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밤 서울시 ‘지속가능패션 디자인 런웨이’에서 선보인 웨딩 예복.
20일 밤 서울시 ‘지속가능패션 디자인 런웨이’에서 선보인 웨딩 예복.

지난 20일 밤 8시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서울패션위크 행사장에는 홍대나 가로수길에서 볼 수 있을 법한 ‘패피’(패션피플)들이 다 모였다. 염색 머리와 베레모, 특이한 디자인의 외투와 바지 등 한눈에 봐도 패션에 관심 있는 이들만의 ‘자신감’과 ‘흥분’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대학에서 영상디자인을 전공하며 패션디자인 소모임을 하고 있다는 대학교 2학년 이하빈(20)씨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카키색 재킷과 붉은 립스틱, 앞머리를 내린 검은색 머리와 검정 워커가 이씨의 감각을 보여줬다.

이씨는 이곳에서 곧 열리는 ‘지속가능 패션디자인 런웨이’(SFDN·Sustainable Fashion & Design Network)를 보러 왔다. 그는 특히 서울형 사회적기업인 ‘공공공간’의 제품에 관심이 있다고 했다. ‘공공공간’은 종로구 창신동 봉제공장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고민하며 협력하는 의류 디자인 회사다. 이씨는 “업사이클링(버려지는 제품을 재활용해 새로운 제품으로 만드는 것)에 관심 많아요. 사회 전체가 함께 만드는 패션이라는 주제에 관심 있는데 공공공간 제품도 그런 것 같아요. 패션이란 게 혼자 예쁜 옷 입는 게 전부는 아니지 않나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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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잘 입고 관심이 많은’ , 동시에 ‘패션의 사회적 의미를 고민하는’ 패피 300여명이 자리를 채우자 런웨이 패션쇼가 시작됐다. 이날 쇼에는 패스트 패션브랜드에 대응해 지속가능한 패션을 고민하는 패션업계 사회적 기업이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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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밤 서울시 ‘지속가능패션디자인런웨이’에서 선보인 웨딩 예복.
20일 밤 서울시 ‘지속가능패션디자인런웨이’에서 선보인 웨딩 예복.

일상생활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웨딩 의류를 선보이는 ‘대지를 위한 바느질’은 남녀 웨딩 예복을 선보였다. ‘공공공간’은 자투리 천을 버리지 않고 소매나 카라에 덧대 활용한 작품을 선보였고, 몽골 원주민들의 자립과 산림보호를 고민하는 캐시미어 제품을 만드는 ‘케이오에이’와 남아메리카의 원주민 여성들이 만드는 수공예 제품을 판매하는 ‘크래프트링크’ 제품도 소개됐다. 판매 수익으로 우간다 지역 여성을 돕는 ‘제리백’을 든 모델들도 런웨이를 가득 채웠다.

‘옷의 탄생부터 폐기까지의 단계’를 생각하고, ‘쓰레기를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하자는 쇼답게 ‘우리는 삶의 조화를 입는다’라는 글귀가 사라지면서 패션쇼가 시작됐다. 안개가 피어오르자 현대 무용가가 맨발로 60m 남짓의 런웨이를 걸으며 짧은 퍼포먼스를 펼치고 사라졌다. 관람객들은 자연을 닮은 음악을 들으며 런웨이에 시선을 고정했다. 약 20분 동안 100여벌 이상의 친환경 의류와 10여점의 가방이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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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여자대학교에서 ‘패션과 환경’ 수업을 강의하고 있는 윤지향 교수는 55명의 중국인 유학생들과 함께 패션쇼장을 찾았다. ‘패션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윤교수는 이번 패션쇼를 통해 학생들이 새로운 상상을 하길 바란다고 했다.

허베이 과학기술대학교 재학 중이며 디자이너가 꿈이라는 중국인 윤탁일(22)씨는 “옥수수 전분, 천연한지 같은 친환경 재료로 만들었는데도 웨딩드레스의 커팅이 매우 아름다웠다”고 쇼를 본 소감을 전했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패스트의류 업체 공장이 많은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윤씨는 대답하기를 어려워하면서도 “대량생산 하는 패스트패션은 윤리적이고 인간적이지 않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생각해왔다”고 말했다.

옷을 직접 입고 무대에 선 모델 겸 스타일리스트 함용호(28)씨는 “선원을 주제로 한 턱시도 겸 일상복을 입었다. 친구 결혼식에 추천할 수 있을 정도”라고 옷을 평가했다. 화학섬유로 인한 환경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친환경 웨딩의류를 만드는 ‘대지를 위한 바느질’의 남성복 디자이너 유현철(31)씨는 “두 달 준비해 6벌의 남성 예복을 선보였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점점 예복이지만 환경을 고려한 예복을 찾는 신혼부부가 늘고 있다. 이런 쇼를 통해 더 많이 알려지길 기대한다”고 소감을 말했다.

지속가능한 패션은 단순히 환경문제만 고민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과 지역공동체 문제도 함께 해결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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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공간 신윤예(31) 대표는 대학에서 순수예술을 전공한 뒤 어린이를 상대로 디자인교육을 하다 창신동 봉제공장 노동자들의 일상에 꽂혔다. 신 대표는 “일감이 몰릴 때만 몰리니 노동자들 혹사당하는 게 보이더라. 버려지는 자투리 천으로 옷을 만들어 일감 없을 때도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겠다가 처음의 문제의식이었다”라며 “패스트패션이 주류인 패션 시장에 같은 고민을 하는 업체가 시장을 고민하기 위해 네트워크를 만들었고 서울시와 런웨이 쇼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20일 밤 서울시 ‘지속가능패션디자인런웨이’에서 선보인 웨딩 예복.
20일 밤 서울시 ‘지속가능패션디자인런웨이’에서 선보인 웨딩 예복.

케이오에이 유동주(36) 대표는 유엔 기후변화본부 쪽에서 일하며 몽골, 아프리카, 러시아 등을 돌아봤다. 유 대표는 “몽골의 자산은 캐시미어밖에 남지 않았는데 캐시미어를 생산하는 산양을 키우려면 사막화되는 문제도 있다. 우리는 몽골의 캐시미어 산업의 기초를 다지는 작업을 돕고 나아가 목초지 관리도 한다”고 소개했다.

서울시는 ‘지속가능한 패션, 디자인 런웨이’에 이어, 다음 달 4일에는 성수 유니베라 강당에서 ‘소셜 패션쇼’도 함께 진행한다. 8월 공모를 진행한 48개 팀의 소셜 패션디자이너가 성수동 봉제·수제화 장인들과 협업한 작품을 선보인다.

글·사진/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