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일본 전쟁범죄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헌신한 고 이금주(1920∼2021)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 회장의 삶을 담은 책이 나왔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25일 이 회장의 평전 <어디에도 없는 나라>(선인)을 출간했다.
344쪽 분량의 책은 이 회장의 행복했지만 짧았던 신혼 시절부터 1988년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 설립, 일본에서의 소송과 한국 정부에 대한 실망, 2018년 대법원 승소, 2021년 별세 뒤 남은 이야기를 다뤘다.
1920년 평안남도 순천에서 태어난 이 회장은 1940년 10월 결혼했다. 그러나 남편은 1942년 11월 8개월 된 아들을 남겨둔 채 일본 해군 군무원으로 끌려간 뒤 1943년 11월25일 남태평양 타라와섬에서 미군의 대규모 상륙작전 전투 중 사망했다. 이 회장은 군사정권이 무너진 1988년 69살 때 ‘ 광주유족회’를 꾸려 일제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운동에 뛰어들었다.
1992년 원고 1273명이 참여한 ‘광주천인’ 소송을 시작으로, 같은 해 귀국선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 소송, 일본군 ‘위안부’·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등이 원고로 참여한 ‘관부재판’ 소송, 1995년 비·시(B‧C)급 포로감시원 소송, 1999년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소송, 2006년 일본 외무성을 상대로 한 한일회담 문서공개 소송 등 그는 모두 7건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일본 사법부에 제기했다.
승소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일본 정부를 국제사회에 고발해 반성을 끌어내기 위한 ‘투쟁’이었다. 실제로 이 회장은 일본 법정에서 17차례 기각을 당했지만 헛된 노력은 아니었다. 한일협정 문서가 40여년 만에 공개되고 2004년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돼 한국 정부 차원의 진상규명이 이뤄졌다. 2018년에는 한국 대법원으로부터 배상 판결을 끌어냈다.
또한 책에는 이 회장의 아들과 며느리, 손녀까지 3대가 인권회복을 위해 일본과 맞선 숨은 사연도 담겼다.
이 회장과 일본 소송을 주도한 야마모토 세이타 변호사는 “피해자는 단지 돈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며 “이 책을 읽고 이금주 회장의 인생과 심정을 안다면 가해자도 아닌 자가 대신 돈을 내는 식의 ‘해결방안’이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