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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수사’ 박사에서 ‘부패추방’ 시장으로

등록 :2009-01-08 18:46

검찰 공무원으로 20여년 동안 근무한 박주원 안산시장은 24시간 민원서비스 등 새로운 아이디어를 선보이는 한편 외국인 노동자가 많은 안산시 상황에 맞는 다문화 시대 행정 서비스를 추진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A href="mailto:xogud555@hani.co.kr">xogud555@hani.co.kr</A>
검찰 공무원으로 20여년 동안 근무한 박주원 안산시장은 24시간 민원서비스 등 새로운 아이디어를 선보이는 한편 외국인 노동자가 많은 안산시 상황에 맞는 다문화 시대 행정 서비스를 추진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뉴스 쏙] 한겨레가 만난 사람 ‘검찰공무원 20년 이력’ 박주원 안산시장
‘정책은 실패해도 뇌물은 용서못해’ 시정목표
청렴도 전국 꼴찌서 1년만에 상위권 수직상승

외국인 노동자 인권조례·24시간 민원 서비스 등
지방행정 ‘최초’ 앞장…지난해 40여개 상 휩쓸어

행정가가 활달한 오케스트라 지휘자라면, 법률가는 꼼꼼한 연주자다. 행정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일이지만 법률가에게는 창조보다 법대로가 중요하다. 그래서일까. 법률가 출신 지방자치단체장은 드물다.

박주원(51) 경기 안산시장. 그는 ‘법대로’를 외치던 검찰 출신 자치단체장이다. 판검사나 변호사 출신이 아니라 20여년 검찰 공무원으로 근무한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박 시장은 자치단체장으로는 드문 경력만큼이나 독특한 시 행정으로 화제를 몰고 다니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24시간 민원 업무를 보도록 했고, 안산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밀집한 만큼 전국 최초로 외국인 노동자 인권조례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 밖에 다양한 아이디어로 지난해 청와대가 주는 섬김이대상, 총리실이 주는 투명사회상 등 40여개의 상을 받았다. 안산시 공무원들이 지방자치단체장 관련 상이 그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다고 할 정도다.

그가 검찰 공무원 20년 동안 특히 오래 담당했던 분야는 범죄정보 수집.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대검찰청 범죄정보과에서만 10년 넘게 근무했다. 이때 경험을 토대로 국내 최초로 범죄정보로 법학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당시 그가 가장 신경썼던 정보가 바로 지방자치단체들의 비리 정보였다. ‘미친 듯이’ 비리 단체장을 잡으려 했던 그가 어떻게 ‘미친 듯이’ 서비스하려는 시장으로 변신한 것일까? 그는 평생 몸담았던 검찰에서의 범죄 수사 경험이 바로 행정 아이디어의 원천이라고 말한다.

-시청이 24시간 행정 서비스를 한다니 시청사가 편의점처럼 된 것 같습니다. 시민 편의는 분명 높아졌을 것 같은데, 반응은 어떻습니까?

“지난해 5월 전국에서 처음으로 ‘25시 민원감동센터’를 만들었습니다. 밤이고 새벽이고 민원서류를 발급받을 수 있게 하자는 취지입니다. 지금은 다른 지방에서도 인감증명서를 떼고 여권을 발급받으려고 케이티엑스를 타고 안산으로 찾아옵니다.”


-밤근무에 대해 시 직원들의 반발은 없었나요?

“반발이 많았죠. ‘민원인도 없는데 전기 낭비다’ ‘공무원이 편해야 서비스가 향상된다’ 같은 반박 논리가 많았습니다. 나중에 접더라도 일단 해보자고 설득했습니다. 제 자신이 공무원 시절에 대학원을 다녔습니다. 그래서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밤근무를 하면 낮에 시간이 날 수 있잖습니까. 그래서 자기계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끌어들였습니다. 당연히 자원자가 나왔고, 덕분에 순조롭게 출발했습니다. 지금은 서로 하려고 합니다.”

-민원인들이 많이 이용합니까?

“열 달 동안 4만8천명이 이용했습니다. 이 가운데 18%가 외지인입니다. 인감증명과 여권 발급이 가장 많습니다. 특히 여권 때문에 지방에서 많이 올라옵니다. 안산 25시 센터에서 여권을 발급한 사람이 1만명에 달합니다.”

 ‘검찰공무원 20년 이력’ 박주원 안산시장
‘검찰공무원 20년 이력’ 박주원 안산시장
박 시장은 이어 안산시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24시간 송금센터를 기업은행과 함께 만들었다. 지난 9월부터는 월요일마다 안산시 25개 동 주민자치센터 가운데 한 곳으로 출근해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듣는 ‘풀뿌리 현장 회의제’를 도입했다.

-24시간 송금센터도 독특하네요.

“외국인 노동자들은 낮에는 근무 때문에 송금을 못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낮에 나오려면 눈치가 보이는데 외국인 노동자들이 어떻게 낮에 잠깐 나갔다 오겠습니까. 밤이나 주말에 송금을 할 수 있게 해야죠. 그래서 만든 겁니다.”

-공무원도 아닌 은행원들에게 24시간 근무를 도입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은행들한테 24시간 업무가 가능하냐고 공문을 보냈더니 대부분 안 된다고 했어요. 기업은행만 하겠다고 했죠. 그런데 지난해에만 이 24시간 송금센터를 통한 송금액이 5000만달러예요. 송금수수료 수입이 괜찮았을 겁니다. 외국인 노동자, 은행, 안산시 모두 ‘윈-윈’ 한 거죠.”

-매주 월요일에 동네 동사무소를 방문하는 것은 왜 시작한 건가요?

