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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가 유달리 길어 다른 새들과 다르게 깃털을 단장할 때 부리가 아닌 발을 쓰는 칼부리벌새. ⓒMick Manning, 문학동네 제공
부리가 유달리 길어 다른 새들과 다르게 깃털을 단장할 때 부리가 아닌 발을 쓰는 칼부리벌새. ⓒMick Manning, 문학동네 제공

버드걸
마이아로즈 크레이그 지음, 신혜빈 옮김, 최순규 감수 l 문학동네 l 1만9800원

고작 인생을 22년 살아놓고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에세이를 썼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버드걸’을 다 읽고 나면 그런 생각이 얼마나 협소한 생각인지 알게 될 것이다. 이 책은 탐조가이면서 환경·다양성 운동가이고 디아스포라적 삶을 살아온 마이아로즈 크레이그가 그의 무지갯빛 삶을 담은 아름다운 이야기다. 그가 지나온 삶의 여정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넓고 다채로우며 역동적이다. 그가 이 책에 녹여낸 ‘탐조 가족’의 기가 막힌 탐험 이야기는 한편의 멋진 모험 소설이자 흥미진진한 가족 여행기이다. 저자의 글은 ‘나는 이렇게 많은 새를 봤다’고 과시하는 글이 아니다. 저자 가족과 저자 자신의 내밀하고 아픈 부분도 있는 그대로 드러낸 처절한 기록이면서, 새에 미쳐 일곱 대륙 40개국을 여행한 이 가족이 목도한 세계 곳곳의 자연 훼손 실태 참상을 고발하는 환경책이기도 하다.

‘버드걸’의 저자 마이아로즈 크레이그. ⓒMack Breeden
‘버드걸’의 저자 마이아로즈 크레이그. ⓒMack Breeden

크레이그는 말랄라 유사프자이, 그레타 툰베리 같은 청소년 환경운동가와 함께 수많은 국제무대에서 환경 관련 연설을 해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활동가이다. 그의 남다른 삶은 태어나면서부터 예정돼 있었던 듯하다. 그는 영국인 아버지와 방글라데시계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이들 부부는 탐조에 푹 빠진 ‘덕후’였다. 부부는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쇠덤불해오라기를 보러 갔다가 결혼식을 한 시간 미룰 정도로 새를 좋아했다. 부부는 태어난 지 9일밖에 안 된 영유아 크레이그를 데리고 탐조 여행을 떠날 만큼 과감한 사람들이었다. 주중에 장시간 노동을 하고도 주말에 새를 볼 수 있다면 자동차로 이틀 꼬박 달려가는 열정 가득한 부부였다. 탐조 커뮤니티에서도 유명했던 크레이그 아버지는 어린 크레이그에게 쌍안경을 정확히 쓰는 법부터 ‘피슈’ 소리를 내 새를 탁 트인 곳으로 나오게 하는 방법, 탐조 커뮤니티의 고유한 문화까지 자연스럽게 알려줬다. 그런 가정환경 속에서 크레이그는 자연스럽게 새를 보는 기쁨을 알아갔고, 7살 때 조류 325종을 관찰하는 기록을 세웠다. 그해 크레이그는 한해 동안 정해진 지역 안에서 최대한 많은 종류의 새를 보러 다니는 ‘빅 이어’에 아버지와 함께 참여했는데, 당시 세계에서 빅 이어를 완수한 유일한 어린이가 됐다. 20대 초반인 크레이그는 현재까지 5천종이 넘는 새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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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눈썹앨버트로스. ⓒMick Manning
검은눈썹앨버트로스. ⓒMick Manning

