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 대통령(왼쪽)이 전두환씨 등과 함께 1995년 12·12 군사반란, 내란 등의 혐의로 1심 법정에 선 모습.<한겨레> 자료사진
노태우 전 대통령(왼쪽)이 전두환씨 등과 함께 1995년 12·12 군사반란, 내란 등의 혐의로 1심 법정에 선 모습.<한겨레> 자료사진

26일 노태우 전 대통령이 사망하자 광주 5·18단체와 시민사회는 “광주학살의 진상을 끝내 말하지 않고 떠났다”며 허탈하다는 반응을 내놨다.

5·18 유족회, 부상자회, 구속부상자회와 5·18기념재단은 이날 오후 성명을 내어 “노태우는 죽더라도 5·18 진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죄와 고백, 5·18을 왜곡한 회고록을 교정하지 않은 노씨는 끝까지 죄인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재만 광주시민단체협의회 상임대표는 “노씨는 5·18 진상규명에 비협조적이었고 공개적인 정식 사죄가 없었다. 전두환씨 등 나머지 신군부 세력들은 세상을 떠나기 전 진정성 있게 사죄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씨와 전씨 등 직접조사를 추진했던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는 당황스럽다는 분위기다. 조사위는 성명에서 “고인은 지난 41년간 피해자와 국민 앞에 진실을 밝히고 사죄할 기회가 있었지만 아무런 언급없이 떠났다. 나머지 핵심인물 35명 등은 지속적이고 엄정하게 조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광고

노씨와 광주의 악연은 5·18 당시부터 시작됐다. 1980년 5월21일 새벽 발포를 의미하는 계엄군의 자위권(자기보호) 발동이 결정됐던 회의 자리에 노씨는 전씨 등과 함께 참석했다. 1980년 8월 전씨 뒤를 이어 보안사령관에 취임한 노씨는 희생자 유족 사찰과 분열유도 계획을 추진하기도 했다.

노씨는 생전 광주학살에 직접적인 책임은 없다고 주장했다. 2011년 펴낸 회고록에서는 “‘경상도 군인들이 광주시민 씨를 말리러 왔다’는 유언비어를 듣고 시민들이 저항했다”며 책임을 시민들에게 돌렸다. 5·18단체는 회고록 정정을 촉구했지만 노씨 쪽은 반응이 없었다.

광고
광고

노씨 가족은 그동안 여러차례 광주를 방문해 사죄의 뜻을 밝혔지만 광주 시민사회는 회고록 등을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1988년 2월25일 부인 김옥숙씨가 광주 망월동 5·18 묘역을 찾아 이한열 열사 묘를 참배한 이후 2019년 8월 장남 재헌씨가 31년 만에 광주 국립5·18민주묘지를 방문해 노씨 대신 사죄했다. 재헌씨는 같은 해 12월, 지난해 5월, 올해 4월과 5월 광주를 찾았다. 딸 소영씨도 2019년 12월 전남대병원 어린이병원에 1천만원을 기부하며 광주와 인연을 이어갔다.

일각에서는 ‘반성 않는 전두환에 비하면 낫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노씨의 국립묘지 안장을 위한 행보’라는 시선을 받았다.

광고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한겨레 호남 기사 더보기

노태우 전 대통령 사망
노태우 전 대통령 사망
118
화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