“주민들 민원을 현장에서 들으려고요. 민원이 주민자치센터를 통해 시청에 접수돼 해결하려면 적어도 1년 걸려요. 제가 가서 들어보고 바로 타당한 요구인지 예산은 있는지 점검하면 한나절이면 해결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실제 가보니 경로당, 공부방 설립 같은 게 많았는데 대부분 현장에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24시 서비스가 ‘인기주의’ 행정이라는 비판은 없었나요?

“저는 행정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초석을 놓고 싶습니다. 왜 공무원들만 9시 출근하고 6시 퇴근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집합니까. 이거 꼭 써주세요. 민원인들이 원하는데 왜 공무원이 서비스를 안 합니까. 두고 보십시오. 다른 지자체도 24시간 서비스를 안 하고는 못 배길 겁니다.”

이 정도면 행정가 출신들도 한수 접을 만한 아이디어맨이라고 할 법하다. 아이디어의 원천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검찰 근무 경험이 아이디어를 얻는 데 도움이 많이 되나요?

“많이 됩니다. 특수수사를 하면 사건 기록이 정말 방대합니다.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서 그 많은 자료를 달달 외워야 해요. 그런데 공무원들을 수사한 기록은 일종의 행정학 실패 사례집이었어요. 잘나가던 공무원들이 왜 실패했는지 공무원 수사를 하면서 알 수 있었죠. ‘나라면 뇌물을 주고받기보다는 이렇게 했을 텐데…’라는 생각을 많이 했죠. 그러다가 고려대에 지방자치법학회가 처음 생겼어요. 거기서 공부하면서 지방자치 행정에 관심을 갖게 됐고, 지방단체장에 한번 도전해보자는 도전의식이 생겼습니다. 검찰에서 일했던 것이 도움이 된 거죠.”

난다 긴다 하는 인물들이 많다는 검찰에서 검사도 아닌 검찰 직원이었던 박 시장이 민선 시장이 되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는 것이 관건이었는데 그는 판사 출신 변호사, 전직 시장 등 쟁쟁한 인물들과 경쟁해야 했다. 공천 경쟁은 경기도당에서도 결정을 못 내릴 정도로 치열했다. 결국 중앙당까지 올라간 심사에서 최종적으로 공천이 결정됐다. 당시 안산시의 상황은 말이 아니었다. 시장 2명이 연속으로 뇌물로 구속기소돼 안산시청은 불명예 자치단체로 손꼽히고 있었다.

-지난해 받은 상 가운데 어떤 상이 가장 기억에 남던가요?

“총리실에서 준 한국투명사회상입니다. 안산시는 공무원 청렴도가 2007년 전국 234개 지자체 중에서 꼴찌였어요. 2008년에는 전국 31위로 상위권에 올라왔습니다. 상승률 전국 1위였고, 경기도에서는 광명시에 이어 2등을 했습니다.”

-청렴도를 끌어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세요?

“시 공무원들에게 ‘정책은 실패해도 용서하지만 뇌물은 용서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투명실천협약을 만들었고 시민단체와 함께 이를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재임기간 청렴도 전국 1등을 하는 게 제 바람입니다.”

뇌물이 어떤 인허가 과정에서 오가는지 잘 아는 검찰 출신 시장이 온 것도 시청 분위기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렇다고 박 시장이 모든 것을 검찰에서 익힌 가치관대로만 밀어붙이는 것은 아니다.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대해서는 무조건 ‘법대로’ 해서는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본다.

-외국인 노동자 인권조례 제정을 전국 최초로 추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시에서 제안해 현재 시의회에서 논의 중입니다. 외국인 노동자도 안산시민과 같은 대우를 해주자, 그들과 우리는 같은 인간이고 하나다, 이런 취지에서 도입한 것입니다. 이들이 우리와 똑같이 헌법에서 보장한 행복추구권과 인권이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조례 제정에 반대는 없었습니까?

“반월·시화공단에는 외국인들이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반발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을 모르는 답답한 소리죠. 그들이 없으면 공단의 8천개 공장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정책 개선으로 조금씩 사정이 나아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지난해 5월 우리 시가 타이인들 최대 축제인 쏭끄를 후원했습니다. 그랬더니 전국의 타이인 1만명가량이 안산시로 몰려왔습니다. 앞으로도 이 축제가 안산시의 명물이 될 것 같습니다. 돈만 들이는 웬만한 지자체 축제보다 훨씬 실속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축제 같은 외국 문화를 적극 후원하려고 합니다.”

-중앙정부는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나요?

“전혀 아닙니다. 안산시 외국인 노동자는 7만명으로 웬만한 군 인구보다 많습니다. 그런데 이들을 담당할 공무원 수는 제로입니다. 공무원 채용을 늘릴 법적 근거가 없어섭니다. 인구가 3만명인 군청에도 1천명 정도의 공무원이 일합니다. 그러니 시청이나 경찰이 이들에게 제대로 서비스를 할 수 있겠습니까? 이들이 한국인과 결혼해서 낳은 코시안 문제를 언제까지 눈 가리고 있을 겁니까? 10년만 지나보십시오. 이태 전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났던 아랍인들의 폭동이 남의 일이 아닙니다. 정말 답답합니다.”

아이디어가 넘치는 사람은 규제로 가득한 현실과 부딪히기 마련이다. 행정가의 운명이다. 안산시 현안 가운데 그가 가장 해결하고 싶은 문제는 뭔지 물었다. 대답은 명쾌했다. “부패 없는 안산시청을 만들어 공무원 청렴도 전국 1위를 하고 싶습니다.” 역시 수사관 출신다웠다.

권은중 기자 detail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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