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어리가 돌고래 등 포식자에 몰려 공처럼 뭉친 모습. 이런 상태에서 상어, 고래, 바닷새 등 다양한 포식자의 공격을 받는다. 게티이미지뱅크
정어리가 돌고래 등 포식자에 몰려 공처럼 뭉친 모습. 이런 상태에서 상어, 고래, 바닷새 등 다양한 포식자의 공격을 받는다. 게티이미지뱅크

아프리카 세렝게티 평원의 초식동물 누는 새로운 풀을 찾아 계절마다 대이동 한다. 그러나 무게로 따져 그에 맞먹는 규모의 물고기 대이동이 남아프리카에서 해마다 벌어지는 사실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지상 최대 물고기 떼’로 일컬어지는 정어리의 대이동은 해마다 6∼7개월 사이 남아프리카 끝 콰줄루-나탈 주 해안에서 벌어진다. 수천만∼수억 마리의 정어리가 길이 7㎞, 폭 1.5㎞, 두께 30m의 거대한 무리를 이룬 채 해안에 바짝 붙어 이동한다. 정어리 무리는 맨눈으로 보일 만큼 밀도가 높다.

포식자들이 이 기회를 놓칠 리 없다. 빠른 속도로 유영하는 긴부리참돌고래가 1만8000마리까지 모여 정어리 무리를 이리저리 몰기 시작한다. 위기를 느낀 정어리들은 보호 본능에 공처럼 뭉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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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름 10∼20m에 깊이가 10m에 이르는 고밀도 ‘정어리 공’은 포식자의 공격을 부르는 신호탄일 뿐이다. 바닷새와 상어, 돛새치 등 포식어, 고래 등이 몰려들어 잔치를 벌인다.

지난 6월 정어리떼가 몰리자 주민들이 해변에서 후릿그물로 정어리를 끌어낸 모습. ‘정어리 런 2021’ 페이스북 사진 갈무리.
지난 6월 정어리떼가 몰리자 주민들이 해변에서 후릿그물로 정어리를 끌어낸 모습. ‘정어리 런 2021’ 페이스북 사진 갈무리.

해안 주민들도 너도나도 나와 후릿그물로 정어리를 포획한다. 이보다 경제적으로 더 중요한 건 포식자의 정어리 공격 모습을 보려는 외국의 다이버들이다. 연례 ‘정어리 런(Sardine run)’은 국제적 관광 이벤트로 주민의 톡톡한 수입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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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의 정어리 대이동은 19세기 중반부터 알려졌다. 그러나 왜 정어리가 이런 행동을 하는지는 아직 논란거리다.

보통 동물은 번식이나 먹이를 찾기 위해 이동한다. 그러나 정어리의 산란장은 남아프리카 끄트머리에 있고 무엇보다 온대지방의 찬물에서 사는 물고기가 왜 살기 힘든 아열대의 인도양으로 가는지 수수께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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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과학자들은 여러 가설을 내놨다. 과거 환경이 달랐을 때 산란장으로 향하던 유산이라거나 서식지를 넓히려는 행동 또는 포식자에 쫓겨 밀려난다는 등의 설명이 나왔지만 딱 부러진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남아프리카 집단의 정어리 모습.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남아프리카 집단의 정어리 모습.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남아프리카의 정어리는 대이동을 하는 무리와 서식지에 머무는 두 집단으로 나뉜다. 어떤 정어리가 왜 이동하는지를 유전적으로 밝힌 연구결과가 나와 오랜 수수께끼를 풀 단서를 제공했다.

피터 테스케 남아공 요하네스버그대 교수 등 국제연구진은 16일 과학저널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실린 논문에서 “정어리의 대이동은 생태적 덫에 걸린 것”이란 주장을 폈다.

이제까지는 찬물을 좋아하는 대서양 집단은 그대로 머무르고 더운물을 좋아하는 인도양 집단이 해안을 따라 북상해 인도양으로 가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유전자 분석 결과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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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에 참여한 루치아노 베헤리거레이 오스트레일리아 플린더스대 교수는 “놀랍게도 대이동에 나서는 정어리는 (더운물을 좋아하는 집단이 아니라) 찬물을 좋아하는 대서양 집단이었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찬물을 좋아하는 대서양 집단의 정어리(파란색)는 일시적으로 찬물이 솟는 용승류 해역(가운데 둥근 부분)에 이끌렸다 용승류가 사라진 뒤 어쩔 수 없이 해안을 따라 인도양 쪽으로 북상한다(파란 화살표). 피터 테스케 외 (2021)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제공.
찬물을 좋아하는 대서양 집단의 정어리(파란색)는 일시적으로 찬물이 솟는 용승류 해역(가운데 둥근 부분)에 이끌렸다 용승류가 사라진 뒤 어쩔 수 없이 해안을 따라 인도양 쪽으로 북상한다(파란 화살표). 피터 테스케 외 (2021)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제공.

대서양 집단이 인도양 쪽인 남아프리카의 동쪽으로 방향을 트는 이유로 연구자들은 찬 용승류를 들었다. 해마다 겨울이면 차고 영양분이 풍부한 바닷물이 먼바다에서 대륙붕으로 밀려와 솟아오르는 해역이 형성되는데 대서양 집단은 여기에 이끌린다.

문제는 이 용승류가 일시적이라는 사실이다. 테스케 교수는 “일시적인 용승류의 찬물이 서쪽 해안의 정어리를 끌어들이지만 이들은 따뜻한 인도양 서식지에는 적응돼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해안 바깥에는 강한 난류인 아굴라스 해류가 남쪽으로 흐른다. 정어리 무리는 난류를 피해 해안을 따라 역방향으로 흐르는 찬 조류를 타고 인도양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생태적 덫에 걸린 셈이다.

좁은 해안에 갇혀 이동하는 정어리들은 열 스트레스와 먹이 부족으로 체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포식자들의 집중 공격을 받는다고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밝혔다. 그렇다면 왜 정어리들은 번식이나 먹이와도 무관한 고난의 행군을 계속하는 걸까.

테스케 교수는 “정어리의 대이동은 아마도 빙하기 때 번식지를 찾아가던 유산일 수 있다. 지금은 아열대이지만 인도양 서식지가 당시에는 찬물이 풍부한 중요한 양육장이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대이동을 하는 정어리가 찬물을 좋아하는 집단이란 이번 연구결과는 기후변화에 따라 이 지역의 주요 관광자원인 정어리 대이동이 머지않아 중단될 수 있음을 가리킨다. 연구자들은 “바닷물이 더워지면 수십 년 안에 대이동은 멈출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용 논문: Science Advances, DOI: 10.1126/sciadv.abf4514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