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동물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신비롭고 경이롭습니다. 한겨레 동물전문매체 애니멀피플의 댕기자가 신기한 동물 세계에 대한 ‘깨알 질문’에 대한 답을 전문가 의견과 참고 자료를 종합해 전해드립니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동물 버전 ‘댕기자의 애피랩’은 매주 화요일 오후 2시에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궁금한 점은 언제든 animalpeople@hani.co.kr로 보내주세요!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연재 구독하기)
Q.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작곡가 코드쿤스트가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고유종인 도마뱀의 알을 집에서 부화시키는 장면이 등장해 화제였어요. 그 도마뱀은 멸종위기 종이라고 하던데, 개인이 멸종위기 동물을 사육하면서 번식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건가요?
A. 해당 방송에 등장한 도마뱀은 ‘헨켈납작꼬리도마뱀붙이’라는 종으로 마다가스카르 숲에만 사는 멸종위기 취약종이더라고요. 코드쿤스트는 수개월 전 이 도마뱀 한 쌍을 입양해 번식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실제로 방송에서도 “멸종위기종 번식에 이바지한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죠.
실제로 헨켈납작꼬리도마뱀붙이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 이하 사이테스) 부속서 II 에 포함된 종으로 수출입에 허가가 필요한 동물입니다. 세계자연기금(WWF)은 이 도마뱀이 서식지 파괴, 반려동물 거래를 위한 포획 등으로 피해를 입고 있다며 국제 거래를 규제해야 한다고 진단하기도 했고요. 그런데도 우리나라 현행법으로 보자면, 이 도마뱀을 키울 때 관할 환경청에 양도·양수 신고만 한다면 사육·번식에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이는 지금까지 환경부 장관이 지정·고시한 생태계 교란종이나 멸종위기종 이외에는 수입·사육·번식에 대한 규정을 정하는 법적 규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2월 환경부가 주최한 ‘야생생물법 개정안 이해관계자 의견수렴을 위한 공청회’에서 공개된 자료를 보면, 2011~2019년 국내에 수입된 야생동물은 연평균 39만 마리에 달합니다. 이렇게 수입된 야생동물 가운데서는 법정 관리를 받지 않는 야생동물이 1만9670종에 달했습니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에 들어온 전체 야생동물 3만2880종 가운데 59.8%가 지금껏 관리 사각지대에 있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유입된 야생동물이 동물원이나 가정에서 사육되다 유기되거나 관리에서 벗어나는 일이 발생하는 일이 잦아진 것입니다. 지난해 6월 경북 영주에서는 하천에서 악어가 목격됐다는 신고가 접수돼 환경 당국이 사흘간 조사를 벌인 소동이 있었습니다. 한 달 뒤 이 악어는 결국 사이테스 II 급으로 분류되는 ‘사바나왕도마뱀’인 것으로 밝혀졌죠. 포획된 도마뱀은 누군가 키우다 유기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고요.
버려지는 외래 야생동물은 사바나왕도마뱀뿐이 아닙니다. 늑대거북, 미어캣, 라쿤, 앵무새, 댕기흰찌르레기 등 조류, 포유류, 양서·파충류 등 종을 가리지 않습니다. 낯선 환경에 버려진 외래 야생동물은 동물복지 문제를 겪을 뿐 아니라 우리 토종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칠 위험이 있습니다. 또 인수공통감염병 전파와 확산 문제도 간과할 수 없죠.
이 때문에 우리나라는 2022년 12월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야생생물법)을 일부 개정해 외래 야생생물을 지정·관리하는 ‘백색목록’ 제도를 도입하게 됩니다. 백색목록 제도는 사업자나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야생동물의 종을 정부가 정하도록 한 제도입니다. 백색목록 제도의 필요성을 주장해왔던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생태계 교란종 지정과 같이 일부 금지종을 정하는 ‘흑색목록’이 아니라 개인 소유가 허용되는 일부 종을 지정하는 ‘백색목록’을 도입하면 외래 야생생물 더 폭넓게 관리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벨기에, 네덜란드, 싱가포르 등 나라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고, 유럽연합(EU)은 연합 차원에서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로써 우리 정부도 2025년 12월까지 국가가 수입·판매·보유를 허용할 외래 야생동물 종을 정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지난 8월16일 환경부와 국립생물자원관이 ‘지정관리 야생동물 백색목록 구축 이해관계자 간담회’를 열었는데요, 이 자리에서는 국내에 반입이 가능한 동물을 평가하는 ‘평가표’가 공유됐습니다. 이날 공개된 평가표는 크게 두 가지 기준을 정하고 있습니다. 독성·공격성·질병 전파 가능성 등을 평가하는 ‘안전성’과 기후 적합성·번식력·교잡과 경쟁 영향 등 ‘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이었습니다.
간담회에는 정부 관계자뿐 아니라 업계 관계자, 동물원 수의사, 동물복지단체 활동가 등이 참가했는데요, 간담회가 진행되고 난 뒤 평가표에 가장 중요한 사항이 빠졌다는 지적이 제기됐습니다. 바로 국내 들어와 살게 될 야생동물의 ‘동물 복지’를 평가하는 항목이었습니다. 최태규 곰보금자리프로젝트 대표는 “이번 평가표는 오직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가와 생태교란 가능성 정도만 기준에 포함하고 있다”면서 “야생동물이 ‘인간의 환경에 적응해 살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빠져있다”고 말했습니다. 애초 관련법 개정 이후 평가 기준에 포함됐던 ‘동물복지와 사육난이도’가 쏙 빠졌다는 지적이었습니다.
백색목록을 정할 때 ‘동물복지’가 고려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형대 대표는 먼저 “가축화되지 않은 대부분의 야생동물이 일반 가정에서 생물학적·행동학적 필요를 충족하기란 매우 어렵다”고 입을 뗐습니다. 개, 고양이, 소, 돼지, 닭, 말 등 수천~수만 년 동안 인간의 환경에 적응해 진화한 가축과 야생동물은 다르다는 말이었습니다. 때문에 “수많은 동물이 (사육자가 의도하지 않더라도) 동물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고 합니다.
사육 시설 등의 기준을 정한다고 하더라도 동물원처럼 개방된 공간을 갖추기 어렵고, 관리·감독도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는 “기르는 사람도 보살핌에 어려움을 겪으면 사육 포기나 유기 충동을 느낄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백색목록의 도입 취지가 유기·질병 전파·생태계 교란 등을 사전에 예방하는 제도란 점을 잊어선 안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지적에 환경부 생물다양성 관계자는 “이번에 공개된 ‘백색목록 평가표’는 아직 초안”이라며 “다른 제도와의 연계를 통해 동물복지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라 전했습니다.
희귀한 야생동물을 정성껏 돌보는 그 마음은 분명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과연 자신의 서식지에서 포획돼 수천㎞나 떨어진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동물도 행복할까요. 백색목록은 짧고, 평가 기준은 촘촘해야 할 이유입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