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수(51) 정의당 울산시장 후보는 노동운동가 시절 가슴에 품었던 사회주의 혁명의 꿈을 접고, 선거를 통해 시의원과 구청장을 거쳐 국회의원까지 지냈다. 노회찬 정의당 전 대표는 조 후보가 최근 낸 자서전 <조승수의 꿈>에서 “대한민국의 선출직 가운데 조승수가 해보지 못한 것은 광역시장과 대통령뿐”이라고 했다.

조 후보는 1963년 울산 울주군 범서읍에서 벽돌공장을 하던 집안의 5남3녀 가운데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초·중·고교를 모두 울산에서 나온 그는 고교시절 흥사단 아카데미 활동을 하면서 일찍 사회문제에 눈을 떴다. 대학(동국대 농업경제학과)에 들어가서는 1983년 2학년 때 교내에서 ‘전두환 물러가라’고 외치며 유인물을 뿌리다가, 86년 말엔 경기도 부천에서 노동운동 관련 모임을 하다가 각각 구속됐다. 89년 9월 출소 뒤 그는 고향 울산에서 노동운동을 다시 시작하려 했으나 두차례 구속 전력 탓에 취업이 어려워지자 88년 2월 사회과학서점(신새벽서점)을 운영하면서 지역 노동자들의 노조 설립과 임금인상투쟁 등을 도왔다.

95년 치러진 제1회 지방선거가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당시 진보정당추진위 활동을 하던 그는 울산시의원 선거에 출마해 최연소(32살) 시의원으로 당선됐다. 3년 뒤인 2회 지방선거 때는 울산광역시 승격과 함께 신설된 북구 구청장 후보로 나서 최연소 구청장이 됐다.

그는 지방선거에 참여한 데 대해 “지역민들과 더욱 긴밀히 소통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진보진영이) 총선이나 대선 진출에도 힘을 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앞의 책)고 밝혔다. 그는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때엔 현직 구청장으로서 발기인에 참여했다. 이즈음 그는 “노동운동가로 활동할 때 생각했던 사회주의 혁명이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닫게”(앞의 책) 됐다.

그는 2002년 지방선거 때는 민주노동당 내부 경선에서 이번에 야권 단일후보 경합을 벌였던 이상범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에게 져 구청장 재선에 실패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선 북구에서 민주노동당 후보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와 함께 44년 만에 원내에 진출한 진보정당 지역구 국회의원이란 기록도 세웠다.

그는 국회 입성 뒤 서울 여의도 부근에 보좌관들과 함께 방을 구해 살며 자전거를 이용해 국회로 출퇴근해 화제가 됐다. 그러나 그는 선거법 위반(사전선거운동)으로 150만원 벌금형이 확정돼 1년6개월 만에 의원직을 잃었다. 이후 2009년 재선거를 통해 다시 18대 국회의원이 됐다가 2012년 19대 총선엔 야권 단일화 경선에서 져 출마하지 못했다.

울산/신동명 기자 tms13@hani.co.kr