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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여년 만의 4·3 보상금…90대 생존자 “평화 위해 써달라” 기부

등록 :2022-11-21 07:00수정 :2022-11-21 09:01

제주4·3 희생자들에 대한 국가보상금이 이달 지급되기 시작한 가운데 뜻있는 일에 써달라며 보상금을 기탁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사진은 제주4·3평화공원 내 희생자들의 위패를 모신 위패봉안실. 허호준 기자
제주4·3 희생자들에 대한 국가보상금이 이달 지급되기 시작한 가운데 뜻있는 일에 써달라며 보상금을 기탁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사진은 제주4·3평화공원 내 희생자들의 위패를 모신 위패봉안실. 허호준 기자

제주4·3 당시 삶과 죽음을 넘나든 90대 남성이 국가보상금을 평화를 위해 써달라며 기부했다. 이달 초 제주4·3 희생자들에 대한 국가보상금이 지급되기 시작한 뒤 나온 첫 기부 사례다.

20일 제주4·3희생자유족회의 말을 들어보면, 4·3 당시 일반재판을 받은 4·3 생존희생자인 강순주(91)씨가 아들 경돈씨를 통해 ‘4·3 의인(義人)과 평화’를 위해 써달라며 국가보상금 1천만원을 유족회에 기부했다. 강씨는 17살이던 1948년 꿩을 잡으러 서귀포시 표선면의 중산간마을을 돌아다니다 마을이 불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선 막연한 두려움에 몸을 피했다. 이후 토벌대에 붙잡혀 고문을 받고 제주시 주정공장으로 끌려갔다가 특별한 혐의가 나오지 않자 석방됐다. 초토화된 마을에서 하루하루를 살던 강씨는 한국전쟁 직전인 1950년 5월 또다시 붙잡혀 일반재판을 받고 금고 2년에 집행유예 3년의 형을 받았다. 전쟁이 터지자 이번에는 경찰에 예비검속됐다.

제주4·3 생존희생자 강순주씨의 아들 경돈(오른쪽)씨가 18일 오임종 제주4·3유족회장에게 국가보상금을 전달하고 있다. 제주4·3유족회 제공
제주4·3 생존희생자 강순주씨의 아들 경돈(오른쪽)씨가 18일 오임종 제주4·3유족회장에게 국가보상금을 전달하고 있다. 제주4·3유족회 제공

다른 지역 예비검속자들이 처형되는 상황에서 성산포경찰서로 끌려간 강씨는 극적으로 살아났다. 당시 문형순 성산포경찰서장이 예비검속된 성산포 주민들에 대한 계엄당국의 총살 명령을 ‘부당하므로 이행할 수 없다’고 집행을 거부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항일무장투쟁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문 서장은 퇴직 뒤 극장 매표원으로 일하다 1966년 6월 세상을 떠났다. 경찰청은 2018년 문 서장의 정신을 기려 ‘경찰 영웅’으로 선정했고, 제주경찰청에는 그의 흉상이 설치됐다.

강씨는 1950년 9월 풀려났다. 당시 문 서장이 강씨에게 한 말은 “나한테 고맙게 생각하지 말라. 모두 하느님의 뜻이다. 석방돼서 나가면 이 사회에 이바지하는 사람이 되라”였다고 한다. 석방 뒤 강씨는 빨갱이 낙인을 벗기 위해 1952년 입대해 전투에 참가했다. 강씨는 “문 서장은 자신의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불의에 항명하며 2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살려낸 분이다. 내가 군대에 간 것도 문 서장의 영향이 컸다. 우리가 기억하고 지켜줘야 한다”고 말했다. 몸이 불편한 강씨 대신 유족회에 기부금을 전달한 아들 경돈씨는 “문 전 서장의 정신을 기리고, 목숨을 구해준 데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제주4·3 희생자에 대한 국가보상금 지급이 이달부터 시작된 가운데 지난 7일 제주4·3평화공원 내 평화교육센터에서 기념식을 열고 있다. 허호준 기자
제주4·3 희생자에 대한 국가보상금 지급이 이달부터 시작된 가운데 지난 7일 제주4·3평화공원 내 평화교육센터에서 기념식을 열고 있다. 허호준 기자

독립유공자 한백흥씨의 손자인 한하용(76)씨도 같은 날 본인 몫의 유족 보상금을 유족회에 전달했다. 한백흥씨는 함덕리 이장으로 있던 1948년 11월 토벌대의 주민 학살을 만류하다 폭도로 몰려 희생됐다.

앞서 4·3유족회에는 올해 초에도 재심을 통해 형사보상금을 받은 4·3 희생자 유족 3명이 유족회와 희생자들을 위해 써달라며 기부했다. 이처럼 4·3 희생자와 유족들의 기부가 잇따르면서 유족회를 중심으로 기금을 조성해 후손들을 위해 활용하는 방안을 찾자는 의견도 나온다. 오임종 4·3유족회장은 “다시는 이 땅에 비극이 없어야 한다면서 평화와 인권을 써달라며 국가보상금을 기부하는 분들의 뜻을 받들어 의미 있게 활용하는 방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제주도는 지난 7일부터 보상금 지급이 결정된 희생자 300여명에게 1인당 최대 9천만원의 국가보상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2026년까지 4·3희생자 1만101명에게 보상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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