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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 알고도… 아무도 9살 소년을 구하지 못했다

등록 :2020-06-05 05:01수정 :2020-06-08 14:20

집에서 가방속 갇혀 숨진 아이
경찰, 한달전 수사 시작했지만
피해자 직접조사·분리보호 안해
보호기관도 “가정에 두고 관찰”
가해 부모 말 믿고 안일한 대응
동거남의 아들을 여행용 가방에 가둬 심정지 상태에 이르게 한 동거녀 ㄱ씨가 3일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동거남의 아들을 여행용 가방에 가둬 심정지 상태에 이르게 한 동거녀 ㄱ씨가 3일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그 누구도 학대받던 9살 소년을 구조해주지 못했다.

피해 아동이 원하지 않는다고 믿었고 상처가 대수롭지 않았다고 여겼다. 아버지와 그의 동거녀 ㄱ(43)씨는 “반성한다”고, “앞으로 잘해주겠다”고 말했다. 학대 의심 신고를 받은 경찰은 아이를 찾지 않았고 아이를 만난 아동보호전문기관은 훈육 과정에서 일어난 해프닝이라고 봤다.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또 한번 멈춘 곳에서 결국 9살 아이는 주검이 됐다.

3일 저녁, “엄마”라 부르던 아버지 동거녀에 의해 여행가방에 갇혔던 ㄴ군이 충남 천안의 순천향대 천안병원 중환자실에서 끝내 숨졌다. 오랜 방학 끝에 첫 등교날이었지만 ㄴ군은 학교에 갈 수 없었다. 지난 1일 가방을 바꿔가며 7시간 넘게 갇혀 있던 소년은 심장이 멈춘 상태로 집에서 발견됐다. ㄱ씨는 “거짓말에 따른 훈육 차원”이라고 경찰 조사에서 말했다. 경찰은 “ㄴ군은 아버지한테도 맞았다”고 했다. 허벅지 뒤쪽 담뱃불 의심 상처 5~6개도 발견됐다. ㄴ군의 아버지가 ㄱ씨와 사실혼 관계로 함께 산 건 약 1년 반 전부터다.

한달 전 어린이날에도 ㄱ씨는 옷걸이와 리코더로 ㄴ군을 때렸다. 아이는 머리가 1㎝가량 찢어지고 손·엉덩이가 군데군데 멍든 채로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병원은 이틀 뒤인 지난달 7일 경찰에 학대 의심 신고를 했다. 수사를 시작한 천안서북경찰서는 신고 다음날인 8일 부모에게 전화로 “학대를 멈추라”고 경고했다. 그 이후 피해 아동에 대한 직접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같은 날 경찰로부터 통보를 받은 충남 아동보호전문기관은 닷새 뒤인 13일에 ㄴ군 집을 찾았다. 학대 피해 발생 8일 만이었다. 출장이 잦은 ㄴ군의 아버지와 일정을 맞추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역시 일정을 맞추기 어렵다는 이유로 경찰은 동행하지 않았다. 아이 몸의 멍 자국은 아물어 있었고 집은 깔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아이는 부모를 옆방에 두고 “세수하다 내 실수로 머리를 다친 것이다. 엄마에게 맞은 것도 내 잘못 때문”이라고 했다. 생전 아이를 유일하게 만난 아동보호전문기관은 “학대 피해가 심각하지 않아 가정에 두고 관찰하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코로나로 학교는 휴업 중이었다. 아동보호기관은 ㄴ군의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전화로 조사했다. 아동보호기관 조사관과 통화한 선생님은 “특별한 학대 정황을 발견하지 못했고, 엄마가 아이 문제에 호의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이었다”고 했다. 아동보호기관은 지난달 20일 가족 상담을 권유했으나 ㄱ씨는 이를 거절했다. 주진관 충남 아동보호전문기관장은 “휴교로 아이 상담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3일 첫 등교를 앞두고 아이 상담을 시작하려 준비해둔 상태에서 추가 학대가 발생한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18일 아동보호기관은 이 모든 상황을 종합해 “아이와 엄마의 상호작용이 나쁘지 않다. 부모가 멍들게 한 학대 사실을 인정하고 깊이 반성하고 있다. 아이를 분리하지 않은 채 가정에 둔 채로 지켜봐도 괜찮다”는 의견을 경찰에 전달했다. 아이의 머리가 찢어진 것은 학대로 판단되지 않았다.

반면, 경찰은 지난달 21일과 24일 ㄱ씨와 ㄴ군의 아버지를 각각 불러 조사한 뒤, 이들을 아동학대 혐의로 검찰에 넘길 참이었다. 이 와중에도 피해 아동 보호명령 청구 등 긴급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학대 우려 가정’에 대한 모니터링도 마찬가지였다. 경찰은 ㄴ군 가정을 A등급 ‘학대 우려 가정’으로 분류해놓고도 신고 접수(지난달 7일) 다음날 경고 전화 외에 어떤 점검도 하지 않았다. 김정완 천안서북서 여성청소년과장은 “병원에서 보낸 피해 아동의 손목 멍 자국의 상태가 그리 심하게 보이지 않았고 아동보호기관이 아동 상담·조사 전문가이기 때문에 그 의견을 신뢰해 판단한 것”이라고 했다.

서혜전 대구한의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아동학대는 가정 안에서 은밀하게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가해자 진술만으로 확인하는 데 한계가 있다. 게다가 아이들은 부모가 ‘네 잘못’이라고 계속 말하며 때리면 진짜 자신의 잘못이라고 믿는 경우가 많다”며 “경찰이 아동상담 전문가와 함께 가정을 방문해 조사해야 범죄(아동학대) 혐의점을 면밀하게 확인할 수 있다. 한달 전 학대 정황을 발견했는데도 기관의 추후 조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이런 일이 벌어진 것으로 보여 매우 안타깝다”고 했다.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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