이들 가족은 영국의 전 지역뿐만 아니라 에콰도르, 우간다, 남극, 콜롬비아, 페루, 볼리비아 등지에 새를 보러 다녔다. 이들이 새를 보러 가는 과정, 그리고 숨죽이고 기다리다 자신들이 보고 싶어 한 새를 발견하는 그 짜릿한 순간의 묘사는 어떤 소설보다도 드라마틱하다. 1600종의 새가 서식해 전 세계 조류 개체수의 15퍼센트가 살고 있는 에콰도르. 가족은 에콰도르의 국조 안데스콘도르를 보기 위해 사륜구동차를 타고 구불구불한 고산 지대까지 올라가지만 새는 보지 못하고 숙소로 돌아온다. 여독이 몰려와 밥도 먹기 싫다고 칭얼거리던 그 순간, 크레이그는 나뭇가지에서 칼부리벌새를 발견한다. “휘황한 터키색과 에메랄드그린, 벨벳 같은 짙은 보라색으로 반짝이는” 벌새를 보며 저자는 “어떻게 그런 색채가 자연에 존재할 수 있는지” 감탄한다. 8살이었던 저자는 이날 “전 세계 벌새 373종을 모두 보겠다”고 가족에게 선언한다. 이런 방식으로 저자는 각 대륙의 특색을 담고 있는 230종 이상의 고유종, 희귀종 새들을 자신의 이야기 속에 소개한다. 새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던 독자도 새에 관심을 가게 만들 정도로 묘사가 자세하고 생동감이 넘친다.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아스팔트와 건물 숲에 둘러싸인 도시에서 시간에 쫓겨 바쁘게만 살아가는 우리가 얼마나 무감하고 감탄할 줄 모르는지 깨닫게 된다. 저자는 “비록 찰나의 순간일지라도 새들에게는 우리의 삶에서 시선을 돌려 하늘을 바라보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말한다. 그 삶의 경이로움과 감탄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집 근처 새를 크레이그처럼 관찰해볼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또 ‘지구촌의 어딘가에서는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인식의 지평이 넓어지면서, 사소한 것에 안달복달하던 마음이 묘하게 평온해진다.

캘리포니아콘도르. ⓒMick Manning
캘리포니아콘도르. ⓒMick Manning

책은 탐조인들끼리 서로 더 많이 보기 위해 경쟁하는 문화라든가 탐조인들이 얼마나 고도의 집중력과 엄청난 인내심을 발휘하는지 알려준다. 또 탐조 여행할 때 현지 가이드와 환경친화적 숙소를 이용하는 생태 환경에 대해서도 다루는데, ‘덕후’들의 세계를 슬쩍 엿보는 재미가 있다. 그 세계에도 시기와 질투, 불안, 경쟁이 존재하기도 하고, 기쁨과 나눔, 협력과 공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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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조 이야기로만 가득 채워졌다면 유별난 가족의 취미 이야기로 끝났겠지만, 이 책은 크레이그 가족의 슬픔과 고통의 한 단면도 보여준다. 크레이그 어머니는 양극성 장애를 가진 정신질환자이고, 조증과 우울증을 반복적으로 오갔다. 자살 충동과 수면 부족, 공황 발작 등으로 괴로워하는 크레이그 어머니는 병원에 입원하기도 하고 약물도 복용했다. 그러나 무엇을 해도 병세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아내와 아내 때문에 힘들어진 가족을 위해 크레이그 아버지는 치유의 한 방법으로 탐조 여행을 택한다. 어찌 보면 무모해 보이는 이 결단은 효과를 발휘한다. 여행은 삶의 어떤 순간엔 마법과 같은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새를 사랑하는 크레이그 어머니는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기력을 회복하고 정신도 맑아졌으며 행복함을 느꼈다. 정신질환 환자 가족이 고군분투하면서 삶을 감당해내는 모습은 감동적이며 가족의 의미도 되새겨보게 만든다.

탐조책, 환경책, 한 소녀의 성장기, 가족 이야기, 디아스포라 이야기 그 어느 것 하나로 설명할 수 없는 이 책으로 읽는 독자마다 각자의 경험과 관심에 따라 각기 다른 맛을 느껴볼 수 있겠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