했다. 이론적 학문에는 수학‧자연학‧신학‧형이상학 같은 앎(인식)을 목표로 하는 학문이 포함되며, 실천적 학문에는 윤리학과 정치학이 포함되고, 제작적 학문에는 시학‧수사학이 배정된다. 눈여겨볼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학문 분류에서 논리학이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논리학은 학문 자체가 아니라 학문으로 들어가는 데 필요한 예비적 작업, 다시 말해 학문과 사유에 필요한 일종의 도구를 습득하는 작업이었다. 그래서 후대 사람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저술을 하나로 묶어 ‘오르가논’(organon, 도구)이라고 불렀다. 논리학은 학문 활동에 쓰이는 올바른 사유 방법을 안내하는 학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오르가논’은 ‘범주론’, ‘명제론’, ‘분석론’(전서‧후서), ‘변증론’, ‘소피스트적 논박’으로 이루어져 있다. ‘범주론’은 문장의 주어와 술어를 구성하는 ‘낱말’의 특성을 탐구한다. ‘명제론’은 이 낱말들로 이루어진 명제를 탐구 대상으로 삼는다. ‘분석론’은 이 명제들의 논리적 관계를 탐사한다. ‘변증론’은 ‘분석론’과 마찬가지로 명제들의 논리적 관계를 밝히지만, 특히 대화와 문답에서 나타나는 논리에 주목한다. 또 ‘소피스트적 논박’은 이런 변증론적 추론 가운데 ‘잘못된 추론’에 초점을 맞춘다. 이 여러 논리학 저술 가운데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의 정점을 보여주는 것이 ‘분석론’이다. 이 저서를 통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서양 논리학의 창시자이자 논리적 사유의 천재로서 영원히 이름을 남기게 됐다.
‘분석론’이 분석하는 것은 ‘학문적 추론’이다. 다시 말해 학문이 학문으로서 자립하려면 갖춰야 할 올바른 추론의 형식적 구조를 분석하는 것이 ‘분석론’이다. 따라서 ‘분석론’의 주제는 오늘날의 용어로 말하면 ‘형식 논리학’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형식 논리학의 아이디어를 수학, 특히 기하학에서 빌려왔다. 아리스토텔레스 당대에 벌써 기하학은 높은 수준에 이르러 있었고 추상적 사유의 모범으로 통했다. 이 ‘분석론’ 가운데 ‘전서’가 형식적 추론의 ‘예비적 논의’를 담고 있다면, ‘후서’는 ‘전서’에 입각해 ‘학문적 추론’ 자체를 다룬다.
‘분석론 전서’가 분석하는 ‘추론’은 그리스어로 ‘실로기스모스’(syllogismos)라고 한다. 이 ‘실로기스모스’에서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 하면 사람들이 곧장 떠올리는 ‘삼단논법’(syllogism)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삼단논법은 후대에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을 변형한 것이어서 아리스토텔레스 분석론 자체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실로기스모스라는 말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는 ‘명제들을 함께(syl-) 모아놓음(-logos)’을 뜻한다. 명제들을 모아놓고 그 내적 관계를 밝힌다는 뜻이다.
잘 알려진 삼단논법의 사례는 다음과 같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이 삼단논법을 ‘분석론 전서’의 아리스토텔레스 방식으로 서술하면 이렇게 된다. “만일 모든 사람이 가사적(죽는) 존재이고 소크라테스가 사람이라면, 소크라테스는 가사적 존재다.” 이 명제를 다시 형식 논리로 바꾸면 이렇게 된다. “만일 A(소크라테스)가 모든 B(사람)에 속하고, B(사람)가 C(가사적 존재)에 속한다면, A(소크라테스)는 C(가사적 존재)에 필연적으로 속한다.” 이렇게 형식 논리를 통해서 전제에서 결론을 끌어내는 추론의 구조를 분석하는 것이 ‘분석론 전서’의 일이다. ‘분석론 전서’에서 말하는 추론은 오늘날 연역(deduction)이라고 불린다. 연역 추론이 ‘분석론 전서’의 주제인 셈이다.
‘분석론 후서’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추론의 형식적 구조’를 ‘학문적 인식’에 적용한다. 주목할 것은 추론의 형식적 구조는 ‘전제에서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결론’만 따질 뿐이지 그 전제 자체의 참과 거짓을 문제 삼지 않는다는 점이다. 반면에 ‘학문적 인식’은 참된 전제에서부터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참된 결론을 대상으로 한다. 올바른 전제에서 올바른 방식으로 결론이 도출됐을 때, 그 학문적 증명을 두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논증’(apodeixis)이라고 부른다. ‘분석론 후서’는 이렇게 연역 추리를 통해 올바른 논증과 학문적 인식에 이르는 길을 살핀다.
이 대목에서 물음이 불거진다. 학문적 연역 추론이 내세우는 ‘참된 전제’ 혹은 ‘보편적 전제’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이 문제를 아리스토텔레스는 ‘분석론 후서’ 말미에서 다룬다. ‘어떤 전제가 참된 것임을 우리는 어떻게 아는가’ 하는 물음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내놓은 대답은 ‘귀납’(induction)이다. 연역이 보편적인 전제에서 특수한 결론을 끌어내는 것이라면, 귀납은 특수한 것들, 곧 개별적인 사례들에서 보편적인 결론을 끌어내는 것이다. 이 귀납을 통해서 우리는 올바른 전제를 확보한다. 다시 말해, 경험을 통해서 쌓은 특수한 것들에 대한 지식을 종합해 거기서 보편적인 결론을 내고, 그 결론을 학문적 사유의 전제로 삼는 것이다.
학문의 참된 인식은 일차로 연역적 추론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전체로 보면 연역과 귀납의 합동 작품임이 이로써 드러난다. 그 학문적 인식에 이르는 사유의 길을 안내하는 것이 ‘분석론’이며, 그 ‘분석론’의 현관에 놓인 책이 ‘분석론 전서’다. 18세기 독일 철학자 칸트는 논리학이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한 발짝도 더 전진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논리학을 완성했다는 뜻이다. 이 책은 출발 단계에서 벌써 정상의 높이에 이른 그 논리학의 웅장한 풍경으로 독자를 이끈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