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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거리 넘쳐나는 시대, 왜 기아는 사라지지 않을까

등록 :2021-10-08 04:59수정 :2021-10-08 09:45

[한겨레Book]
글로벌 먹을거리 체계의 과잉생산
빈곤, 기아, 환경파괴 악순환 불러
종자·농약·유통업체에 이익 집중
“농업생태학·먹을거리 주권이 대안”

인도 보팔의 한 도매시장에서 노동자들이 밀부대를 정리하고 있다. 보팔/EPA 연합뉴스
인도 보팔의 한 도매시장에서 노동자들이 밀부대를 정리하고 있다. 보팔/EPA 연합뉴스

우리는 세계를 파괴하지 않고 세계를 먹여 살릴 수 있는가

에릭 홀트-히메네스 지음, 박형신 옮김 l 한울아카데미 l 2만2000원

지구 한편에선 음식 쓰레기가 쌓여 환경문제까지 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엔 여전히 기아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먹을거리는 인류가 모두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생산되고 있지만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이들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우리는 세계를 파괴하지 않고 세계를 먹여 살릴 수 있는가>에서 농업생태학자인 지은이는 현재의 ‘글로벌 먹을거리 체계’가 어떻게 기아를 재생산하고 환경을 파괴하는지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지은이는 현 글로벌 먹을거리 체계가 수세기 동안 지속된 불공평한 ‘먹을거리 레짐’의 결과라고 말한다. 먹을거리 레짐은 “전 세계적 규모로 먹을거리의 생산과 소비의 규칙을 지배하는 구조”를 이른다. 첫번째 먹을거리 레짐(1870년대~1930년대)은 자유무역 제국주의 체계 하에서 식민지의 값싼 먹을거리가 유럽의 산업화를 지원했던 시기다. 두번째 레짐(1950년대~1970년대)에서는 미국의 농업 잉여 생산물이 식량 원조의 형태로 남부로 이전되면서 첫번째 레짐의 특징이던 남부에서 북부로의 먹을거리 흐름이 역전됐다. 이른바 ‘녹색혁명’(개발도상국 농부들에게 비료, 농약, 다수확 곡물 품종을 보급하고자 한 국제 캠페인), 제3세계의 부채위기, 북부 잉여 농산물의 덤핑 판매 등으로 남부는 식량 적자국이 되고 북부에 먹을거리를 의존하게 된다. 현재 3차 레짐은 ‘기업 먹을거리 레짐’(1980년대~) 시기로, “식품 소매 거인들의 급속한 성장, 종자 시장과 곡물시장의 독점적 통제하로의 통합, 바이오 연료와 산업적 곡물-오일시드-축산 복합체의 출현으로 특징지어진다.”

글로벌 먹을거리 체계는 이미 현재 지구에서 살고 있는 76억 명 모두를 먹여 살리는 데 필요한 양보다 1.5배 많은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있다. 그럼에도 2017년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지구상에서 영양실조 상태에 있는 사람의 수는 8억1500만 명에 이른다. 통상적인 활동에 요구되는 정확한 칼로리를 기준으로 측정하면 15억 명이 굶주리고 있다. 더구나 이들 중 상당수는 농부들이다. 현재 먹을거리 체계의 특징은 ‘부족’이 아니라 오히려 ‘과잉생산’이다. 먹을거리가 과잉생산되면 시장에서 낮은 가격이 형성되기 때문에 농부들은 농산물 가격을 생산비용 이하로 낮출 수밖에 없다. 손해를 본 농부들은 다음해 더 많이 생산함으로써 손실을 메꾸고 빚을 갚아야 한다. 그러나 생산을 증가시키는 것은 시장 포화로 이어지고 이것은 가격을 더 낮출 뿐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더 많은 농약과 비료를 투입할 수밖에 없다. 빈곤, 기아, 환경파괴가 심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지은이는 “사람들이 굶주리는 것은 먹을거리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나도 가난해서 먹을거리를 살 수 없기 때문”이라고, 즉 소득과 부의 불평등한 분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산업적 농업, 자본주의 농업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현 먹을거리 체계에서 가장 큰 몫을 가져가는 것은 농식품 산업이다. 종자·화학물질·농기계 공급업체, 포장업체, 가공업체, 소매업체 등이 그들이다. 1950년대에는 농부들이 먹을거리 가치의 40~50%를 가져갔지만 오늘날에는 20%도 안 된다. 기아를 해결하기 위해 2050년까지 먹을거리 생산을 두 배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산업계를 중심으로 계속 나오고 있지만, 현 체계 하에서는 기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뿐더러 지구를 생태적 한계 너머로 내몰 것이라고 지은이는 주장한다. “기아를 종식시키는 것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다. (…) 먹을거리가 생산되는 방식에 대한 통제가 기아와의 투쟁에서 핵심에 위치해 있다.”

현 먹을거리 체계는 토양, 물, 생물다양성, 기후 등 환경적 측면에서도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세계 경작지의 3분의 1이 침식, 염화작용, 산성화, 화학적 오염 등으로 인해 점차 황폐화하고 있다. 농업유출수는 토양을 고갈시킬 뿐만 아니라 많은 양의 질소와 인을 강, 호수, 바다에 퇴적시켜 녹조를 유발한다. 집약농업 생산으로 인한 멸종이 계속되면서 세계 농업 생물다양성의 70% 이상이 사라졌다. 산업적 작물 생산은 전 세계 온실가스의 14% 이상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사용된 비료의 50%가 결국 대기나 지역 수로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먹을거리 체계가 세계를 파괴하지 않고는 세계를 먹여 살릴 수 없다면 누가 세계를 파괴하지 않고 세계를 먹여 살릴 수 있는가?” 지은이가 제시하는 대안은 ‘농업생태학’과 ‘먹을거리 주권’ 운동이다. 농업생태학은 녹색혁명의 사회적·환경적 파괴 경향에 대항해 1980년대에 생겨났다. 지속가능한 농업생태계를 설계하고 관리하는 데에 생태학적 개념과 원리를 적용한 것으로, 소농 먹을거리 체계에 기반을 두고 있다. 농업생태학에서 농부들은 자양물을 공급하기 위해 주로 가축분뇨, 콩과류 식물, 지피작물을 이용한다. 잡초는 사이갈이, 윤작, 사이심기, 짚 깔기 등을 통해, 해충은 섞어심기를 하여 포식자를 끌어들임으로써 관리한다. 농업생태학은 자본집약적이기보다 지식집약적이며, 농업 관련 기업들에서 종자, 비료, 농약을 사들이지 않는다. 먹을거리 주권 운동은 토지개혁, 세계무역기구에서 농업 제외, 농식품 독점의 해체 등의 구조적 정책을 제안해 왔다. “먹을거리 주권은 먹을거리 체계와 정책의 핵심에 시장과 기업의 요구보다는 먹을거리를 생산·유통·소비하는 사람들을 위치시킨다.”

지은이는 자본주의적 먹을거리 체계에 대한 대안을 구축한다는 것은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대안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먹을거리 운동은 기후정의 운동, 여성운동, 급진민주주의 운동, 탈성장 운동, 무역개혁 운동 등 다른 진보운동 세력들과 동맹을 맺어야 한다는 주장도 함께 내놓는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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