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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삼성 간부 공소장 보니… ‘노조파괴 종합보고서’ 방불

등록 :2018-06-22 05:01수정 :2018-06-22 16:24

공소장으로 본 삼성 노조파괴 사건
‘기획폐업·노조탈퇴 종용·단체교섭 해태’ 순차 진행
폐업한 협력업체 대표에 1억3000여만원 ‘위로금’도
‘결혼 후 불임으로 퇴직’ 등 807명 조합원 정보수집
삼성이 ‘무노조 경영’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 계획·실행한 노조파괴 공작이 상세히 공개됐다. 21일 <한겨레>가 확보한 삼성전자서비스 최아무개(구속기소) 전무의 공소장은 삼성 노조파괴 공작의 ‘종합보고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 전무는 ‘노조와해’를 총괄하기 위해 만들어진 삼성전자서비스 내 종합상황실장으로서 삼성전자 직원들과 공모해 ‘정신과 치료’ 등 노조원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기획폐업, 단체교섭 지연 등의 전략을 짠 혐의로 지난 1일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종합점검표’를 만들어 담당자까지 기재하며 실행 여부를 치밀하게 챙겼다.

■ 본사 직원, 협력업체에 파견돼 탈퇴 직접 압력

최 전무의 공소장 내용을 종합하면, 삼성전자서비스 내 종합상황실이 꾸려진 건 노조설립 움직임이 본격화한 2013년 6월이다. 주로 삼성전자서비스 인사팀 직원들이 종합상황실에 배치됐으며, 삼성전자 소속으로 파견된 직원들은 종합상황실 내 신속대응팀(QR팀)에 소속돼 사실상 ‘두뇌(브레인)’ 구실을 했다. 노조활동 전반에 대한 단계별 대응지침이 담긴 ‘마스터플랜’을 작성한 곳도 바로 여기였다. 그 뒤 종합상황실은 이 전략에 따라 노조와해를 위해 △기획폐업 △조합원 노조 탈퇴 종용 △불이익 △단체교섭 해태 등을 차례로 실행했다.

기획폐업의 첫 대상이 된 곳은 삼성전자서비스의 ‘부산 동래 외근 협력업체’였다. 초대 노조위원장이었던 위영일씨 등이 노조설립 움직임을 보이자 폐업을 기획했다. 삼성전자서비스는 노조설립 움직임을 보이는 위씨 등 2명을 ‘주동자’로 간주하고, 이들을 제외한 외근 협력업체 소속 수리기사들을 분산 채용하도록 지시했다. 동래 외근 협력업체는 결국 2013년 6월 곧바로 문을 닫았지만, 오히려 같은 해 7월 노조의 창립총회 뒤 노조가입률이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그러자 삼성은 2014년 6월 성수기 이전에 노조의 투쟁 동력을 떨어뜨리기 위해 ‘고용승계 없는 폐업’이라는 소문을 유포하는가 하면, 노조가입률이 높은 협력업체를 목표로 삼아 남부지역→ 중부지역→ 경인지역 순차적 폐업을 진행했다. 이를 통해 ‘노조활동은 곧 실직’이라는 불안감을 고조시켰다.

이 과정에도 탈퇴 압박은 전방위적으로 이뤄졌다. 춘천 협력업체를 담당한 삼성전자서비스 직원이 협력사로 직접 출근하면서 노조원 밀착관리를 하고, 조합원들에 대한 노조 탈퇴를 종용한 것이 대표적이다. 검찰은 박상범 당시 삼성전자서비스 대표이사와 최 전무 등이 2013년 6월~2016년 11월까지 총 14차례에 걸쳐 노동조합 조직 운영에 불법개입했다고 봤다.

반면 노조를 탈퇴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았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양천분회 분회장인 김아무개씨는 프린터 전담기사에서 ‘IT 전담기사’로 부당 전보됐고, 영등포분회 조합원 일부는 아예 전산 스케줄이 차단돼 수리 업무를 받지 못했다. 단체교섭 지연도 일상이었다. 검찰은 2013년 7월~9월까지 총 11차례에 걸쳐 단체교섭을 해태한 혐의도 적용했다.

