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 리더십
합의에 이르는 힘
케이티 마튼 지음, 윤철희 옮김 l 모비딕북스 l 2만6000원

“나는 서독에서 살았다면 교사가 됐을 가능성이 커요.” 루터교 신자가 아니었다면, 여성이 아니었다면, 과학자가 아니었다면, 동서독이 통일되지 않았다면, 무엇보다 동독 출신이 아니었다면, ‘무티’(Mutti·엄마)는 없었을 것이다. 앙겔라 메르켈이 없었다면, 세계는 지금과 다를지 모른다. 최소한, 유럽은 지금의 유럽이 아니었을 것이다. 2005년 11월부터 2021년 9월까지 16년간 4차례에 걸쳐 독일 총리를 지낸 앙겔라 메르켈의 정치 인생을 담은 <메르켈 리더십>은 그의 리더십을 알기 쉽게 정리해놓은 ‘실용서’가 아니다. 메르켈이 동독에서 성장한 여성으로서, 루터교 목사인 아버지에게 영향받은 기독교적 신념과 과학자 활동을 하며 체득한 합리성을 함께 지닌 정치인으로서, 리더십을 형성하고 세계 정치를 이끄는 역정을 그린 대하드라마라 해야 할 것이다. 메르켈이 어떻게 메르켈이 되었는가를 깊고 넓게 살피는 과정은, 메르켈의 정치 인생이 그 자체로 세계사의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통일 이후 독일을 중심으로 현대 정치사를 들여다보는 작업이기도 하다.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카메라 앞에 설 때 팔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난감해하다가 양손을 모으는 자세를 취하기로 했다. 그 이후 카메라 앞에 설 때마다 양손을 마름모 모양으로 모았다. 이를 두고 ‘메르켈 마름모’(Die Merkel-Raute) 또는 메르켈의 다이아몬드라고 사람들은 불렀다. 이 손 모양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카메라 앞에 설 때 팔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난감해하다가 양손을 모으는 자세를 취하기로 했다. 그 이후 카메라 앞에 설 때마다 양손을 마름모 모양으로 모았다. 이를 두고 ‘메르켈 마름모’(Die Merkel-Raute) 또는 메르켈의 다이아몬드라고 사람들은 불렀다. 이 손 모양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조심성, 통제 의지, 자제력, 인내심, 기다림…. 말하기보다 듣기를 즐기고, 표정을 감추며 정치적 수사를 극도로 자제하는 담백하지만 까다로운 인물. 냉철한 이성과 무욕의 겸손함은 그의 정치 인생을 관통하며 민주주의란 어떻게 가능한가를 역설한다. 그가 동독에서 자라났기 때문일 것이다. 메르켈의 아버지는 동베를린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갔다. ‘종교를 민중의 아편’이라 여기는 사회로 이주한 목사의 딸은 소수자였다. 메르켈은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고발하는 감옥 같은 곳에 안착할 수 없었다. 1985년은 메르켈에게 중요한 해다. 당시 서독 대통령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는 종전 40돌 기념식에서 이렇게 연설했다. “우리는 편협하지 않은 시선으로 진실을 바라봐야 합니다. 더 솔직해질수록, 그 결과를 더 자유로이 직면할 수 있습니다. (…) 역사에 길이 기록될 집단 학살로 독일 강제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은 유대인 600만명을 기억하십시오.” 나치에 희생당한 공산주의자들만 주입식으로 배운 메르켈은 충격 속에 눈을 떴다. 메르켈 리더십 중심에 ‘쇼아’(Shoah, 히브리어로 절멸)가 자리잡게 된 사건이다. 독일은 유대인에게 영원히 빚졌다는 메르켈의 확신은, 홀로코스트를 유대인의 언어로 인식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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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들은 1989년 11월9일 베를린 장벽을 28년 만에 무너뜨렸다. 이미 동독인들의 대탈출과 시위가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동독에 자유의 바람이 부는 가운데, 메르켈은 1989년 12월 동독 신생정당 ‘민주적 각성’(DA)에 입당하는데, 당수 안드레아스 아펠트는 그를 이렇게 기억했다. “웬만해서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무척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서른다섯살로 보이지 않았고 펑퍼짐한 코듀로이 치마에 샌들을 신고 독일 남자들 같은 단발머리를 한 채 당사 한쪽에서 사무용 컴퓨터를 조립하는 메르켈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렇게 당 대변인으로 선임된, 과학자의 성실성과 뒤로 물러나 기다릴 줄 아는 신중한 성품을 지닌 그에게는 이보다 더 큰 기회가 기다리고 있었다. 1990년 10월 통일 직후 기독민주연합(CDU) 소속 헬무트 콜 총리는 동독 출신 여성을 내각에 포함시킬 정치적 이유가 충분했다. 마침 ‘민주적 각성’은 기독민주연합과 합당한 터였고, 동독 출신 남성 정치인들은 과거 동독 정보기관 ‘슈타지’ 행각이 발각되며 줄줄이 나가떨어졌다. 메르켈은 콜의 지명을 받아 최연소 여성 장관으로 입각한다.

콜이 ‘동독 출신의 메트헨(Mädchen·아가씨)’으로 부르던 메르켈은 결코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환경장관으로 교토의정서 체결에 주요한 역할을 해내고, 정치적 부모와 다름없는 콜 총리의 부정부패를 해당 행위로 규정한다. 그렇게 메르켈은 2000년, 콜 총리의 ‘메트헨’으로 독일 정치의 중심에 발을 내디딘 지 10년 만에 당 대표를 차지한다. 보수적인 남성들로 가득한 당을 장악해야 할 과제 앞에서 메르켈은 성실하고 겸손한 태도로 그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수행해나가 5년 뒤엔 총리에 오른다. 이 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메르켈과 미국, 러시아, 유럽 지도자들과의 관계다. 특히 블라디미르 푸틴과 유일하게 맞상대할 수 있었던 메르켈의 활약상은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메르켈이 없었다면, 푸틴의 각종 도발은 3차 대전의 참화로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버락 오바마 당선 이후 관계를 맺어가는 메르켈의 모습은 노련함이 어디에서 기원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도널드 트럼프마저 어렵사리 길들이는 장면에서는 정치인의 책임감이란 무엇인지 절절히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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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켈 리더십>이 쉽고 재밌게 읽히는 것은, 저자 케이티 마튼의 힘이다. 헝가리 출신으로 미국 <에이비시>(ABC) 서독 특파원을 지낸 저자는 4년간 메르켈의 집무실을 드나들 자격을 얻었고, 헨리 키신저, 조지프 스티글리츠, 요아힘 가우크, 폴커 슐뢴도르프 등 거물들을 비롯해 100명이 넘는 이들을 인터뷰했다. 메르켈에 대한 상찬만 가득한 책이 아니다. 중동 난민을 대거 받아들이기로 한 메르켈의 결정은 위대했지만, 그의 장점은 또한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했음을 명확히 지적한다. 메르켈의 합리적 태도는, 난민 유입에 따른 옛 동독 지역 주민들의 불안감과 박탈감, 불만을 충분히 감싸안지 못했다는 것이다. 메르켈의 낙관주의와 과도한 실용적 관점은 독일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발호하는 위기를 막는 데 한계를 드러냈다. 앞으로 메르켈이 없는 독일은, 유럽은, 세계는 어디로 갈 것인가. 2019년 12월 메르켈은 처음으로 아우슈비츠를 찾아 연설했다. “우리는 믿음과 출신이 다른 사람들을 향해 편견을 조장하고 분노를 선동하는 이들에 맞서야 합니다. (…) 이것은 협상의 대상이 아닙니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