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전역에 분포하는 범고래는 돌고래 가운데 가장 큰 포식자로서 늑대처럼 협동 사냥을 한다. 범고래가 자신보다 곱절 이상 큰 수염고래 가운데 가장 큰 대왕고래를 사냥해 잡아먹는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존 토터델 오스트레일리아 서호주 고래연구센터 연구원 등은 과학저널 ‘해양 포유류 과학’ 최근호에 실린 논문을 통해 범고래가 대왕고래를 죽여 포식한 세 건의 사례를 보고했다. 목격은 호주 서남부 브레머 만 연안에서 2019년 3월과 4월 그리고 2021년 3월 이뤄졌다.
특히 세 번째 사례는 앞의 두 사례가 어린 고래와 새끼가 표적이었던 데 견줘 건강한 성체 대왕고래를 사냥해 잡아먹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비교적 몸집이 작은 서호주 아종이지만 길이가 18∼21m에 이르러 가장 커야 9m인 범고래보다 2배가 넘는 몸집이었다.
연구자들은 “지금까지 덩치 큰 수염고래의 새끼를 범고래가 잡아먹는 것은 알려졌지만 성체까지 사냥감이 되는지를 놓고 학계에서도 논란이 벌어져 왔다”고 논문에 적었다.
연구자들은 이동 중이던 이 대왕고래를 50마리의 범고래가 습격했는데 여러 마리로 이뤄진 여러 무리가 추격과 물어뜯기, 물 밑으로 끌어들여 익사시키기 등을 교대로 수행하는 전략을 폈다고 밝혔다. 교신저자인 로버트 피트먼 미국 오리건주립대 해양생태학자는 “가장 큰 최상위 포식자가 가장 큰 먹이를 죽이는 지구 최대 포식 현장이었다”고 ‘내셔널지오그래픽’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범고래는 수명이 긴 사회적 동물로 오랜 경험과 지혜를 갖춘 할머니를 중심으로 모계사회를 이룬다. 늑대처럼 무리를 지어 소리로 소통하면서 사냥전략을 펴는데 연어부터 백상아리와 향고래까지 대양의 거의 모든 대형 동물을 먹잇감으로 삼는다(▶백상아리와 범고래가 만나면 물범이 ‘웃는다’).
범고래는 고래 가운데 특히 귀신고래의 새끼를 자주 노리는데 어미가 곁에 있는 동안 사냥하기도 한다. 향고래 등 대형고래의 회유 경로와 생활사에 범고래의 포식이 영향을 끼친다는 주장도 나온다.
연구자들은 범고래의 대왕고래 사냥이 멸종위기로부터의 회복을 가로막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포경 이전 대왕고래가 많았을 때의 사냥습성이 되살아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지구에 지금까지 존재했던 동물 가운데 가장 큰 대왕고래는 1900년대부터 남획으로 멸종위기에 놓였지만 1960년대 이후 조금씩 개체수가 회복돼 2018년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세계에 5000∼1만5000마리가 사는 것으로 추산하고 멸종위기 등급으로 평가했다.
인용 논문: Marine Mammal Science, DOI: 10.1111/mms.12906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