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좀비’는 철학자 데이비드 차머스가 1990년대에 제기했던 사고실험입니다. 여기서 좀비는 공상과학 영화에 등장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말하고 움직이고 행동하는 것 등 물리적·화학적 구성과 기능은 인간과 똑같지만 이른바 ‘내적 세계’만을 결여한 존재를 가리킵니다. 애초 이 사고실험은 인간의 생명 활동을 두뇌의 신경과학적 과정으로 해명하려는 ‘물리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제기됐는데, 이후 여러 방면에서 활용되며 다양한 논쟁들을 불러일으켰다고 합니다.
‘우리가 동물의 꿈을 볼 수 있다면’에는 이 사고실험을 존재의 도덕적 근거를 따져묻는 데 활용한 철학자 찰스 시워트의 사례가 소개됩니다. 만약 철학적 좀비가 될 수 있는 선택지가 주어진다면, 과연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게 될까요? 철학적 좀비가 된다면, 운명처럼 우리를 옥죄고 있는 고통이나 슬픔 등으로부터도 해방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워트는 바로 그 이유로, 우리 대부분은 철학적 좀비가 되길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 말합니다. 그것이 대부분 고통과 슬픔일지라도, 우리는 우리가 이 세상에 닻을 내리고 그것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감정과 감각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삶의 증거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세상에서 우리와 마찬가지인 존재들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를 공감할 만한 대상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를 세계에 붙잡아주는 주관적이고, 구체적이며, 정서적인, 즉 한마디로 현상적인 고정임을 뼛속 깊이 느낀다.” ‘내적 세계’는 타인이 어쩔 수 없는 각자의 우주이지만,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함께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최원형 책지성팀장 circ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