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틀 동안 300㎜ 넘는 비가 쏟아진 중부지방에 5일까지 또다시 500㎜ 이상의 집중호우가 내릴 것으로 예보돼 추가 피해가 우려된다. 기상청은 제4호 태풍 ‘하구핏’의 후폭풍으로 많은 비가 서울·경기와 강원 영서지방에 집중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에 각각 141명과 86명의 인명피해를 낳은 ‘기후변화발 슈퍼장마’가 이번에는 우리나라를 맹습하고 있다.

기상청은 3일 “중부지방에 호우특보가 발효된 가운데 4일까지 서울·경기와 강원 영서를 중심으로 돌풍과 천둥·번개를 동반한 시간당 50~100㎜(일부 지역 120㎜ 이상)의 매우 강한 비가 오는 곳이 있겠다”고 밝혔다. 1일 오후 6시부터 3일 오후 4시까지 300㎜ 안팎 비가 온 곳은 일죽(안성) 376.0㎜, 양지(철원) 287.5㎜, 영춘(단양) 310.0㎜ 등 경기와 강원 영서, 충북에 집중됐다. 기상청은 5일까지 서울·경기와 강원 영서, 충청 북부지방에 많게는 500㎜ 이상의 비가 더 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 강원 영동, 충청 남부, 경북 북부에는 50~150㎜의 비가 올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동아시아 장마철 큰비의 원인은 같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현수 기상청 기후예측과장은 “기후변화로 인한 북극지방의 이상고온 현상이 올해 동아시아 여름철의 이상기후를 일으킨 단초”라는 진단을 내놓았다. 평년 기온의 2배가 넘는 이상고온 현상이 북극지방에서 발생해 그 여파로 상층 제트기류 흐름이 약해지면서 북극 한기가 중위도 지역까지 남하할 조건이 갖춰졌다. 여기에 우랄산맥과 중국 북동부에 2개의 블로킹(키 큰 고기압)이 만들어져 중위도에 찬 공기가 계속 공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수도권 일대 집중호우로 한강 수위가 높아진 3일 오후 서울 반포대교 아래 잠수교가 물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수도권 일대 집중호우로 한강 수위가 높아진 3일 오후 서울 반포대교 아래 잠수교가 물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여느 때라면 북태평양고기압이 강하게 발달해 북쪽으로 확장돼야 하는데, 찬 공기에 막혀 그 사이에 형성된 수천㎞의 정체전선도 북상하지 못하고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동아시아 곳곳에 집중호우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중국은 5월29일부터 남부에서 시작돼 중부와 북부까지 걸쳐 두달여 동안 폭우가 집중되면서 장시성, 안후이성, 구이저우성, 후베이성 등 중남부 일대가 물바다로 변하고 141명이 숨지거나 실종했다. 일본의 경우 7월초 규슈지방에 한달치 강수량이 하루에 내리는 등 집중호우가 1~2주 동안 계속돼 82명이 숨지고 4명이 실종하는 피해가 발생했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동아시아 지역의 기압계 변화는 슈퍼장마의 필요조건이지만, 특정 시기와 지역에 집중호우를 내리는 현상을 충분히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김해동 계명대 지구환경학과 교수는 “올해 기록적인 호우 현상은 정체전선만으로는 해석이 안 되는 측면이 있다”며 “‘대기의 강’(대기 상층에서 일어나는 가늘고 긴 강한 수증기 수송 현상) 같은 수증기 공급원이 정체전선에 얹히면 1998년 지리산에서 생긴 것처럼 기습 폭우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장은철 공주대 대기과학과 교수는 “최근 발생하는 동아시아 3국의 강수 현상은 북태평양고기압의 가장자리를 따라 발생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며 “같은 정체전선상이라도 중국은 열적으로 따뜻한 바닥에서 발달한 적운 계통의 강수인 반면 우리나라는 저기압 경계면이 전선에 합류하면서 발달한 강수인 것처럼 한·중·일 모두 엄밀하게 따지면 강수 원리가 다 다르다”고 말했다. 기후변화로 최근 강해지는 경향을 보인 북태평양고기압의 세력이 올해 약해진 것은 아니다. 북쪽 한기에 눌려 북태평양고기압이 중국 남부까지 길게 확장된 덕에 제4호 태풍 ‘하구핏’이 고기압 가장자리를 따라 중국 내륙으로 4일 새벽 상륙하면 우리나라는 영향권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북태평양고기압이 이맘 때면 중국 내륙과 한반도를 덮었어야 하는데, 남쪽으로 치우쳐 태풍이 남긴 수증기가 정체전선을 고속도로 삼아 5일 우리나라로 유입될 상황에 놓였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