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능력이 약해진 이들을 위한 주거 공간은 어떻게 꾸미는 것이 좋을까?
서울시가 전국 최초로 ‘인지건강디자인’을 적용한 주택과 아파트를 1일 공개했다. 인지건강디자인이란 인지능력이 약해진 노인이나 치매 환자 등을 위해 기존의 익숙한 주거 환경 디자인을 변형해 인지 능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돕는 디자인을 말한다. 이를 위해 회색빛이던 바닥이나 출입구에 화려한 색을 칠하고, 눈에 잘 띄지 않던 층수표기 등 숫자는 크게 적고, 자연의 소리와 향기는 살려 오감을 자극할 수 있도록 변신했다.

인지건강디자인을 적용한 후의 모습. ‘기억키움둘레길’이라고 이름붙였다. 서울시 제공.
인지건강디자인을 적용한 후의 모습. ‘기억키움둘레길’이라고 이름붙였다. 서울시 제공.

양천구 신월1동의 주택은 여느 주택가처럼 차도와 인도 구분이 없어 걷기 어려운 곳이었다. 서울시는 이면보도 바닥에 선을 그려 동네를 돌 수 있는 순환형태의 길을 만들었고, 길 중간에 있는 쉼터에서 쉴 수 있도록 했다. 또 동네의 터줏대감인 슈퍼나 부동산 점포를 ‘반장’으로 지정해 길 잃을 가능성 있는 어르신이 어려움을 겪을 때 도움을 주도록 했다. 반장인 점포 앞에는 색깔 있는 표지판을 설치했다.

영등포구 신길4동의 아파트는 바닥이나 벽면에 화사한 색깔을 많이 쓰고 미로같은 아파트 내부에 숫자를 크게 적어 인지능력이 약해진 이들이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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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건강디자인을 적용한 아파트 운동장. 서울시 제공.
인지건강디자인을 적용한 아파트 운동장. 서울시 제공.

단지의 산책로는 초록색을 칠해 보행로임을 표시하고 턱이 있는 부분은 노란색으로 구분했다. 주민들이 걷다가 힘들면 쉴 수 있도록 100m 간격마다 1인용 벤치를 뒀다. 아파트 뒤편 배드민턴장 바닥에도 ‘보행연습’, ‘선을 따라 균형 잡기’ 등을 디자인했다. 지압 효과를 느끼며 걸을 수 있는 지압길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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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버려지다시피 한 벤치를 활용해 인지능력을 개발하는 훈련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벤치에서는 자신의 그림자 길이를 보고 시간, 장소 등을 알아볼 수 있도록 하고, 버튼을 누르면 옛 가요를 들을 수 있다. 주차장과 출입구에 ‘해·달·별’과 같은 이름을 붙이고, 안전난간과 미끄럼방지 바닥, 벤치, 조명도 설치했다.

또 모든 층 벽면에 눈에 잘 띄는 색깔로 크게 층수 등 숫자를 적고, 각 호수의 방향을 안내해 쉽게 집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똑같은 우편함을 층별로 다른 색깔로 칠하고 호수를 더 크게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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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능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색깔과 숫자를 활용했다. 서울시 제공.
인지능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색깔과 숫자를 활용했다. 서울시 제공.

주민들 만족도는 높다고 한다. 디자인 적용을 마친 두 곳의 주민 286명은 대한치매학회가 실시한 만족도 조사에서 75.9%의 만족도를 보였다.

변태순 서울시 디자인정책과장은 “노령화로 노인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집이나 아파트 단지같은 생활공간에서 치매나 기억력 감퇴 문제 해결에 도움되는 디자인을 적용하자는 취지에서 2014년부터 기획했다”고 밝혔다. 신월동 주택엔 1억8000만원, 신길동 아파트엔 3억2300만원의 시 예산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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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내부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안내했다. 서울시 제공.
아파트 내부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안내했다. 서울시 제공.

시는 이번에 공개한 신월동과 신길동 외에도 노원구 공릉동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7개 동에 시 예산 3억2300만원을 투입해 같은 디자인을 적용할 계획이다. 또 내년에 주거환경 내외부의 디자인 가이드라인과 사례집을 발간한다. 서울시는 이미 지난 2월 치매 가정이나 인지능력이 약한 치매 환자를 위한 집 안 환경 가이드북을 낸 적이 있다.

서울시 광역 치매 센터에 등록된 치매 환자의 62.7%가 집에 머물면서 치료, 요양 중이다. 영국, 호주, 일본 등 외국에서는 인지능력을 발달시키기 위한 디자인 가이드라인이 있고 가상 홈케어나 체크리스트 서비스 등이 보편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아파트 문패를 다양하게 꾸며 인지기능을 높인디자인. 서울시 제공.
아파트 문패를 다양하게 꾸며 인지기능을 높인디자인. 서울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