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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파초잎 아래라면 내 마음을 숨길 수 있겠다
초록이 누적된 길고 널따란 잎을 세워
휘청거리는 몸 감출 수도 있겠다
바람이 파초잎을 찢어놓고 갔다
파초잎 긴 손이 햇빛을 잠재운다

삽목된 마음은 물 빠짐이 지나쳐
뿌리 내리기 쉽지 않다
얼룩도 무늬도 없는 파초잎
잡고 누르면 가느다란 소리를 내며 실처럼 갈라지는
그 소리에 왜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는가

저 파초잎 그늘이라면 내 마음을 숨기기에 알맞다

- 조용미의 신작 시집 ‘초록의 어두운 부분’(문학과지성 시인선 602)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