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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보다 텅 빈 연탄창고가 무서워…” 사랑의 연탄 불씨 꺼질라

등록 :2022-10-21 05:00수정 :2022-10-21 07:41

지난 12일 강원도 춘천시 소양동의 한 주택에서 정해창 춘천연탄은행 대표가 직원 1명과 함께 손수 등짐을 지고 연탄 800장을 옮기자 주정자씨가 안타깝고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박수혁 기자
지난 12일 강원도 춘천시 소양동의 한 주택에서 정해창 춘천연탄은행 대표가 직원 1명과 함께 손수 등짐을 지고 연탄 800장을 옮기자 주정자씨가 안타깝고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박수혁 기자

“코로나? 나는 텅 빈 연탄창고가 더 무서워. 얼어 죽지 않으려면 연탄이라도 있어야지….”

지난 12일 오전 강원 춘천시 옛 도심인 소양동 낡은 주택가에서 만난 주정자(79)씨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정해창 춘천연탄은행 대표가 실어온 연탄 트럭을 본 뒤였다. 주씨는 “추위가 시작됐는데 연탄이 없다는 불안감에 잠도 오지 않았다. 정 대표 얼굴을 보니 비로소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춘천연탄은행은 밥상공동체복지재단이 2002년 강원 원주시에 처음 문을 연 뒤 서울·부산 등 전국 31곳에 문을 연 연탄은행 중 한곳이다.

주씨를 따라 비좁은 골목길을 올라가자 조립식 구조물에 나무판자 등을 덧대 만든 연탄창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커먼 연탄 부스러기 흔적만 곳곳에 남아 있을 뿐 연탄은 한장도 없었다. 주씨 옆방에 사는 이춘자(67)씨는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아침에 (연탄) 10장을 빌려왔다. 가스·기름보일러 좋은 건 다 알지만 10만원 조금 넘는 월세 사는 처지에 집주인에게 바꿔달라고 부탁하기도 어렵다. 연탄은 서민들에겐 제일 싸고 따뜻한, 소중한 연료”라고 말했다.

정 대표가 부지런히 연탄을 나르는 사이 옆에서 지켜보던 이씨가 하소연했다. “연탄 배달을 해달래도 100장 정도는 너무 적다면서 안 해줘. 어찌어찌 배달해준다는 데를 찾아도 동네 이름을 대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골목이 좁아 트럭이 못 들어오니까 하나하나 손으로 날라야 하거든. 연탄값보다 인건비가 더 나오니 장사하는 사람들이 그걸 하려고 하겠어? 우리 같은 사람은 연탄은행 말고는 연탄을 구할 방법이 없다니까.”

이날 춘천연탄은행이 준비한 연탄은 가구당 200장씩 모두 800장이다. 주씨 같은 홀몸노인이 사는 작은 월세방에선 하루에 보통 연탄을 5~6장씩 땐다. 200장이면 한 집이 한달 남짓 사용 가능한 물량이다. 정해창 대표는 “춘천만 해도 아직 빈곤과 추위 속에서 살아가는 연탄 가구가 1천가구가 넘는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연탄 배달 요청이 쇄도하고 있지만 코로나19에, 지독한 경기 침체 등의 영향으로 자원봉사자뿐 아니라 후원도 사실상 끊어지다시피 했다”고 말했다. 실제 코로나19 이후 연간 5천여명에 이르는 자원봉사자가 1천여명 수준으로 급감했고, 200여곳에 이르던 후원단체도 절반으로 줄었다. 이날도 자원봉사자가 없이 정 대표가 직원 1명과 손수 등짐을 지고 연탄 800장을 모두 옮겼다.

지난 12일 강원도 춘천시 소양동의 한 주택에서 정해창 춘천연탄은행 대표가 직원 1명과 함께 손수 등짐을 지고 연탄을 옮기자 주정자씨가 정 대표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박수혁 기자
지난 12일 강원도 춘천시 소양동의 한 주택에서 정해창 춘천연탄은행 대표가 직원 1명과 함께 손수 등짐을 지고 연탄을 옮기자 주정자씨가 정 대표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박수혁 기자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면서 춘천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연탄은행이 속속 다시 문을 열고는 있지만, 춘천연탄은행과 마찬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1일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백사마을에서 다시 문을 연 서울연탄은행도 그런 예에 속한다.

백사마을은 예전 ‘산104번지’라는 주소에서 이름을 딴 마을로, 1960년대 청계천과 남대문 일대 철거 등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주민들이 모여 만든 곳이다. 한때 1천가구 정도가 살 정도로 번성했으나 지금은 재개발 등으로 많은 주민이 강제 이사를 가면서 200가구 정도만 남았다. 세대주 평균 나이도 70살이 넘는다. 이곳엔 도시가스는커녕 기름보일러를 들인 곳도 드물다. 집주인의 배려로 기름보일러를 들일 수 있다고 해도 비싼 기름값을 감당하기 힘든 처지라 연탄에 난방을 의지한다. 춘천시 소양동과 닮은꼴이다. 이곳에 사는 노영덕(81)씨는 “보통 사람들한테는 연탄이지만 우리에게는 ‘금탄’이다. 올해는 코로나19에 경제까지 어렵다고 하는데, 도움의 손길이 줄어들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탄은행도 자원봉사자와 후원단체가 줄어 어려움이 크지만, 더 부담이 되는 건 치솟는 연탄값이다. 연탄이 필요한 이들은 여전히 있지만, 이들을 지원하는 연탄은행은 숨이 턱까지 찼다. 실제 2016년까지만 해도 연탄 1장 값은 600원 안팎이었다. 그러다 2018년 800원까지 오르더니 올해는 850원 수준이다. 연탄은행이 처음 문을 연 2002~2003년만 해도 300원이던 연탄값이 세배 가까이 치솟은 것이다. 예년과 같은 규모로 후원금이 들어오더라도 공급할 수 있는 연탄 후원량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셈이다. 연탄은행이 지난해 진행한 연탄 사용 가구 조사 결과를 보면, 아직도 전국에 8만1721가구가 연탄을 사용하고 있으며, 이 중 84.2%(6만8816가구)가 기초수급·차상위 가구다.

밥상공동체복지재단이 지난 1일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백사마을에 있는 서울연탄은행에서 재개식을 열어 전국 에너지 빈곤층 8만여가구에 사랑의 연탄 300만장을 나눌 수 있도록 국민적인 관심을 호소하고 있다. 밥상공동체복지재단 제공
밥상공동체복지재단이 지난 1일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백사마을에 있는 서울연탄은행에서 재개식을 열어 전국 에너지 빈곤층 8만여가구에 사랑의 연탄 300만장을 나눌 수 있도록 국민적인 관심을 호소하고 있다. 밥상공동체복지재단 제공

허기복 서울연탄은행 대표는 “연탄에 의존해 추운 겨울을 나야 하는 8만여가구에 연탄은 ‘생존의 에너지’다. 자원봉사·후원 감소로 연탄 가구는 당장 불을 땔 연탄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따뜻한 관심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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