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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 일타강사 다 버리고 ‘우리술 빚기’에 빠졌죠”

등록 :2022-05-11 19:36수정 :2022-05-12 02:34

[짬] 춘천 전통주조 ‘예술’ 정회철 대표

춘천의 전통주조 ‘예술’ 정회철 대표가 지난달 29일 소주숙성실에서 직접 빚은 증류주 ‘무작53’을 소개하고 있다. 박수혁 기자
춘천의 전통주조 ‘예술’ 정회철 대표가 지난달 29일 소주숙성실에서 직접 빚은 증류주 ‘무작53’을 소개하고 있다. 박수혁 기자

“술이란 취하려고 먹는 것이 아니라 맛있기 때문에 먹는 겁니다. 우리 조상들의 전통주를 보다 많은 사람들과 즐기고 싶습니다.”

가수 박재범의 ‘원소주’ 인기 덕분에 전통주가 엠제트(MZ)세대의 ‘힙한’ 술로 변신했다. 소주뿐 아니라 대표적인 전통주로 알려진 막걸리도 세계적으로 인지도를 넓혀가고 있다. 전국적으로 개인·소규모 양조장에서 ‘제2의 원소주’ 열풍을 기대하며 특색있는 전통주를 앞다퉈 내놓고 있다.

강원도에도 ‘전통주 1세대’를 자처하는 전통주조 ‘예술’이 있다. 2012년부터 홍천에서 전통주를 빚어온 예술은 지난달 16일 춘천시 김유정역 인근 실레마을로 터전을 옮겼다. 농업회사법인 예술의 정회철(60) 대표를 지난달 29일 만났다.

80년대 서울대 법대 학생운동 ‘제적’
공장 노동운동 뛰어들어 구속 ‘전과’
복학해 사시 합격 ‘판사 임용’ 불가
고시 수험서 인기…법학대학원 교수로
2008년 건강 위해 귀촌해 취미로 시작

“오십에야 ‘하고 싶은 일’ 신바람”

지난 4월16일 춘천시 신동면 김유정역 인근 실레마을로 옮긴 ‘양온소’ 예술의 독특한 건물 외관. 예술 제공
지난 4월16일 춘천시 신동면 김유정역 인근 실레마을로 옮긴 ‘양온소’ 예술의 독특한 건물 외관. 예술 제공

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술을 빚는 진한 향기가 코끝을 자극했다. 왼쪽에는 500㎖ 1병에 20만원쯤 한다는 고급 증류식 소주에서부터 청와대 만찬주로 선정됐다는 청주, 복분자주, 막걸리, 이화주(일명 ‘떠먹는 막걸리’) 등 다양한 종류의 전통주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안쪽 유리창 너머로 항아리 20여개가 놓인 소주숙성실이 눈에 띄었다.

“지금 숙성에 들어간 소주는 5년 뒤에나 맛볼 수 있고, 지금 판매 중인 술은 2017년 이전에 내린 술”이라고 설명하는 정 대표의 목소리와 표정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전통주에 대한 소신만큼이나 정 대표의 이력도 독특했다. 서울대 법대 81학번인 그는 신입생 때부터 전두환 군사정권에 항거하는 투쟁에 몰두했고, 결국 2학년 때 제적을 당했다. 이후 위장 취업을 통해 노동운동에 뛰어든 그는 공장 파업을 주동한 혐의 등으로 구속되기도 했으며, 이후에도 노동상담소 등에서 노동운동을 이어갔다. 그러다 1994년 정부의 특례 재입학 조처로 서른셋 나이에 겨우 복학할 수 있었다. 이후 1997년 사법시험에 합격했지만 노동운동 전력과 전과 등의 이유로 판사 임용에 고배를 마셔야 했다.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다. 결국 생계를 위해 고시학원 강사로 나섰고, 그가 쓴 10여권의 ‘헌법’ 수험서가 사시 준비생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스타 강사’로 이름을 날렸다. 충남대 법학대학원 교수까지 맡게 됐지만 건강 악화로 2008년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홍천에 터를 잡았다.

정 대표는 “원래 심리학과에 가려고 했지만 부모님의 요구에 따라 법학을 전공했고, 대학에서는 그 시대 상황이 학생운동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였다. 학원 강사도 그렇고, 평생 내 성향에 맞는 삶을 살아본 적이 없다. 하지만 술을 빚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고, 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전통주 제조에 대한 글을 본 뒤 따라 하면서 시작한 취미가 이제는 그의 인생 2막을 열게 해줬다. 그는 “전통주는 우리 조상들이 먹었던 술이고, 우리 유전자 속에는 그 술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있다. 전통주의 매력에 빠져 직접 빚게 됐고, 그러자 나누고 알리고 싶어졌다”고 예술 창업 배경을 설명했다.

2012년 창업한 예술은 ‘예로부터 내려온 술’의 약칭이다. 술 빚는 일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라는 뜻도 담고 있다. 그의 전통주는 그가 직접 만든 누룩을 쓰는 것이 특징이다. 정 대표는 “일본의 사케나 일제강점기 이후 양조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되는 시중 막걸리 상당수는 배양된 균을 쓴다. 반면, 전통주는 와인으로 치면 ‘내츄럴 와인’이다. 자연 발효 미생물로 빚은 술이다. 내츄럴 와인은 일반 와인에 견줘 2~3배 비싸도 가치를 인정받는다”고 강조했다.

지난 10년 동안 예술을 통해 그가 선보인 제품은 ‘무작53’, ‘무작30’, ‘동몽’, ‘동짓달 기나긴 밤’, ‘만강에 비친 달’, ‘홍천강 탁주’, ‘배꽃 필 무렵’ 등 증류식 소주 2가지·약주 2가지·탁주 3가지 등 7가지에 이른다. ‘아무것도 더하지 않은 순수함’을 뜻하는 무작53은 높은 알코올 도수에도 목 넘김이 부드럽고, 먹고 난 뒤에도 은은한 잔향이 입안 전체에 퍼지는 것이 특징이다.

정 대표는 “전통주는 밤새워 먹어도 다음날 숙취가 전혀 없고 속이 깨끗하다. 따로 해장할 필요가 없다. 또 우리 술은 그 성질이 우리 산하를 닮아 온순하면서도 강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술 문화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술보다는 안주 위주의 술 문화다. 즐기기보다는 취하는 것이 목적인 술 문화다. 전통주점에도 막걸리와 빈대떡이 고작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케 집에 간다. 이는 단지 사케를 먹기 위한 것이 아니다. 특유의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은 수천년에 걸쳐 훌륭한 술을 만들어 놓았다. 후손인 우리가 우리만의 술 문화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우리 술이 더 널리 사랑받기 위해선 상품화해야 한다. 비록 규모는 작더라도 누군가는 지금 시작해야 한다. 하나둘 하다 보면, 우리 술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그러면 수많은 작은 양조장이 생겨나, 다양한 술이 탄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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