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세’는 그것을 초래한 인류에게 까다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거대한 존재자 사슬의 정점에 서 있는 듯 다른 사물들을 편의대로 주물러온 인간은 이제 오만한 인간중심주의를 내려놓고 다른 사물들과 동등한 위치로 돌아가야 할 겁니다. 그런데, 버려야 할 그 인간중심주의 속에는 인간이 과거와 다른 무엇이 되기 위한 발판도 포함되어 있는 듯 보입니다.
진태원 성공회대 민주자료관 연구교수는 이렇게 지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율배반에 빠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 우리 인간을 여느 독특한 실재들 중 하나로 위치시켜야 하고 그런 위치에 걸맞은 윤리와 정치를 실행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책임 있는 윤리와 정치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인간은 여느 독특한 실재에 머물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인류세의 정치를 상상하기’, 문학동네 118호)
지구라는 행성에 끼쳐온 지대한 영향력과 그에 걸맞은 책임과 윤리를 강조할수록, 인간은 되레 날이 갈수록 점점 ‘더 크게 존재’하도록 상상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비대해진 인간이 과연 인간-비인간 존재자들을 아우르는 ‘사물들의 동맹’에 함께할 수 있을지 의문도 들고요.
생태이론가 티머시 모턴은 ‘저주체’에서 좀 더 단순한 이야기를 던집니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우리(인간)가 이해할 수 있기에” 해야 할 일이 있을 뿐이라는 겁니다. “당신은 메마른 숲에서 타오르는 담배가 어째서 피워졌으며 어째서 그 자리에 버려졌는지 알 필요가 없다. 당신은 불을 끄면 될 따름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담뱃불을 보고 그것이 무엇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책임이 있을 따름이기 때문이다.”
최원형 책지성팀장 circ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