■ 기획폐업 뒤 회삿돈으로 협력업체 사장에게 ‘억대 위로금’

특히 ‘기획폐업’에는 돈이 빠지지 않았다. 잘 운영되고 있던 협력업체 대표에게 폐업을 설득하며 위로금을 제시했고, ‘삼성전자서비스’가 관여돼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말라고 입을 막았다. 삼성전자서비스 쪽은 부산 동래 외근 협력업체 대표이사 함아무개씨를 만나 ‘노조설립 움직임을 보이는 협력업체를 폐업해 달라. 대신 폐업해 대한 대가를 챙겨주겠다. 그리고 삼성전자서비스가 폐업에 관여했다는 얘기를 외부에 하지 말라’고 청탁한 뒤, 2013년 11월부터 2014년 5월까지 총 7차례에 걸쳐 7700여만원을 건넸다. 노조가입률이 100%에 이르렀던 해운대 협력업체 대표 유아무개씨는 ‘자문료’ 명목으로 1억2900여만원을 받았다. 검찰이 최 전무에 대해 업무상 횡령 및 배임증재 혐의를 적용한 것도 이 때문이다.

노조탄압에 항의해 조합원 염아무개씨가 숨지자 ‘노동조합장례’를 막기 위해 유족에게 6억원대의 합의금을 건네기도 했다. 염씨는 2014년 5월17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고, 유서에는 “저 하나로 인해 지회의 승리를 기원합니다. 주검을 찾게 되면 우리 지회가 승리할 때까지 안치해주십시오”라는 내용의 유서를 노조에 남겼다. 부모님에게는 “부탁이 있다. 지회에 좋은 결과가 나오면 그때 장례를 치러달라”고 했다.

최 전무는 염씨가 숨진 당일 직접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염씨의 아버지를 만나 ‘돈으로 해결하시죠’라며 합의를 재촉했고, ‘위로금으로 6억원을 지급하고, 이 중 3억원은 가족장을 치르면 지급한다’고 구체적인 합의를 받아냈다. 나머지 8000만원은 아버지 염아무개씨의 형과 합의를 알선한 브로커 등에게 지급됐다고 한다. 그 뒤 삼성전자서비스의 관여 사실을 숨기고 염씨가 소속된 협력업체 자금으로 합의금을 준 것처럼 보이려고 양산 협력센터와 ‘상생협력’ 측면에서 6억원을 지급한다는 허위 내용의 문건도 만들었다. 최 전무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횡령 혐의도 받고 있다.

■ 불법수집한 개인정보엔 ‘결혼 후 불임으로 노조 탈퇴’ 등 내용

노조원들의 개인정보도 불법 수집되기 일쑤였다. ‘개인정보 처리자’인 협력업체 대표들로부터 조합원 현황, 가입동기, 노조 몰입도 등 노조원 정보뿐 아니라 가족관계, 성향, 경제적 상황, 비리 등의 개인정보를 수집했다. 가령 울산 협력업체 대표는 소속 노조원과 관련해 '노조에 가입돼 있으나 결혼 후 불임이 지속돼 요양을 위해 퇴직함으로써 이 사건 노조에 탈퇴했다‘는 내용 등을 보고했다. 염호석씨와 관련해선 2013년 12월 ‘최근 서초집회 상경을 위해 사원들을 선동. 금속노조 집회 시 주도적인 역할’ 등의 내용이 기재돼 있다. 이 외에도 ‘본가 농사일(과실수)을 돕기 위해 여름철 바쁨‘ ’남편과 별거해 이혼 준비 중, 돈에 집착함‘ ’협력사 사장과 팀장이 ‘회식 중 습득한 동료의 이어폰 판매를 시도’한 비리까지 언급하며 (노조탈퇴) 압박‘ 등의 노조원 정보가 포함돼 있었다. 이렇게 노조 활동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민감한 정보가 수집된 노조원은 무려 807명이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