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승을 부리던 한파가 꺾인 17일 서울 서대문 영천시장 입구의 과일가게에는 차례상에 올릴 만한 굵직한 사과 5개를 만원에 팔고 있었다. 배는 크기에 따라 개당 2500~3000원 했다. 예년과 비교해 크게 다르지 않은 가격이다. 주인은 아직 설 선물세트가 본격적으로 들어오지 않았지만 이번 설에도 지난해처럼 3만원이면 선물용 사과 한상자(5㎏, 12~15개)를 살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러나 맞은편 야채가게 가격표는 지난해와 달랐다. 월동 무가 크기에 따라 2500~3000원으로 지난해보다 갑절 이상 올랐다. 해남산이라고 적힌 배추도 한 포기에 4000원으로 초겨울 올라간 가격이 내려가지 않았다. 시장 내에 위치한 슈퍼마켓에서 파는 달걀은 30개 한 판 특란이 1만3000원, 대란이 1만2000원이었다.

설을 앞두고 한국소비자원,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한국물가협회 등에서 조사한 설 상차림 비용은 지난해에 견줘 5~8%가량 올랐다. 특히 전통시장의 물가가 많이 뛰었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10일 전국 19개 지역 45개 전통시장을 대상으로 차례상을 차리는 데 필요한 28개 성수품 가격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지난해 23만5000원에서 올해 25만4000원으로 8% 인상됐다. 반면 대형마트의 경우 33만8000원에서 34만1000원으로 상승 폭이 크지 않았다. 이는 가격 변동이 심한 신선식품은 재래시장의 수급 불안정이 심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국소비자원이 명절에 많이 쓰는 식재료 25개 품목 가격을 조사한 비용은 전통시장이 19만3504원, 대형마트가 21만3323원으로 여기서도 전통시장이 대형마트보다 저렴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값이 뛴 것은 무와 배추다. 무는 전통시장과 대형마트에서 모두 갑절 이상 뛰었고 배추도 50% 이상 뛰었다. 가을 태풍 등으로 작황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무나 배추 같은 신선식품은 단가가 상대적으로 낮아 설 상차림 전체 비용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승 폭이 큰 계란은 재래시장과 대형마트 가격 차이가 현저하다. 대형마트 쪽이 30개 한 판을 8000원대에 파는 반면 재래시장에서는 1만~1만3000원에 팔고 있었다. 계란값은 20일을 전후해 수입 계란이 들어오면 진정세를 보일 것이라는 게 정부 쪽 전망이다.

쇠고기값도 부담이다. 국거리로 쓰는 양지 부위(600g)가 전통시장에서는 2만3062원에서 2만5853원으로 12%나 올랐다. 대형마트는 인상률이 5%에 불과하지만 전통시장보다 만원 이상 비싸다. 한국소비자원은 쇠고기와 버섯, 마늘, 풋고추 등은 전통시장이 싸고 배추, 시금치, 돼지고기 등은 대형마트가 저렴하다고 안내했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쇠고기, 배, 도라지, 구이용 조기 등을 전통시장에서 사면 5만원 넘게 절약이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쌀, 배추, 무, 계란은 대형마트가 더 싸다.

밀가루와 부침가루 등 가공식품은 지난해보다 가격이 떨어졌다. 그러나 식용유, 참기름, 간장 등 조미료는 소비자원 조사 결과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가격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설 성수품 수급 안정을 위해 26일까지 10대 품목을 중심으로 공급물량을 1.4배 확대한다는 계획이며, 특히 배추와 무 등은 직접 공급을 통해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에서 배추 포기당 2400원, 무 개당 1500원으로 할인판매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