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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전국일반

지금도 송전탑·송전선로 이렇게 많은데 “또 철탑 짓겠다니…”

등록 :2016-01-10 20:14수정 :2016-01-11 10:41

지역 현장 I 철탑공화국 당진
신당진변전소가 위치한 충남 당진시 정미면 사관리 마을에 크고 작은 송전철탑들이 거대한 철탑 군락을 이루고 있다. 큰 철탑은 765㎸,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는 철탑은 345㎸ 송전철탑이다.  당진시 제공
신당진변전소가 위치한 충남 당진시 정미면 사관리 마을에 크고 작은 송전철탑들이 거대한 철탑 군락을 이루고 있다. 큰 철탑은 765㎸,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는 철탑은 345㎸ 송전철탑이다. 당진시 제공
“흐리면 짜랑짜랑하다 비 오면 찌릉찌릉하쥬. 비바람이라도 불면 우어엉우어엉 황소개구리 우는 소리를 하는디 정말 겁나유.”

지난 6일 오후 충남 당진시 정미면 사관리 양지말에서 만난 안장환(70)씨는 송전선로가 무섭다고 했다. 이 마을은 74가구 170여명이 사는 농촌이다. 1㎞ 남짓한 정미로를 따라 크고 작은 송전철탑이 16개나 줄지어 서 있다.

1997년 신당진변전소가 들어선 뒤 사관리 마을 하늘은 거미줄처럼 고압전선이 얽혔다. 당시만 해도 국가사업이고, 철탑 부지를 보상받아 별말이 없었다. 정미면은 107개의 철탑이 세워지고 송전선로 7개가 개통돼 전기가 사통팔달하는 교차로가 됐다.

흐리면 짜랑짜랑·비오면 찌릉찌릉
비바람 불 땐 우어엉우어엉…
“이젠 소리만 들어도 정말 겁나유”

송전탑 200m 17가구 6명 암 등 질환
당진에 변전소 6개 철탑은 526개

시민들 “정부, 20년간 우리 속였다”
경기도 구간은 지중화에 배신감
시, 북당진변환소 건축허가 반려
한전 “업무방해”…21일 법정다툼

신당진변전소가 위치한 충남 당진시 사관리 마을 주민들이 6일 마을총회를 열어 피해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신당진변전소가 위치한 충남 당진시 사관리 마을 주민들이 6일 마을총회를 열어 피해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주민들이 하나, 둘 쓰러졌다. 최상국(69·사관리)씨는 “송전탑 200m 안 17가구 가운데 기중씨, 성익이 모친, 치호 할머니, 종숙씨, 응돈씨, 건묵씨 등 6명이 암 등에 걸렸다”고 말했다. 이원석(57) 정미면 개발위원장은 “사관리와 신시리에서만 42명이 암 등 중병으로 숨지거나 병을 앓고 있고, 철탑 아래 선하지와 주변의 땅은 평당 2만~3만원에도 안 팔린다. 철탑이 들어온 뒤 건강 잃고 재산도 잃었다”고 한탄했다.

서울대 안준복 교수팀이 1999~2003년 전국 154㎸ 및 345㎸ 송전선로 주변 지역의 암 환자에 대해 실시한 역학조사 결과를 보면, 송전선로 인근 지역은 그 외 지역보다 위암은 1.2~1.3배, 간암은 1.3~1.6배 발병률이 높았다. 당진환경운동연합이 사관리에서 측정한 전자파는 최고 22mG(밀리가우스)로 나타났다. 스웨덴 2mG, 네덜란드 4mG, 스위스 10mG 등 다른 나라 권고 기준을 2~10배 웃도는 수치다. 우리나라 권고 기준은 833mG나 된다. 충남연구원은 2013년 충남지역 송전선로 선하지(위에 고압선이 가설된 땅)와 잔여지(토지수용으로 일부 남은 땅)의 땅값을 조사해 최소 389억원의 피해가 있다고 추산했다.

■ 변환소 건축허가 공방 당진시와 한국전력공사는 오는 21일 북당진변환소 건축 허가를 반려한 행정조처가 정당한지 가리는 법정 공방을 시작한다.

당진시가 허가를 반려한 이유는 송전철탑 신설을 막기 위해서다. 변환소는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교류에서 직류로 바꾸는 시설이다. 시는 한전의 변환소 예정지가 변전소 부지여서 사실상 변전소 건설로 판단했다. 변전소는 전기를 필요한 곳에 공급하는 가지치기 시설이므로 새로운 송전선로가 필요해 철탑 신설이 예견된다는 것이다.

소송을 낸 한전은 법적 조건을 갖췄고 지역주민과 합의했으며, 국가사업이므로 당진시가 반려한 것은 행정을 잘못해 업무를 방해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현재 신당진변전소~현대제철~북당진변환소 구간에 345㎸ 송전선로가 있어 새 송전선로를 만들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당진화력~북당진변환소 구간의 예비 송전선로 계획은 천재지변 등으로 당진화력~신서산변전소~신안성변전소 송전선이 끊기면 수도권에 심각한 정전 사태가 발생할 수 있어 대비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난해 말 현재 당진에는 변전소 6개와 총길이 189㎞의 송전선로 15개, 철탑 526개가 있다.

■ 약속 안 지켜 불신 자초 당진시의 반려 조처에는 시민들의 불신이 숨어 있다. 그동안 국가사업이라며 정보를 속이거나 숨기고, 반대하면 전원개발촉진법을 앞세워 강제집행한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원석 위원장은 “신당진변전소 공사 당시 땅주인 1명이 끝까지 반대했는데 한전은 땅값을 공탁 걸고 공사를 강행했다. 철탑도 꼭 필지 경계지점을 입지로 정한 뒤 협조적인 지주의 땅에 세우고 보상하는 수법을 써서 반대하던 땅주인들이 골탕 먹는 일이 잦았다”고 귀띔했다. 당진화력도 애초 정부와 한전은 6호기까지만 짓겠다고 약속했으나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10호기까지 증설했다.

류종준 당진참여연대 사무국장은 “20여년간 당하다 보니 시민들은 정부가 앞으로 석문간척지에 발전소를 더 짓고 변환소는 변전소, 예비선로는 수도권으로 가는 송전선로로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특히 한전이 당진화력~북당진변환소(34㎞)는 철탑, 변환소~경기도(33㎞) 구간은 지중화 방식으로 송전하기로 하자 “수도권 시민만 사람이냐”며 여론이 크게 악화됐다. 이장단협의회·시민사회단체 등이 꾸린 당진지역 송전선로 범시민대책위원회는 지난달 29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서면을 보내 △송전선로 추가 건설 백지화 △석탄화력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하지 않겠다는 약속 △일방적인 전원개발촉진법, 송변전시설 주변 지역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송주법), 전기사업법 개정 △한전의 당진시장 등에 대한 손해배상소송 즉각 철회 등을 촉구했다.

이광진 대전경실련 갈등해소센터 위원은 “국가사업은 주민·지자체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 민원이 예상되는 사업은 갈등영향평가를 의무화하는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당진/글·사진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