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산-도라산 고속도로’ 건설사업의 전략환경영향평가 변경은 별도의 심의 절차 없이 환경부 담당 직원이 독단적으로 결정한 것이란 감사원 감사 결과가 나왔다. 감사원은 “환경부의 전략환경평가 협의 의견 번복과 관련한 판단 기준이나 절차 등이 없어 업무담당자가 이를 판단해 객관성이나 중립성이 담보되지 않았다”며 “전략환경영향평가서에 적용할 기준이나 절차를 마련할 것”을 환경부에 통보했다 . 문산-도라산 고속도로는 추진 직후부터 ‘비무장지대(DMZ) 생태환경을 파괴하고 민간인 통제구역 개발에 물꼬를 터줄 것’이란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5일 감사원이 환경부 등에 통보한 ‘문산-도라산 고속도로 건설사업 환경영향평가 과정의 적정성 여부 관련 감사보고서’를 보면, 환경부는 전략환경영향평가서의 ‘협의 의견’을 번복하는 과정에서 업무담당자의 판단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나타났다. 명문화된 판단 기준이나 절차가 없다는 이유였다. 전략환경영향평가는 환경영향평가에 앞서 환경적 측면에서 해당 계획의 적정성과 입지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제도로, 환경부의 협의 의견을 개발기본계획 등에 반영해야 한다.
문산-도라산 고속도로 건설사업이 추진된 것은 2018년 4·27 판문점 선언 직후다. 국토교통부는 총사업비 5683억원을 들여 남북 도로 연결 사업 일환으로 문산-개성 간 고속도로의 남쪽 구간인 파주시 월롱면 능산리에서 군내면 백연리를 잇는 10.75㎞ 구간의 고속도로 건설사업에 착수했다. 이 사업은 2018년 11월 14일 남북교류협력 추진협의회 의결로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받았으며 패스트트랙(설계·시공 일괄입찰·일명 ‘턴키’) 방식으로 추진되었다. 국토부는 2019년 7월 민간인 통제구역 구간과 장단반도 습지, 임진강을 관통하는 계획노선을 담은 전략환경영향평가서 초안을 환경부에 제출했다.
환경부는 같은 해 9월 국토부의 계획노선은 임진강과 인근 갯벌·논습지·산림생태계 등 생물 다양성이 높고 생태적 보전가치가 높은 지역으로 도로를 놓을 경우 생태계 단절, 멸종위기종 서식지 훼손 등이 우려된다며 대안 노선을 추가로 검토하라고 통보했다. 대안 노선으로는 △국도 77호선(자유로 통일대교)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안 △임진강을 교량이 아닌 하저터널로 통과하는 방안 △장단반도를 통과하지 않는 임진강 건너편 노선 활용 방안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국토부는 남북협력사업의 특수성 등을 이유로 환경부의 협의 의견 반영이 곤란하다며 의견 변경을 요청했다. 국토부는 변경 요청 사유로 ‘현 정부 임기 내 착공이 필요하고, 다른 노선으로 변경할 경우 총사업비 협의, 사업자 재선정, 전면 재설계 등 관련 절차를 다시 거쳐야 해 사업이 지연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자 국토부의 회신을 받은 환경부 담당자는 별도의 검토 절차를 거치지 않고 타당한 사유라 판단해 애초 협의한 의견을 변경해 국토부의 전략환경평가서에 대해 ‘조건부 동의’를 했다. 번복 결정을 내리기 전 자문회의가 있었지만 참석한 전문가 4명의 의견은 무시된 것으로 감사결과 드러났다.
[%%IMAGE2%%]현행 환경영향평가법은 환경영향평가 협의 때 다른 의견이 있어 조정을 요청할 경우 환경영향평가협의회 심의를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전략환경영향평가서 협의는 별도의 절차를 두고 있지 않다. 감사원은 “(환경부는) 계획노선에 따른 환경영향 최소화와 갈등해결을 위한 추가 대책을 병행·추진하도록 조건을 부여하는 이례적인 방식으로 협의 의견을 변경해줬다”며 “환경영향평가협의회 심의·결정과 같은 검토 절차가 없어 업무담당자의 판단에 따라 협의 의견이 조정·변경됨에 따라 환경영향평가법의 취지를 훼손하게 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 사업에 반대하는 파주지역 환경단체인 임진강~디엠제트 생태보전 시민대책위원회(임진강대책위)는 “환경부의 환경영향평가 협의가 대통령 임기 안에 추진한다는 목표에 맞춰 급하게 통과되었고, 주민 의견수렴 과정에도 문제가 있었다”며 환경영향평가의 조건부 동의 과정 등 6개 항목에 대한 공익감사를 시민 414명의 서명을 받아 지난 7월 청구했다. 감사원은 이 가운데 ‘조건부 동의 과정’ 등 4개 항에 대해 환경부, 국토교통부, 한국도로공사, 한국환경연구원 등 4개 기관을 대상으로 9월 14일부터 15일간 감사를 실시해 지난달 11일 감사결과를 확정했다.
임진강대책위는 이날 성명을 내어 “감사원 감사결과는 전략환경영향평가 결과를 토대로 시작하게 되는 환경영향평가 절차 전체가 법적으로 하자가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국토부는 문산-도라산 고속도로 건설사업의 즉각 중단을 선언하고, 사업자 지정 및 인허가 처분을 취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단체 노현기 집행위원장은 “무려 5683억원의 국비가 들어가는 사업을 환경영향평가법에 정해진 전략환경영향평가 결과를 담당 공무원 한두 사람이 결정했다”며 “환경부는 이참에 감사원에서 지적받은 환경영향평가법 31조 뿐만 아니라 환경영향평가법 전반을 검토,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