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어울리는 사람아. 여름옷을 입었는데 너는 영 다른 사람 같다. 여름옷을 처음 입어보는 사람일 테니 그 모습이 귀엽고 신기해서 오래 들여다보는데 너는 정말 여름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 있군. 이 계절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 있네. 나도 어떤 계절이든 그 계절에 어울리는 사람이 된다면 참 좋을 텐데.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나를 통해 드러난다면.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하여튼 너는 지금 여름과 여름옷이 되는 사람. 여름 표정이 되는 사람아. 여름 몸짓이 되는 사람아. 여름 풀벌레와 여름 야시장이 되는 사람아. 그렇게 여름이 되어 있는 사람이므로 너는 여름 목소리를 내어 나를 부를 것 같네. 하지만 부르지는 않았는데. 그런데도 나는 웃으며 겨울 목소리를 내어 응답했는데. 나도 오래전의 여름옷을 입은 채 서 있는 사람 같았는데.

-등단 10년 맞은 안태운의 시집 ‘기억 몸짓’(문학동네시인선 216)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