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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못하는 작은 가족 반려동물, 어떻게 하면 잘 보살필 수 있을까요.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국내 여러 동물병원에서 멍냥이를 만나온 권혁호 수의사에게 반려동물의 건강, 생활, 영양에 대해 묻습니다. 매주 화요일 오후 2시 권혁호 수의사의 반려랩과 댕기자의 애피랩이 번갈아 연재됩니다. 궁금한 점은 언제든 animalpeople@hani.co.kr로 보내주세요!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연재 구독하기)
Q. 얼마 전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돌체앤가바나’에서 반려견용 향수를 출시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개는 후각이 뛰어난 동물인데 악영향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A. 돌체앤가바나는 연인 관계였던 두 명의 남성 디자이너 도메니코 돌체와 스테파노 가바나가 만든 브랜드입니다. 이들은 반려동물에 대한 끔찍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요, 이번에 출시한 향수 또한 도메니코 돌체의 반려견 중 한 마리인 ‘페페’(Fefé)의 이름을 따 만들어졌습니다.
제품 설명을 보면, 페페는 알코올 성분이나 알레르기 유발 물질이 없으며 동남아시아에 서식하는 열대나무 ‘일랑일랑’의 꽃 향을 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전에도 반려견용 향수나 미스트 제품이 나온 적이 있지만 이른바 명품 브랜드에서 출시되는 것은 처음이다 보니 아무래도 국내외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과연 개들에게 반려견용 향수를 뿌려도 괜찮은 걸까요. 반려견 향수는 반려견을 위한 걸까요, 아니면 사람을 위한 걸까요. 일단 개들의 후각이 어떻게 작용하고, 얼마나 중요한지부터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개들은 코로 세상을 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감각의 많은 부분을 후각에 의존합니다. 사람보다 1만~10만배 정도 후각이 뛰어나고, 후각 정보를 분석하는 뇌 기관(후각 망울)이 사람보다 30배나 큽니다. 비강 내에 있는 ‘후각 함요’라는 독특한 기관을 통해 1초에 최대 5번까지 냄새를 들이마시면서 정보를 파악하기도 합니다.
과거 야생에 살던 개들은 냄새 맡는 능력이 생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어요. 먹이·짝짓기 상대를 찾거나 포식자의 위협을 감지하는 데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개들은 곰이나 스라소니, 표범과 같은 포식자를 냄새로 감지하는데, 실제로 포식자를 맞닥뜨리기 전에 미리 행동에 변화를 줬다고 합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태아 상태의 강아지도 어미를 통해 후각 정보를 접할 수 있다고 하니, 후각이 얼마나 개들에게 중요한 감각인지 짐작할 수 있겠죠.
개들의 후각인지 행동은 크게 ‘냄새 맡기’(Smelling)와 ‘킁킁대기’(Sniffing) 2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두 행동의 차이는 얼마나 의도적으로 냄새를 맡는가에 있습니다. ‘냄새 맡기’는 크게 힘들이지 않고 숨을 쉬면서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레 냄새를 맡는 행동을 말하고, ‘킁킁대기’는 의식적으로 냄새를 맡는 행동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개들은 서로의 체취로 의사소통하잖아요. 예컨대 개들끼리 서로 만나는 자리에서 개들은 ‘냄새 맡기’로 서로의 기본 정보를 파악하고, 이후 상대에게 더 관심이 간다면 그때 ‘킁킁대기’를 통해 더 적극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게 됩니다. 흥미롭게도 각각의 행동에 따라 모아진 냄새 입자는 뇌의 각기 다른 부분에서 정보를 분석한다고 합니다. 생각보다 꽤 체계적이지요.
두 개의 콧구멍을 각각 다르게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도 후각의 예민함을 알 수 있는 점입니다. 개들은 처음 접하는 자극이나 위협이 느껴지는 냄새는 오른쪽 콧구멍을, 친근하고 맛있는 먹이 냄새를 맡을 때는 왼쪽 콧구멍을 먼저 사용합니다. 이를 ‘대뇌 자극분화’라고 하는데, 오른쪽 콧구멍과 연결된 우뇌는 새로운 정보를 분석하는 한편 왼쪽 콧구멍과 연결된 좌뇌는 친숙한 자극에 대한 행동 반응을 담당하기 때문입니다. 마약 탐지견이나 폭탄 탐지견들도 이러한 자극분화를 원리로 한 냄새 훈련을 받는다고 합니다.
반려견의 뛰어난 후각은 과거에서부터 현대까지 인간에게도 여러 도움을 주고 있죠. 사냥감을 찾거나 잃어버린 사람을 추적하는 일 이외에도 코로나19나 암, 당뇨병 등의 질환을 냄새로 감지해낸다거나 사람이 물리면 치명적인 뱀이나 농가에 피해를 주는 곤충을 찾아내기도 합니다. 호주에서는 키위새나 카카포 등 멸종동물의 흔적을 조사하고, 북미 지역에서는 회색곰의 개체 수 파악하는 작업에도 동원됩니다.
이렇듯 개들은 수천~수만 년 전부터 뛰어난 후각을 이용해 생존해왔습니다. 개들의 놀라운 후각 능력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으며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그런데 이런 ‘개코’에 화학적인 향수나 미스트의 향은 어떻게 느껴질까요?
물론 개들도 냄새에 대한 취향은 모두 다릅니다. 특정 제품을 좋아할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습니다. 다만 원치 않는 향을 몸에 묻히게 된다면 정서적으로 산만한 행동을 보이거나 알레르기 반응, 염증 등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집에서 반려견용 샴푸로 목욕하고 나서 집안 바닥이나 잔디밭에 뒹굴면서 냄새를 지우려고 노력하는 개들의 행동을 보신 적이 있을 거예요. 또 강한 냄새로 인해 구역감을 느끼며 밥 먹는 것을 거부하는 개들도 있습니다. 부향제(화장품, 비누 등에 향기를 돋구기 위한 인공 합성 향료) 농도가 높은 이런 제품들은 피부 발적이나 세균형 피부염을 부르기도 하고요. 천연성분이라 하더라도 티트리오일 등은 개들이 섭취하면 독성을 유발하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반려견 향 제품은 대부분 인간의 입장에서 향기롭게 느껴지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개들이 어떤 향을 좋아하는지, 어떤 향이 해가 되는지 등에 대한 상세한 연구는 아직 많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좋아하는 향 가운데서는 블루베리, 블랙베리, 민트, 라벤더, 장미향 등을 개들도 좋아한다는 일부 연구는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모든 향 제품이 안전하다고는 말하기 어려운 것이죠.
설령 향 제품이 무해한 성분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인공적인 향이 개들의 후각을 마비시킴으로써 개들이 수집할 수 있는 많은 정보를 차단할 우려가 있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인지하는데 시각에 크게 의존하듯 개한테는 후각이 그러합니다. 우리가 한쪽 눈을 감고 생활한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몹시 답답하고 불편하지 않을까요. 우리 멍멍이들의 꼬순내, 있는 그대로가 더욱 사랑스럽습니다.
권혁호 수의사 hyeokhoeq@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