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되지 않은 난자에서 발달한 악어 태아. 워런 부스·버지니아 공대 제공
수정되지 않은 난자에서 발달한 악어 태아. 워런 부스·버지니아 공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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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가 짝짓기 없이 알을 낳을 수 있다는 증거가 처음으로 발견됐다. 연구자들은 이번 발견이 악어류의 조상인 공룡도 이러한 단성생식을 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전했다.

영국 과학저널 <뉴사이언티스트>와 외신들은 6일(현지시각) 코스타리카의 동물원에서 16년간 홀로 살았던 암컷 미국악어가 수컷 없이 여러 개의 알을 낳았고, 이는 흔히 ‘처녀 생식’이라 불리는 단성생식으로 만들어졌다고 전했다. 수정되지 않은 난자에서 배아가 발달하는 단성생식은 그동안 뱀, 도마뱀, 새 등에게 보고됐지만 악어의 사례는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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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를 보면, 2018년 코스타리카 파충류 공원의 18살 암컷 미국악어가 14개의 알을 출산했다. 공원 직원들이 알을 발견하고 빛을 비추자 알 속에 태아가 생성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공원 과학팀은 이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춘 미국 버지니아 공대의 진화생물학자 워런 부스 교수에게 연락해 알을 배양해볼 것을 제안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부스 교수와 연구진은 알의 부화를 시도했으나 알을 깨고 나온 악어는 없었다. 그러나 알 중 6개에서 노른자가 생성된 것을 확인했고 1개의 알에서는 거의 부화 직전의 태아를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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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진은 사산된 태아의 심장과 어미의 피부에서 채취한 유전자를 비교 분석했는데, 태아의 유전자는 어미와 99.9% 동일했다. 이런 유사성은 앞서 단성생식이 밝혀진 동물들에서도 동일하게 관찰된 것으로, 악어의 태아도 단성생식으로 태어났다는 근거가 된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단성생식(Parthenogenesis)은 일반적으로 번식을 위해 수컷의 정자가 필요한 암컷 동물이 짝짓기 없이 번식하는 무성생식(Asexual reproduction)의 한 형태다. 파충류는 수컷의 정자를 수년간 저장했다가 수정시키기도 하는데 단성생식은 암컷이 자신의 세포 두 개를 융합해 배아를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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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추동물의 단성생식은 과거엔 희귀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디엔에이 분석기술이 발전하며 도마뱀, 뱀, 상어, 가오리 등 80여 종에게서 확인됐다. 무척추동물 중에서는 벌, 딱정벌레, 전갈, 물벼룩, 성게, 새우 등이 단성생식을 한다고 알려졌다.

그렇다면 암컷들이 단성생식을 하는 이유는 뭘까. 아직까지 명확한 사유가 밝혀진 것은 없다. 다만 짝짓기가 가능한 수컷이 있을 때도 이런 현상은 나타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멸종위기에 처한 캘리포니아콘도르는 짝짓기가 가능한 수컷이 있더라도 독립적인 번식을 택하는 모습이 관찰됐다.

단성생식은 현재까지 도마뱀, 뱀, 조류 그리고 악어에게서 관찰된다. 워런 부스·버지니아 공대 제공
단성생식은 현재까지 도마뱀, 뱀, 조류 그리고 악어에게서 관찰된다. 워런 부스·버지니아 공대 제공

부스 교수는 “단성생식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널리 퍼져있을 수 있다. 단순히 짝이 부족해서라거나 스트레스 상황일 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특정 호르몬에 의해 제어되는 유전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또한 연구진은 공룡과 익룡 또한 이런 능력을 지녔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했다. 이들은 “이번 발견은 2억6400만년 전 멸종한 악어와 조류의 조상인 공룡과 익룡의 생식 능력에 대한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한다. 공룡의 디엔에이를 분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확언할 수는 없지만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전했다. 연구는 생물학 학술지 <바이올로지 레터스>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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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논문: Biology Letters, DOI:10.1098/rsbl.2023.0129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